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던 나
좋은 팀장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처음 팀장이 되었을 때는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순하게 생각하면 좋은 사람이 되면 자연스럽게 좋은 팀장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팀원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말하기 전에 미리 알아차릴 수 있게 팀의 에너지를 파악하고 분배하며, 그들의 실수가 일어날 때 굳건한 방패가 되어주며 나 스스로가 앞장서서 진두지휘하는 그런 모습을 생각했다.
그런 말이 있지 않나, 요새 리더는 뒤에서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몸소 보여주는 자리라고. 그런 말을 수없이 들어온 나에게 있어, 좋은 팀장이란 그렇게 막연하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면 된다고 믿었다. 굉장히 이상적으로 들리겠지만, 팀원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고, 가능하면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누군가 어려움을 겪으면 먼저 손을 내밀고, 팀원들이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사람.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팀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보다, 팀원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를 좀 더 신경 쓰게 되었을 것이다. 회의 때나, 아니면 평상시에 그냥 가벼운 대화를 나눌 때나, 내 말 한마디에 바뀌는 표정이나 분위기를 읽게 되면 공연히 신경이 쓰여, 괜히 메신저 창에 이런저런 말을 썼다 지웠다 하기 일쑤였다. '내가 너무 심했나? 내가 괜한 말을 한 걸까?'그런 생각에 몇 번은 말을 해놓고도 곧 따로 시간을 가지며, 메시지를 잘못 전달한 것 같아 오해를 풀고 싶다고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은 적도 많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팀원을 배려하기 위한 게 아니라 그저 나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피하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 사실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지만, 그때는 그토록이나 목마르게 원하는 것이었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어느 순간에 나는 반드시 그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
기억될 만한, 그런 팀장이 되자. 나는, 좋은 팀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좋은 팀장이라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바와 많은 것이 달랐다.
팀원 모두의 니즈를 맞춰준다는 것, 팀원마다 각자의 바람과 이상이 다르다는 것, 나 자신이 그렇기 때문에 모두에게 맞춤형 팀장이 되어줄 수 없다는 것은, 직접 해 보기 전까지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항상 시켜줄 수도 없었다. 팀 전체의 상황을 봐야 했고, 다른 팀원과의 형평성도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내리는 선택은 누군가에게는 좋은 선택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은 결정도 있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사실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어려웠다.
나의 결정에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모습이 보일 때면, 내가 좀 더 최선을 다해 설명했더라면 달랐을까? 내가 말한 이야기가 충분히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았을까? 나는, 나 스스로가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움츠러들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할수록, 나는 오히려 점점 더 옳지 못한 팀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되어가니, 싫은 말을 하지 않으려고 말을 돌리다 보니 정작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팀원이 힘들어할까 봐 내가 일을 가져오다 보니 그 사람이 스스로 해결할 기회를 빼앗기도 했다. 팀원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맞춰주려고 하다 보니, 다른 팀원에게는 왜 저 사람에게만 저렇게 해주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나는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생각을 조금씩 바꿔 나가기 시작했다. 좋은 팀장이 된다는 것은,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좋은 사람은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팀장은 때로는 상대방이 싫어할 것을 알면서도 결정해야 한다.
좋은 사람은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좋은 팀장은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좋은 사람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주려고 한다. 하지만 좋은 팀장은 그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몫까지 대신해 주어서는 안 된다.
물론, 그 차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뒤에도 나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기 때문이다. 싫은 소리를 하게 되는 날은 어김없이 마음이 불편했고, 내가 했던 말 한마디 한 마디를 다시 거슬러 올라와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반추의 시간 속에서 불편해했다. 이미 내린 결정임에도 다시 한번 문서를 들여다보며, 좀 더 낫게 생각할 수 없었는지, 다른 방법은 정녕 없었는지를 생각해 보며 끊임없이 나 자신을 추궁했다.
때로는, 나 자신이 좀 더 냉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불필요한 감정에 스스로를 소모하느니, 깔끔하게 일만 잘하면 되는 것이라고 선을 긋고 그냥 덜 좋은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던 날도 있었다. 물론, 그런 시도는 오히려 더 좋지 않은 결과로 나에게 돌아왔다. 냉정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팀원들은 오히려 내 표정을 더 살피기 시작했다. 서로의 의도와 달리, 서로가 눈치만 보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그 때야 뒤늦게야 깨달았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 '좋음'의 기준을,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세워야 했다.
상대방이 지금 나를 좋아하는가.
내가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가.
내가 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는가.
그것만으로 좋은 팀장을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었다.
내가 지금 이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하고 있는가.
내가 편해지기 위해서 배려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 해야 할 말을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이 결정이 지금은 불편하더라도, 나중에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좋음'이라는 것의 기준을 바꾸고 나서부터, 나의 생각도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팀원이 내 말을 듣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를 먼저 보았다면, 이제는 내가 왜 그 말을 했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팀원이 만족하는 결정을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모두가 만족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결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어렵다. 아직도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날이면 마음이 무겁다. 아직도 내가 내린 결정 때문에 누군가가 서운해하는 것 같으면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이제는 그 불편한 마음 자체를 좋은 팀장이 되지 못했다는 증거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팀장이 된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누군가에게 불편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바카라임까지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니까.
생각해 보면 나는 팀장이 되기 전에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팀장이 된 뒤에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다. 다만 그 자리에 앉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과, 좋은 팀장으로 일하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어쩌면 내가 팀장으로서 처음 배워야 했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적어도 이제는 하나는 알게 되었다.
좋은 팀장이 되기 위해서는, 가끔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