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남는 사람

영리함을 좋아하면서도 우직함을 믿게 되는 이유



나는 영리한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말귀가 빠르고, 상황 판단이 정확하고, 쓸데없는 말을 길게 늘어놓지 않는 사람. 한마디를 해도 요점을 정확히 짚는 사람을 만나면 속으로 점수를 후하게 준다. 반대로 빙빙 돌고, 말과 행동이 다르고,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슬쩍 방향을 바꾸는 모습을 보면 금세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런데 이상하다.


살아오면서 오래 마음에 남은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꼭 영리한 사람들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 미련하다 싶을 만큼 자기 몫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이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하던 일을 하고, 자신이 한 일을 굳이 설명하지 않고, 손해를 보았다고 매번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을 보면 가끔 답답해한다.


왜 저렇게까지 하지?

적당히 해도 되잖아.

싫으면 싫다고 하지.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 사람을 신뢰한다. 재미있는 일이다. 머리로는 영리함을 높이 평가하면서 마음은 우직한 사람에게 가 있으니.


‘우직함과 소박함으로 천하를 이롭게 한다’는 말을 보았다.


처음에는 ‘천하’라는 단어 때문에 너무 거창하게 들렸다. 세상을 이롭게 한다니. 평범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좀 먼 이야기 같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이 반드시 세상을 바꾸는 일일 필요는 없겠다.


누군가는 밥을 차리고,

누군가는 아픈 사람 곁에 앉아 있고,

누군가는 귀찮아도 약속한 일을 해낸다.

자기 이름이 남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해야 할 일을 한다.


별것 아닌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별것 아닌 일들이 사라진 세상을 생각하면 금세 알 수 있다. 우리가 기대어 사는 것은 거창한 선언보다 누군가의 반복되는 소박한 행동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직함은 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눈앞의 이익을 몰라서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알아도 쉽게 방향을 틀지 않는 힘. 소박함 역시 가진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부풀리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이 두 가지와 그다지 가까운 사람이 아니다.


사람의 말을 따지고, 행동의 앞뒤를 재고, 저 말에는 무슨 의도가 있을까 생각한다.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으면 억울하고, 누군가 어설프게 아는 척하면 굳이 틀린 부분을 찾아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러니 어쩌면 내가 우직한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내게 부족한 것을 그 사람에게서 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리함은 사람을 앞서 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우직함은 사람을 떠나지 않게 한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순간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만, 오래 곁에 남는 사람은 대개 말보다 행동이 먼저였던 것 같다.


천하를 이롭게 한다는 것도 어쩌면 그런 것 아닐까.


거대한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을 조금 덜 힘들게 하는 것. 내가 맡은 몫을 슬쩍 다른 사람에게 밀어놓지 않는 것.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런 사람이 한 명 있고,

또 한 명 있고,

그 옆에 또 한 명 있다면.


천하라는 것도 결국 그 사람들이 서 있는 자리의 합일 테니까.


나는 여전히 영리한 사람이 좋다.


다만 이제는 안다.


내가 정말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은,

영리한 사람보다 우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비 솔라(Xevi Sola) /

《어느 한 해 - 완벽한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