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힘을 빼는 연습

by슈펭 Super Peng

모든 사람과 잘 지내려 했던 사람이 뒤늦게 알게 되는 것들

사람 때문에 힘들 때면 이상하게도 가장 먼저 나를 의심하게 된다.

내가 말을 잘못했나.
조금 더 참았어야 했나.
먼저 연락했어야 했나.
그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달라졌을까.

관계가 틀어진 자리에는 늘 수십 개의 ‘만약’이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끝난 대화를 머릿속에서 다시 시작한다. 그때 하지 못했던 말을 새로 만들어보고, 상대의 표정을 몇 번이고 복기한다. 마치 충분히 생각하면 관계가 어긋난 정확한 순간을 찾아낼 수 있을 것처럼.

하지만 관계에는 언제나 내가 모르는 영역이 있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왜 갑자기 멀어졌는지.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결국 타인의 영역이다.

어쩌면 인간관계가 힘든 이유는 사람을 잃어서가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마음까지 바카라임지려고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를 오해하면 해명하고 싶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고, 적어도 나쁜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살다 보면 알게 된다.

내가 백 마디를 설명해도 이미 마음속에서 결론을 내린 사람에게는 그 백 마디조차 변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사람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상처와 기대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본다. 그래서 같은 나를 두고도 누군가는 다정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무심하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에서는 꽤 나쁜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 모든 이야기 속의 나를 수정하며 살 수는 없다.

어쩌면 성숙한다는 것은
나를 오해하는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오해를 바로잡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관계에는 이상한 저울이 있다.

내가 상대에게 마음을 열 개 주었다고 해서 상대도 반드시 열 개를 돌려주는 것은 아니다.

나는 생일을 기억했는데 그는 잊을 수 있고, 나는 긴 답장을 보냈는데 그는 짧은 이모티콘 하나를 보낼 수도 있다.

처음에는 서운하다.

‘나는 이만큼 했는데.’

그런데 그 문장이 관계를 가장 피곤하게 만든다.

마음은 거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준 만큼 돌려받으려고 하면 호의는 어느 순간 장부가 된다. 연락 횟수를 세고, 누가 먼저 약속을 잡았는지 기억하고, 받은 것과 준 것을 비교한다.

그때부터 관계는 마음이 아니라 계산이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참고 퍼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계속 나만 애쓰고 있다면
상대를 더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지출을 줄여야 한다.

관계에도 적정 거리가 있다.

나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에게 굳이 무거운 마음을 건넬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깊이로 들어갈 필요도 없다.

어떤 사람은 인사를 나누는 사이로 충분하고,
어떤 사람은 가끔 밥을 먹는 사이면 충분하며,
아주 적은 몇 사람만 내 마음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면 된다.

우리는 모든 관계를 깊게 만들어야 좋은 인간관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건강한 관계는 깊이보다 거리 조절에 능한 관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 사실은 조금 서늘하지만 동시에 꽤 다정한 진실이다.

우리는 종종 사람을 현재 모습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사랑한다.

조금만 지나면 달라지겠지.
내가 잘해주면 알아주겠지.
언젠가는 내 마음을 이해하겠지.

그래서 지금의 불편함을 미래의 가능성으로 견딘다.

하지만 관계는 리모델링 사업이 아니다.

사람을 고쳐 쓰려고 가까워지는 순간, 둘 다 불행해진다.

상대는 끊임없이 부족한 사람이 되고
나는 끊임없이 실망하는 사람이 된다.

맞지 않는다는 것은 누군가가 잘못됐다는 뜻이 아니다.

신발이 발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발이 잘못된 것도, 신발이 나쁜 것도 아닌 것처럼.

그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관계에서는 노력보다 포기가 더 지혜롭다.

사람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사람이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포기하는 것.

그때 비로소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도 함께할 수 있는지 결정할 수 있다.




나는 예전에는 오래된 관계가 좋은 관계라고 생각했다.

함께한 시간이 길수록 특별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은 관계의 품질을 보증하지 않는다.

십 년을 알아도 만나고 돌아오는 길마다 마음이 초라해지는 사람이 있고, 몇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이상하리만큼 나답게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관계를 붙잡는 것은
다 읽은 바카라을 바카라장에 두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바카라장에 있다고 해서 매일 읽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인생의 어느 시절을 함께했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 남아 있을 뿐이다.

사람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내 인생의 한 장면이었다.

그 장면이 아름다웠다고 해서 반드시 다음 장에도 등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끝났다는 사실이
그 관계가 실패했다는 뜻도 아니다.

그 시절에 충분히 웃었다면,
충분히 배웠다면,

어쩌면 그것으로 역할을 다한 관계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놓아도 되는 사람과 지켜야 할 사람을 구별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떠나는 사람에게는 이상할 만큼 마음을 많이 쓴다.

왜 떠났을까.
무엇이 서운했을까.
다시 돌아올까.

그런데 그 사람을 생각하느라
정작 곁에 있는 사람에게는 쉽게 소홀해진다.

언제든 연락하면 받아주는 사람.

별것 아닌 이야기를 기억해주는 사람.

내가 잘됐을 때 질투보다 축하를 먼저 건네는 사람.

아픈 날 안부를 묻고, 내가 조금 이상한 날에도 이유부터 묻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너무 편해서 오히려 귀함을 잊기 쉽다.

하지만 인생을 오래 버티게 해주는 것은 화려하게 등장한 사람이 아니라, 이상할 만큼 오래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결국 관계를 잘한다는 것은
사람을 많이 남기는 능력이 아닐 것이다.

떠나는 사람을 붙잡지 않고,
맞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나를 오해하는 모든 사람에게 해명하지 않으면서도,

내 곁에 남아준 사람들에게는
익숙함을 핑계로 함부로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지키겠다고
나와의 관계를 망치지 않는 것.

우리는 너무 자주 타인의 마음속에서 살아간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싫어하면 어떡하지.
실망했으면 어떡하지.

그러느라 정작 한 사람의 마음을 오래 방치한다.

나 자신이다.

모든 관계가 풀려야
내 삶이 편안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관계는 풀어야 하고,
어떤 관계는 놓아야 하고,
어떤 관계는 그냥 모른 채 지나가야 한다.

매듭을 전부 풀겠다고 잡아당기다 보면
오히려 더 단단히 엉키기도 하니까.

그러니 가끔은 힘을 빼도 된다.

떠나는 사람에게는 길을 내어주고,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자리를 내어주고,

나에게는 조금 더 넓은 마음을 내어주는 것.

어쩌면 인간관계에서 가장 필요한 기술은
사람을 붙잡는 법이 아니라,

누구 때문에도 나를 놓치지 않는 법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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