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스무 살의 브람스가 슈만 부부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는 아마 자신의 삶에 한 사람이 그토록 오래 머물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곳에는 그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본 로베르트 슈만이 있었고,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그의 아내인 클라라 슈만이 있었다.


로베르트는 젊은 브람스의 음악에서 범상치 않은 것을 발견했다. 그는 브람스를 새로운 시대를 이끌 음악가로 세상에 소개했다. 한 사람의 인정이 아직 이름 없던 청년의 앞날을 열어준 셈이다. 그러나 세 사람의 평온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듬해 로베르트의 정신 질환이 악화되었고, 그는 라인강에 몸을 던진 뒤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때부터 브람스는 슈만 가족의 곁을 지켰다.


남편이 병원에 있는 동안 클라라는 아이들을 돌보고 연주를 계속해야 했다. 브람스는 그 곁에서 가족의 일을 거들었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스승의 가족을 향한 바카라임감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함께 견뎌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우정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자라났다.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 마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 존경이라 하기에는 뜨겁고, 사랑이라 단정하기에는 복잡하다. 클라라에게도 브람스는 평범한 친구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었고, 클라라는 그의 작품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세상에 연주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어디까지 서로를 사랑했는지 알지 못한다.


두 사람이 연인이었는지, 육체적인 관계가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오히려 남아 있는 기록보다 사라진 기록과 침묵이 더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래도록 묻는다. 사랑했다면 왜 함께 살지 않았을까.


1856년 로베르트가 세상을 떠났다. 이제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던 가장 분명한 현실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브람스와 클라라는 결혼하지 않았다. 브람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클라라도 재혼하지 않았다.


나는 이 대목에서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가 흥미로워진다.


우리는 흔히 깊은 사랑이라면 결국 서로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완성에는 연애가 있고, 그 끝에는 결혼이나 함께하는 삶이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는 쉽게 ‘비극’이나 ‘실패’라는 말을 붙인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가까워지는 방향으로만 깊어지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관계에는 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경계가 있다. 한 걸음 더 다가가면 얻는 것이 생기지만, 동시에 사라지는 것도 있다. 브람스와 클라라가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나이 차이도, 일곱 아이를 둔 클라라의 현실도, 결혼을 망설였던 브람스의 성향도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두 사람의 긴 세월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들은 결국 서로를 소유하는 대신 서로의 삶에 남았다.


브람스는 작품을 쓸 때 클라라의 판단을 신뢰했고, 클라라는 그의 음악을 연주했다. 젊은 날의 격렬한 감정이 지나간 뒤에도 관계는 끊어지지 않았다. 사랑이 우정이 되고 우정 속에 다시 존경이 스며들면서, 처음에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렀을 감정이 세월 속에서 여러 겹으로 변해갔을 것이다.


어쩌면 오래된 관계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의 감정을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다른 모양으로 변하면서도 끝내 상대의 삶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


1896년 클라라가 세상을 떠났다. 브람스도 그로부터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스무 살에 만난 한 사람이 그의 거의 전 생애에 걸쳐 있었던 셈이다.


브람스와 클라라의 관계를 사랑이었다고 단정할 수도, 우정이었다고 축소할 수도 없다. 오히려 그 애매함 때문에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오래 남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오히려 좁아지는 관계가 있다. 사랑인지 우정인지 굳이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함께 살지 않았어도 서로의 생을 바꾸어 놓은 관계.


생각해 보면 관계의 깊이를 증명하는 것은 얼마나 가까이 있었느냐가 아닐지도 모른다.


끝내 가지지 않았는데도 잃을 수 없었던 사람.


평생 곁에 살지는 않았지만, 평생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사람.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어쩌면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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