마콘도의 신화를 찢고 나온 오타쿠의 저주

- 주노 디아스가 다시 쓴 21세기의 마술적 리얼리즘


어떤 문학은 독자를 안락한 소파로 초대하지만, 어떤 문학은 독자가 발 디딘 바닥을 가차 없이 뒤흔든다.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은 명백히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대중 소설이 흔히 베푸는 친절한 타협이나 ‘모두를 만족시키는 보편성’ 따위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다. 바카라장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잘 닦인 직선 철로를 달리는 기차가 아니라, 시공간이 산산조각 난 도미니카와 뉴저지의 거친 골목 한복판으로 내던져진다.


소설은 인과관계가 반듯한 '선형적 서사'의 문법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단일한 시간선 대신, 3대에 걸친 카브랄 가문의 비극과 뒤엉킨 기억의 파편들을 불연속적으로 직조해 낸다. 특히 본문 아래를 빽빽하게 메운 방대한 각주(Footnotes)는 서사의 호흡을 끊임없이 교란하며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도발적인 목소리를 침투시킨다. 이는 단순한 배경 설명을 넘어, 주류 역사에서 지워진 도미니카의 잔혹한 독재사를 텍스트의 표면 위로 강제로 끌어올리는 포스트모던적 반란이다.


많은 이들이 이 작품에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을 떠올린다. 3대를 옭아매는 신화적 저주 ‘푸쿠(Fukú)’와 라파엘 트루히요 정권의 피비린내 나는 폭력은, 부엔디아 가문의 비극과 마콘도의 학살을 직관적으로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아스를 단순히 ‘마르케스의 후계자’라는 안전한 범주에 가두는 것은 이 텍스트가 지닌 야생성을 오독하는 일이다.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남미 대륙의 원초적 구전 설화와 고전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디아스의 환상은 20세기 대중문화의 가장 밑바닥인 SF, 판타지, 코믹북의 하위문화(Subculture)에서 양분을 얻는다.


디아스는 트루히요의 독재를 설명하기 위해 고대 신화를 호출하는 대신, 톨킨의 ‘사우론’과 DC 코믹스의 절대악 ‘다크사이드’를 소환한다. 카리브해의 고립된 정글에서 피어났던 환상성은, 미국 뉴저지의 슬럼가에서 뚱뚱하고 소외된 너드(Nerd) 소년의 도피처이자 방패가 된다. 고전적 마술적 리얼리즘이 현대 이주민의 서브컬처와 충돌하며 전례 없는 '돌연변이 리얼리즘'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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