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는 15년차 콜센터 상담원이다.
그동안 다닌 고객센터만 해도 카드회사, 금융권 대출회사, 항공사, 보험회사, 명품 가방 쇼핑몰, 심지어 로또 번호 추천 회사 콜센터까지 다양하다.
" 넌 우리나라 사람들 하고 다 한번씩은 말해 봤겠다. " 하는 친구의 말도 영 오바는 아닌 듯 하다.
일명 '콜밥'이란걸 이정도 먹다 보니, 어느 날은 인간이란 존재가 진절머리 나게 싫기도 했다가,
"감기 걸리셨어요? 힘들겠어요" 하는 콧물 가득찬 내 목소리에 건내는 말 한마디가 따뜻해서 눈물 마저 고이는 날도 있다. 아플 땐 누구나 서러운 법이다.
모든 것은 에너지다.
모든 만물에는 에너지가 깃들어 있고, 우리가 만지는 테이블, 의자, 물, 동물, 식물, 사랑하는 사람의 손까지 확대를 계속하다 보면 안에 든 것은 에너지다. 해서 어떤 생명이 느끼는 희로애락이나 어떠한 감정의 파동은 이 에너지에 모두 깃들게 되어 있다.
아침 첫 콜부터 받은 민원인 아저씨.
이런 화난 에너지는 기운이 너무 세서 내 몸이 확- 뒤로 밀리는 느낌이 든다.
"방금 문자 받았는데 이게 무슨 말이죠? "
목소리의 뾰족함이 전화선을 타고 넘어온다.
"많이 놀라셨겟습니다 고객님. 뉴스 보셨겠지만 일본 삿포로 지역 강설로 인하여 대부분의 항공편이 지연이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고객님 "
"지금 가족들 다 짐 싸고 연차까지 내서 호텔 예약 다 해놨는데 어떡하란 말이에요?!
3시간 넘게 지연되면 도착하면 밤 11시가 넘어버리는데, 그 지역 호텔은 체크인이 10시 넘으면 안 된다는데 밖에서 자란 말인거예요? "
호흡이 거칠어진다. 언성이 높아진다.
옆에선 아이가 우는소리가 들린다.
"고객님, 안타까운 상황은 알겠으나 눈이 많이 오는 상황이라 시야 확보조차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리해서 운항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최대한 안전하게 모시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상황을 지켜보며 조금 기다려 주셔야 할 듯합니다. 고객님 "
이윽고 옆에 있는 배우자와 싸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 고객님은 보상 요구를 하다가, 관련 지침이 나와있는 약관을 이메일로 보내라고 소리를 지른 뒤 분에 못 이겨 전화를 먼저 끊어버리셨다.
글쓴이 또한 지금 앉아있는 바카라상과 의자를 벗어나면 여행도 다니고 소비도 하는 고객이니 사실 짜증 나는 상황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온라인 게임인이 가족들과 다 같이 시간 맞춰서 여행 가는게 어디 쉬운 일도 아닐뿐더러,
날씨가 따라주지 않는 게 누구의 탓도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하필 이런 일이 내 여행 때 일어나는 상황이 울화가 치미는건 어쩔수가 없다.
아이는 옆에서 빽빽 울지 예민한 와이프는 바가지 긁어대지. 눈에 보이듯 훤하다
" 탑승 잘 하셨어요 고객님? "
3시간 뒤 전화를 받은 고객님은 이제 막 탑승을 했다고 하셨다.
목소리가 많이 누그러졌다. " 대기하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안전한 여행 되십시오 "
"아닙니다" 하는 짧은 답변에도 좀 전에 소리 지른 것에 대한 민망함이 느껴진다.
머리를 긁적이는 게 눈에 보이는듯 하다.
감정을 잘 다루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같은 상황을 맞이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냐는 각각의 개인이 모두 다른 부분이다.
감정을 바라보고 때론 기다려주는 일을 하다 보니, 요즘은 웬만한 일에 별로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다는 걸 알게됐다.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내게 방문했다 떠나가는 손님 같은 것
활활 타는 뜨거운 에너지를 뿜어낸다고 해서 객관적 상황이 해결되는 게 아님을,
이론적으론 알면서도 일상에서 인지하는데 글쓴이도 15년이 걸리는데, 고객님들이야 오죽하랴.
그렇게 이해하고 통찰하면서 오늘도 마무리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