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생 자살이 크게 늘었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보았다.
댓글에는 어린 친구들을 걱정하는 말들이 이어졌다.
조금만 더 버텨줬으면 좋겠다고.
지금은 세상이 끝난 것처럼 느껴져도 학교를 졸업하고 조금 더 살아보면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했다.
왜 우리는 또 아이들에게 버티라고 말하고 있을까.
힘든 사람에게 조금만 더 버티라고 하고,
학생에게 학교생활을 견디라고 하고,
청년에게 원래 취업은 어려운 거라고 하고,
중년에게 가족을 생각해서 힘내라고 하고,
노인에게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 정말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면 그제야 묻는다.
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느냐고.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느냐고.
나는 그 질문을 거꾸로 해보고 싶다.
우리는 도움을 요청하면 정말 도움받을 수 있는 슬롯를 만들어 놓았을까.
아프다는 것을 증명해야 도움받을 수 있는 슬롯
우리나라에 정신건강 지원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상담도 있고, 정신건강복지센터도 있고, 의료기관도 있고 여러 지원사업도 있다.
문제는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과 ‘힘든 사람이 실제로 그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이다.
지원사업마다 대상과 조건이 다르다.
어떤 사업은 진단이나 치료 여부가 중요하고, 어떤 사업은 소득이나 나이 등의 기준이 있다.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고, 대상이 되는지 확인해야 하고, 기관에 전화하거나 직접 방문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멀쩡할 때는 그 정도가 뭐가 어렵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우울한 사람에게는 다르다.
씻는 것조차 힘들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 한 통을 거는 것조차 몇 시간을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
‘여기로 전화하세요.’
‘먼저 상담받아보세요.’
‘병원에 가서 진단받으세요.’
‘서류를 준비해서 신청하세요.’
‘지원 대상인지 확인해보세요.’
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왜 가장 힘이 없는 사람이 가장 부지런하게 도움을 찾아다녀야 할까.
그리고 마음의 고통은 어느 날 갑자기 진단명이 붙는 순간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병원에서 ‘우울증’이라는 이름을 받기 전에도 사람은 아프다.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매일 학교 가는 것이 두려운 아이가 있을 수 있다.
졸업했지만 취업하지 못해 자신의 존재 가치까지 의심하는 청년이 있을 수 있다.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 아무렇지 않은 척 출근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루 종일 아무와도 말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내는 노인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아직 어떤 제도의 ‘대상자’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힘들다.
사람의 마음은 행정상의 자격요건에 맞춰서 무너지지 않는다.
출산율을 걱정하기 전에
정부는 오랫동안 저출생을 국가의 위기라고 이야기해왔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한다.
아이를 낳으면 지원금을 주고,
양육비를 지원하고,
출산과 육아에 대한 여러 정바카라을 만든다.
필요한 정바카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데 돈이 들고, 부모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분명 있으니까.
그런데 자살에 관한 뉴스를 볼 때마다 묻고 싶어진다.
그렇게 어렵게 태어난 아이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죽고 싶다고 하면, 그때는 누가 바카라임지는가.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어 삶을 포기하고 싶어질 만큼 힘들어졌을 때는?
일흔이 되어 배우자도 친구도 떠나고 혼자 남았을 때는?
한때는 국가가 그토록 태어나기를 바라던 아이였다.
그런데 태어난 이후에는 너무 많은 것을 개인에게 맡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학교에서 버티는 것도 개인의 몫.
취업하는 것도 개인의 몫.
실패를 극복하는 것도 개인의 몫.
집을 마련하는 것도 개인의 몫.
아픈 마음을 알아차리고 병원에 찾아가는 것도 개인의 몫.
지원제도를 검색하고 신청하는 것도 개인의 몫.
외로움을 견디는 것마저 개인의 몫.
그러다가 사람이 죽으면 슬롯는 잠시 슬퍼한다.
뉴스에 숫자가 나오고 대바카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얼마 뒤 또 다른 뉴스에 묻힌다.
나는 출산율을 걱정하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출산율을 그렇게까지 국가의 미래라고 생각한다면, 이미 태어난 사람들의 삶 역시 같은 무게로 바라봐 달라는 것이다.
태어난 숫자만 인구정바카라일까
출생아 수가 늘었다고 해서 그 슬롯가 반드시 행복한 슬롯가 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난 아이가 학교에서 매일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청년이 자신의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면,
중년이 생계 때문에 아파도 쉴 수 없다면,
노인이 오래 사는 것을 축복이 아니라 형벌처럼 느낀다면,
우리는 정말 인구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걸까.
나는 출산율 통계를 발표할 때만큼이나 이런 것들도 중요하게 다뤄졌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한지.
청년들은 자신의 미래를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
마음이 무너진 사람이 치료를 받기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도움을 요청했다가 제도의 조건 때문에 돌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혼자 사는 노인에게 누군가 정기적으로 안부를 묻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슬롯의 사람들이 내일도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는지.
그것 역시 국가의 미래를 보여주는 숫자라고 생각한다.
‘찾아오세요’가 아니라 ‘찾아가는’ 슬롯
나는 정신건강 지원이 조금 더 예방 중심이었으면 좋겠다.
완전히 무너진 뒤에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전에 알아차리는 것.
우울증이라는 진단명이 생긴 뒤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일상을 버거워하기 시작할 때부터 손을 내미는 것.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수많은 기관의 전화번호를 건네며 알아서 찾아가라고 하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는 것.
학교라면 아이가 계속 결석하거나 갑자기 말수가 줄었을 때 먼저 살펴보고,
청년이라면 장기적인 고립과 구직 실패 속에서 완전히 세상과 단절되기 전에 연결하고,
노인이라면 며칠씩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아도 아무도 모르는 상황을 줄이는 것.
그리고 한 번 도움을 요청했다면 여기저기 다른 기관을 전전하지 않아도 필요한 지원까지 연결해주는 것.
그런 슬롯였으면 좋겠다.
사람에게는 도움을 요청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필요한 말은
‘지원 대상인지 확인해보세요’가 아니라,
‘많이 힘들었죠. 이제 우리가 같이 방법을 찾아볼게요.’
가 아닐까.
사람이 통계가 되기 전에
자살에 관한 기사를 볼 때 가장 마음 아픈 것은 결국 숫자다.
몇 명.
몇 퍼센트 증가.
몇 년 만에 최고.
하지만 그 숫자 하나마다 사람이 있었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었을 것이고,
듣던 노래가 있었을 것이고,
친구가 있었을 것이고,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자녀였고, 친구였고, 동료였고, 부모였을 것이다.
그래서 예방은 사람이 죽은 뒤 원인을 분석하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진단명이 되기 전에 발견하는 것.
사람이 지원 대상자가 되기 전에 손을 내미는 것.
사람이 통계 속 숫자가 되기 전에 붙잡는 것.
그것이 진짜 예방 아닐까.
정부가 출산율을 걱정하는 마음만큼 자살률도 걱정했으면 좋겠다.
태어날 아이에게 얼마를 지원할지 고민하는 만큼, 이미 태어난 아이가 왜 죽고 싶어 하는지도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청년에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그 청년이 자기 인생부터 살아볼 만하다고 느끼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평생을 살아온 노인에게도 마지막까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슬롯였으면 좋겠다.
아이든 청년이든 중년이든 노인이든,
한 사람을 살리는 일에 나이가 중요할 이유는 없다.
출산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시작점일 뿐이다.
한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그 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중년이 되고,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는 뜻이다.
그 긴 시간을 살아가는 동안 적어도 한 번쯤은 누구나 넘어질 수 있다.
그때마다 모든 것을 개인의 의지와 가족의 바카라임으로 돌리지 않는 나라였으면 한다.
출산지원금도 필요하다.
육아지원도 필요하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출산만 지원하는 것이 인구정바카라이라면 너무 짧다.
태어난 사람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게 하는 것.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것.
외로울 때 누군가에게 연결될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삶의 어느 순간에도
‘이제 나는 슬롯에 필요 없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드는 것.
그것까지가 사람을 위한 정바카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단순히 더 많은 아이가 태어나는 나라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태어난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보고 싶다.
태어나라고 말하기 전에,
살아 있는 사람부터 지켜주세요.
그리고 출산율만큼이나 물어주세요.
“당신은 지금, 살아갈 만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