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 시간도 사랑하는 내 인생이다
15년의 콜센터 생활 중에 버린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4년이 있다.
보험회사에 다닌 시간이다.
슈퍼 내항인 인 내게 외향인들로 가득 찬 회사는 고통 그 자체였고,
하루하루 버티기로 4년이 흘렀다.
나의 젊음을 그곳에서 낭비했단 생각에 빠져 한동안은 후회와 자바카라으로 바닥을 허우적거렸다.
그런 시간에도 얻은 것은 있었는지
당시 엄마와는 늘 10년 넘게 싸우던 주제가 있었는데
슬롯복지학을 전공한 나는 전공을 살리지 않고 콜센터로 빠졌다.
엄마는 늘 내가 전공을 살리지 않은 게 내심 불만이었는데
이미 콜센터 쪽에서 잔뼈가 굵어진 나를, 대학 졸업 때 받은 자격증 한 장으로 현장에서 써줄리 만무했다.
같은 자격증 보유자 면 이제 막 졸업해 나온 백지상태의 20대를 채용하지, 10년을 다른 업계에서 바람피우다 온 나를 쓸 이유가 없었다.
내가 일부러 그쪽으로 가지 않는다는 듯이 말하는 엄마는 늘 나를 긁었고,
그 주제만 나오면 뾰족한 말들로 서로를 할퀴어 대며 싸웠었다.
그날도 어쩌다 그 주제가 나왔고, 웬일인지 나는 평안했다.
커피잔을 조용히 보던 내가 말했다
두 사람이 있어.
운전면허증이 둘 다 있지 엄마.
한 사람은 10년 운전 경력이 있는 베테랑이고, 한 사람은 장롱면허야.
그럼.. 아무도 그 장롱면허에게 운전대를 맡기지 않아
내 자격증은 장롱면허야 엄마.
3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날 이후로 신기하게도 엄마는 단 한 번도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보험회사에선 화법이란 걸 배운다.
암보험을 판매하는데 고객은 갱신형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A . "고객님 연령이 지금 60 살이세요. 고객님 나이에 비갱신형 가입하면 보험료 10만 원 15만 원 내야
하는데 유지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
B. "15년 뒤면 고객님 75세 시네요. 고객님 15년 전에 혹시 기억나세요?
초코파이가 100원 하던 시절이에요.
3만 원 5만 원 내던 보험료가 나중에 20만 원 되는 게 아니구요. 15년 뒤에 만 원밖에 안 올라요.
3년 뒤 5년 뒤 아니고 15년 뒤에요. 고객님 "
A와 B 중 무엇에 마음이 더 열리는가.
정말 지겹도록 배우던 그 화법이 일상생활에서 나도 모르게 툭 - 나와버렸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여느 사람들보다는 비유를 잘 사용한다.
어렵고 복잡한 개념을 설명할 때 쉬운 비유로 먼저 귀를 열어주면 훨씬 이해가 잘 된다.
잘 사용한 비유는 사람들을 단번에 이해시킨다.
모두가 짜증이 난 상황이나, 공감이 필요한 상황에서 무릎을 탁 치게 표현한 비유 한마디는 적절한 유머가 되어 나를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만든다.
다시 보험회사에서 일할 거냐 물으면 아마도 그런 일은 없을듯하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아까운 시간을 묻는다면 주저 없이 그 시간을 꼽았던 내게
후회와 자바카라으로 나를 괴롭혔던 그 시간도 내게 도움이 되는 흔적은 조금 남은 걸까.
커피를 쏟은 바카라에 휴지로 눌러 닦아도 자국은 남듯이, 싫든 좋든 그때 그 시절을 버텼던 것도 나이고,
그 얼룩을 품은 나또한 지금의 나겠지. 그러니 그저 사랑으로, 내 미운 4년을 그렇게 감싸안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