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사람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그리 높지 않은 사람이다. 그것은 아마도, 나 자신이 갖고 있는 기준점이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은 높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많지는 않지만, 여태까지의 삶에서 만난 사람들이 보통 나에게 완벽주의적인 기질이 있다고 하는 걸 생각해 보면, 어느 순간과 때에도 잘 해내야만 했던 나는 나를 성장시키는 가장 좋은 비료였지만, 동시에 나를 서서히 좀먹어가는 약이기도 했다. 뭐, 그렇지 않나. 몸에 좋은 약을 적정량 쓰면 좋지만, 한계 이상으로 가면 사람을 죽일 치명적인 맹독인 것처럼.
그래서 보통 나의 평가는, 나 자신의 박함과 타인의 위로로 이루어졌다. 연말 성과평가에서 먼저 자신의 업무에 대한 셀프 평가를 제출했을 때 나의 성적표는 언제나 평균이거나, 평균보다 살짝 아래였다. 내가 해낸 일들은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고, 그마저도 더 낫게 할 수 있었다는 후회가 남는 일들은 그렇게 잘한 것처럼 스스로가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팀장이 되고 난 후, 나는 더 이상 나의 평가만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나에게도 상사가 있었고, 팀장으로서 나의 한 해 동안의 성과를 이야기해야 했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내가 이제 팀원들의 성과에 대해, 팀장으로서 평가를 작성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거였다.
처음 평가서를 작성할 때의 겨울날, 팀원들이 모두 퇴근한 다음 바카라상 앞에 앉아 나는 한 해 동안 팀원들이 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떠올리기 시작했다.
올해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소화했는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그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
회사에서 준 평가 기준과 가이드는 매우 정확했다. 보통의 인사평가 지침이 그렇듯이, 굉장히 냉정하고, 효율적으로 짜여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가이드를 그대로 따를 수 없었다. 가이드대로, 냉정하게 업무만 놓고 평가하기에는, 나에게 너무 많은 말들이 남아 있었다. 처음 인사평가를 생각했을 때, 솔직하게 그렇게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나의 생각은, 이내 틀렸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이 평가서에서 한 줄도 손이 나아가지 못했다. 한 사람의 1년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1년이 단순히 몇 개의 숫자와, 몇 줄의 문장으로 정리된다는 사실은 내가 겪었던 경험에서는 당연한 일이었음에도, 남에게 남겨야 하는 문장이 되고 나니 쉽사리 손댈 수 없는 글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지난 1년 동안 정말 누가 봐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성과가 그렇게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지만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고, 시작과 끝을 비교한다면 가장 많은 변화를 이끌어낸 사람이라고 볼 수 있었다.
반대로, 남들과 비교하면 충분한 성과를 내었지만 기대치에 비해서 조금 미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에게서,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봐야 하는 걸까.
그들이 일궈낸 성과의 크기로 봐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 성과에 다가가기 위한 과정의 노력을 주의 깊게 봐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으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과정에 뭐가 있었는지를 확인해 봐야 하는 걸까.
인사평가 가이드에는 나오지 않는, 그것은 현실이었다. 명확하게 내려질 수 없는 답에서 나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지금 공정한 눈으로 그들을 공평하게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걸까. 내가 지금 평가하겠다고 하는 사람의 이미지는 그들의 진짜 모습일까, 아니면 내가 갖고 있는 하나의 선입견에서 만들어진 그 사람의 이미지일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그저 생각하고 싶은 대로 본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호감과 비호감의 기억인 것일까. 팀장은 팀원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가장 제한적으로 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이 회사라는 공간에서 보여준 모습뿐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평가서를 작성한 뒤, 제출하기 전 팀원들과 개별적으로 면담을 하면서 한 해의 성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로 인해 평가서를 달리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문득 내가 생각하는 그들의 성과와, 그들이 생각하는 성과의 크기도, 범위도 모두 제각기 다를 수 있다는 생각에서부터 나온 행동이었다. 나는, 갑자기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해소하고 싶었다.
팀원들은 제각기 각자의 스타일대로, 그래도 다행히 솔직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떤 사람은 조심스럽게, 어떤 사람은 당당하게, 어떤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담담하게.
"제가 올해 해 낸 성과는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성과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해 보겠다고 했는데, 그렇게까지 만족스러운 결과는 내지 못했습니다. 내년에 좀 더 노력해 보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했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쭈어도 괜찮을까요? 저에게 좀 더 기대하셨을까요?"
각양각색의 이야기들, 내가 예상했던 이야기도 있었고, 예상하지 못한 반응도 있었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나는 평가서를 정리하여 내 상사인 임원에게 초도 자료를 제출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고, 어떤 사람은 기대했던 것보다 낮은 평가를 받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평가 속에 나는 평가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평점으로, 점수를 매기는 것이 평가가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에 대한 평가는, 단순히 몇 줄의 문장과 몇 점의 점수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평가를 마치고 난 후의 평가서는 시스템 한 구석에 등급과 점수로 저장되고, 어느 순간순간마다 떠올려지면서 그 한 해를 결국엔 성적표로 상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란 그렇게 단순하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이야기하고, 부족했던 것은 부족했다고 이야기해야 했다. 그 사람이 다음 해에 더 잘할 수 있도록 필요한 이야기를 해야 했다. 어쩌면 그것이 팀장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배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과, 좋은 평가를 해주는 것은 또 서로 다른 이야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좋은 평가란 어쩌면 그 사람이 듣고 싶은 평가일 것이다. 하지만 공정한 평가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결과, 그리고 그 사람이 보여준 행동을 기준으로 해야 했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는 평가에서 빠져야 했다.
나와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인지도 중요하지 않아야 했다.
내가 편하게 느끼는 사람인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 또한 사람인 이상, 그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평가를 할 때마다 일부러 한 번씩 멈춰 생각했다.
내가 이 사람을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이 사람에게 기대했던 것과 실제 결과를 혼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성격을 좋은 업무 태도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반대로 나와 잘 맞지 않는 성향을 능력 부족이라고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질문들을 하나씩 적어놓고 나니, 평가라는 것이 결국 팀원을 보는 일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이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바라보는지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평가란 어쩌면 그 사람을 결정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모습을 기록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함께 이야기하는 일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팀장이 팀원을 평가한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기분을 바카라임지는 일이 아니라, 내가 본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그 사람이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도록 돕는 바카라임을 지는 일일 것이다.
팀장이 되어 보니 알게 되었다.
평가는 누군가를 판단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내가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인지 드러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아직도 팀원을 평가하는 일이 어렵다. 아마 앞으로도 완전히 익숙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사람을 숫자로 표현하는 일에 익숙해지는 순간, 사람을 숫자로만 보기 시작할 것 같아서다. 한 사람의 1년이란 글로 엮으면 수만 줄의 문장이 나올 수 있는 것이기에, 그리고 그 사람의 1년을 바라본 뒤,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를 다시 고민하고 압축된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기에, 그렇게 생각하면 평가표에 적는 몇 줄의 문장이 예전처럼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팀장이 해야 하는 가장 어려운 평가는 팀원을 평가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을 평가하는 순간에도 그 사람을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점수와 등급을 적고 나서도, 그 사람의 이름 앞에 한동안 커서가 깜빡이던 이유는 아마 그것 때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