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아끼려고 나선 날, 엄마에게 약을 받아먹었다
우리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는 걸어서 40분이 걸린다.
버스를 타러 가는 것부터가 하나의 일정이다. 외출하려면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에 그 40분을 더해야 한다. 남들에게는 집 앞에서 시작되는 대중교통이 내게는 조금 멀리 있다.
그날은 강의를 듣고 서울에 갈 일정이 있었다. 택시를 타면 편하겠지만 돈을 아끼고 싶었다. 일찍 나가서 걸으면 되니까.
시간을 조금 더 쓰고 돈을 덜 쓰기로 했다.
그 계산에 다치는 경우는 없었다.
집에서 꽤 멀리까지 왔을 때 사고가 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피가 흘렀다. 방금까지 오늘의 일정을 생각하던 나는 갑자기 내 발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거였다.
집에 돌아가야겠다.
병원에 갈 돈과 필요한 물건을 챙겨야 했다. 꽤 걸어왔지만 다시 돌아가야 했다.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머릿속에는 순서가 생겼다.
집으로 돌아가서, 챙길 것을 챙기고, 택시를 부르자.
놀라는 일은 뒤로 밀렸다. 일단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왔던 길을 되짚어 집으로 돌아갔다. 돈과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택시를 불렀다.
택시비를 아끼려고 나선 날이었다. 결국 택시를 탔다. 다만 목적지가 병원으로 바뀌었다.
내 절약 계획은 여기서 조용히 종료됐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내가 신기하다.
피를 흘리면서도 무표정이었다. 택시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오히려 기사 아저씨가 더 놀라셨다. 피가 나는데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냐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내가 태연해 보인다는 걸 알았다.
내 입장에서는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피가 나고 있으니 병원에 가야 했다. 그 사이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무섭지 않았던 건지, 무서워할 틈이 없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그저 도착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응급실에 갔다가 비용이 많이 든다는 말을 듣고 다시 정형외과로 갔다.
피를 흘리고 있어도 돈은 신경 쓰였다. 아침에 택시비를 아끼려고 했던 사람이 몇 시간 만에 병원비에 초연해질 수는 없었다.
몸은 다쳤는데 계산은 계속됐다.
그래도 정형외과에 도착할 때까지는 잘 참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제법 침착한 사람인 줄 알았다.
흘러나온 피가 선지처럼 굳어 있었다.
그 피를 떼어 내는 과정부터 너무 아팠다. 상처는 꿰매야 했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분들이 내 주변에 모여 있었다.
그분들을 보며 치료를 받는데, 갑자기 애가 됐다.
집으로 돌아가고, 택시를 부르고, 병원을 옮겨 다니던 나는 사라졌다. 엄살 부리는 아이처럼 아픈 티를 냈다.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엄살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너무 아팠다.
택시 안에서는 피를 흘리면서도 무표정이었는데, 꿰매는 과정에서는 태연한 얼굴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제서야 아팠다.
앞에서도 아팠겠지만 그때는 움직여야 했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내가 필요한 것을 챙겨야 했고, 내가 병원을 찾아가야 했다.
그런데 의료진 앞에서는 내 상처를 맡길 수 있었다. 나보다 이 상황을 잘 아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그래서 참던 걸 놓았던 걸까. 아니면 그 과정이 너무 아파서 더는 참을 수 없었던 걸까.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나는 내가 잘 참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를 돌봐주는 사람들 앞에서는 아이가 되기도 했다.
치료를 받고 나니 허기가 졌다.
이 와중에도 배는 고팠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든 끼니는 필요하다는 듯이.
하필 시장이 열려 있었다. 사람이 많았다. 무엇을 먹을지 둘러보기 전에 사람들의 발부터 눈에 들어왔다.
누가 내 발을 밟으면 어떡하지.
방금 꿰맨 발이었다. 다시 아플 생각을 하니 사람들 사이로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허기는 참더라도 발을 밟히는 건 못 참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집으로 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아픈 발로 계단을 올라 이층에 있는 내 방으로 갔다.
시장에서는 누가 발을 밟을까 봐 그렇게 걱정해 놓고, 집에서는 계단을 올랐다. 지금 생각해도 그 판단은 잘 모르겠다.
일단 내 방에 가서 눕고 싶었던 것 같다. 늘 쉬던 곳이었다. 거기까지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마취가 풀린 뒤에 어떻게 내려올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저녁 일곱 시까지 밥도 약도 못 먹은 채 누워 있었다.
마취가 풀리자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는 그 발로 집에 돌아오고 계단까지 올라왔는데, 이제는 일어나는 것부터 어려웠다.
배가 고팠다. 약도 먹어야 했다.
그러려면 먼저 몸을 일으켜야 했다.
아까는 어떻게 올라왔지.
침대에 누워 뒤늦게 생각했다. 계단을 오르기 전에 했어야 할 생각이었다.
엄마가 와서 약을 먹여주셨다.
병원에서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분들 앞에서 애가 되더니, 집에서는 엄마에게 약을 받아먹는 딸이 됐다.
그날 나는 혼자서 많은 일을 처리했다. 피를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고, 택시를 불렀고, 병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저녁에는 엄마가 약을 먹여줘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루 안에서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었다.
약을 먹고 나서는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올라올 때처럼 걸어 내려갈 수는 없었다.
이를 악물고 엉덩이로 한 칸씩 내려왔다.
버스정류장까지 40분을 걸을 생각으로 집을 나섰던 날, 저녁에는 우리 집 계단을 내려오는 데 온 힘을 썼다.
아침에는 거리와 시간을 계산했는데, 저녁에는 눈앞의 계단 한 칸이 문제였다.
그날의 나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피를 흘리면서도 태연했고, 상처를 꿰맬 때는 아이처럼 아파했다. 배가 고파도 발을 밟힐까 봐 시장을 피했고, 정작 집에서는 아픈 발로 이층까지 올라갔다.
돈을 아끼려고 나섰다가 택시비와 병원비를 썼다. 혼자서 병원까지 갔지만, 저녁에는 엄마에게 약을 받아먹었다.
침착하기도 했고, 앞일을 생각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때그때 가장 급한 생각을 따라 움직였던 것 같다. 집에 가야 한다. 병원에 가야 한다. 너무 아프다. 배가 고프다. 내 방에 눕고 싶다.
그 짧은 생각들이 이어져 하루가 됐다.
그리고 지금은 그 하루를 글로 쓰고 있다.
다리를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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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조금 어이가 없다. 피를 흘릴 때는 다음 할 일을 찾더니, 지나고 나서는 다음 문장을 찾는다.
그렇다고 다친 일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 아픈 건 아팠고, 계단은 힘들었고, 밥도 제때 못 먹었다. 다만 쓰고 나니 그날의 나를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 뒤에도 아픔은 있었다. 잘 참던 사람에게도 약을 먹여줄 엄마가 필요했다.
다음에는 시장에서 맛있는 걸 먹은 이야기나 쓰고 싶다. 강의에서 좋은 말을 들은 이야기여도 좋다. 무사히 버스를 탔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번 글은 취재비가 너무 많이 들었다.
택시비와 병원비, 그리고 내 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