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운 날

내가 보는 사람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었다

byKarel Jo


팀원의 평가서를 제출하면서, 그 팀원이 지난 한 해 동안 나와 함께 무슨 일을 하였는지, 어떤 성과를 낸 것인지, 그리고 그 성과를 내기 위해 본인의 업무 몰입도와, 태도는 괜찮았는지, 결정적으로, 올해의 성과가 내년에도 죽 이어져, 더 많은 기대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결국 팀장이 팀원을 평가한다는 것은 단 한 줄로 말하기엔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팀원에 대해 판단하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 판단에서 나는 평가를 마치고 난 뒤에 언제나 마음이 무거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팀원의 결과물에 대해, 스스로의 개인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본다고 생각은 했지만 과연 결과물이 그랬는지에 대한 자기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해 내가 보아야 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았을까.

내가 본 사람의 그 모습과, 내가 알고 있는 모습은 정말로 그 사람의 모습일까.


확신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미룰 수는 없었다. 명확함은 없어도 때로는 시간에 의해 그저 결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바카라임이고, 팀장이라는 자리는 비록 작은 권한이지만 자신의 결정에 대해 바카라임을 져야 하는 자리이며, 반대로 말하면 바카라임일 수만 있다면 결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의 소신이었으니까.


그렇게 첫 평가를 마치고, 어느 날 그러나, 꽤 빠르게 어쩌면 나 스스로가 사람을 올바르게 바라보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깊게 해 보지 않았다. 내가 틀렸다는 생각 자체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어떤 일이든 간에 나는 '구조화'가 중요한 사람이다. 일을 바라볼 때에도 가장 먼저 스스로가 하는 일은 그래서 이 일을 왜 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일은 어떻게 구성되어 이루어지고 있는가, 어떤 곳에서 가장 취약성을 띠고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며 그 일에 대한 흐름을 찾으려고 한다. 내가 즐겨 쓰는 표현으로는, '일의 결'을 찾는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것은 사람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범주화'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 사람은 평소에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앞서는 사람이니 행동하기 전에 명확한 방향을 설정해 주자.

이 사람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사람이니까 일의 과정도 조금은 더 살펴 주자.

이 사람은 그렇게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니까, 분란을 일으킬 표현들은 조금 더 자제해 주자.


그리고 나의 그런 범주화는 보통 그렇게 틀리지 않았다. 틀리지 않은 경험은 상대적으로 확신이 되어 스스로에게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다.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나의 주관은, 그렇게 나의 생각을 보통의 생각으로 감추어 지금까지 끌고 왔었다. 물론, 가끔 그 주관이 틀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행동하는 사람이 며칠씩 고민하는 걸 볼 때, 의외라고 생각되면서도 결국 내 말 한마디에 손이 먼저 나가는 것을 볼 때에, 나는 내 안의 선입견 속에서 또다시 그를 바라보며 '그럴 줄 알았지'라고 안심하며 머릿속 카테고리 안의 그를 편안히 다시 서랍으로 집어넣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10월 법인인 우리 회사는 보통 평가가 끝나고 난 뒤의 연말이 1분기 말이기 때문에 이미 첫 분기의 실적 정리를 위해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나는 회사 밖의 풍경이 평화로운 그런 날이었다.


나는 어느 한 팀원과 단 둘이 점심을 먹을 일이 있었는데, 평상시에 조용조용하고 자기 의사표현이 그렇게 강하지 않은 직원이었다. 일의 안정감은 누구보다도 더할 나위 없었지만, 나는 그가 앞으로 그렇게까지 더 큰 역할을 맡고 싶어 하는 모습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그렇게까지 큰 미래를 그려주지 않았고, 언제나 제일 잘할 수 있는 일만 습관적으로 배정해 왔다. 그러나 팀원 중 한 명이 갑자기 빠지게 되어, 업무를 남은 팀원들이 당분간 나눠서 해야 할 상황이 왔었고, 그 팀원은 나를 도와 매월의 손익추정과 그 추정의 결괏값이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분석을 주로 하던 팀원이었다. 나 혼자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그에게 해 볼 수 있겠냐는 의사를 물었고, 언제나 그랬듯이 그는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지시한 일을 해내고 있었다.


물론, 그로서는 처음 하는 업무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나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 일도 잦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러면 안 된다고, 좀 더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먼저 자료에 넣어 달라고 얘기하곤 했고, 그는 힘든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몇 시간 뒤에 조금 더 나아진 결과물을 갖고 오곤 했다. 표정을 읽어낼 수 없었기에 더 말하지 않고 마무리는 내가 하겠다고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돌려보내곤 했지만, 솔직하게 완전히 편하진 않았다. 그가 보람을 느끼는지도 알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답답함도 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와 연말의 거리를 걷다가, 우연찮게 내가 평소에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분기 다 지났지만 그래도 연말은 연말이네, 요새 내가 많이 힘들게 하죠? 얼른 A님이 돌아와서 내가 이제 덜 힘들게 해야 할 텐데."

"에이, 아니에요 팀장님. 저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아요. 오히려 요새는 감사하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갑자기 감사를요? 왜요? B님은, 요새 나랑 하는 추정 같은 일 별로 안 좋아하지 않았어요?"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이미 잘하시는 분이 있는데, 시간이 흐르면 저에게도 기회가 올 수도 있겠다는 마음으로 그냥 별로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팀장님은 바쁜 분이니까, 제가 괜히 하고 싶다고 하면 이것 때문에 또 머리 복잡하게 이것저것 고민하실 거 같기도 해서 그렇게 급한 건 아니니까..."

"아니 그래도... 우리 목표도 세우고 하는데 그런 생각이 있으면 좀 더 반영을 했을 텐데."

"괜찮아요. 지금 이렇게 경험해 보는 것도 충분히 좋다고 생각해요. 제가 좀 더 스스로 잘하게 되면 그때 다시 정식으로 요청드릴게요."


B는 말을 평소에도 그렇게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고,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를 특별히 미래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은 직원으로 범주화했다. 그 카테고리 안에서, 그리고 그의 행동은 그를 다시 재분류하게 만든 적도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나는 내 선입견이 사실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B가 사실은 욕심이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보다, 내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묻지 않은 채로 그저 그의 침묵을 욕심 없는 사람으로 해석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은 나에게 매우 크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B는 그저, 나라는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서 표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그 사람의 틀대로 움직이지 않을 뿐이었다. B에게 그동안의 침묵은, 그에게는 관심의 부족이 아닌 기다릴 시간이었다. 자기에게 언젠가 주어질 그날을 위해, 그저 성실히 스스로를 기다려 오는 시간.


그러나, 나는 그 순간에는 곧바로 나의 틀림을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생각이 있었으면 당연히 나에게 먼저 말했어야 하지 않나?'라고 어느 정도는 원망 섞인 생각도 들었다. 결과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 말했기 때문에 나의 머릿속은 좀 더 복잡해졌고, 나의 카테고리에는 변동이 생겨야 한다. 그는 욕심이 없지 않다는 명제가 들어와 위치를 바꿔야 했고, 그러니 나로서는 그 변경에 대한 이유를 원망하고 싶었다. 왜, 나의 생각을 바꿀 이유를 이제 와서 말해주느냐라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건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어떠한 이유가 있었다고 해서 내 판단이 언제나 맞다는 말은 또 아니니까.


팀장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사람을 판단하는 일보다 판단을 수정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이었다. 한번 만들어진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특히 그 생각을 내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거나,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고 있을수록 더 그랬다.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에 대한 판단이 들 때 한 번 더 생각하려고 한다.


내가 이 사람을 정말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내가 본 몇 가지 모습으로 그렇게 단정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내가 틀렸을 가능성을 얼마나 열어두고 있는지도 생각해 본다.


물론 지금도 쉽지는 않다. 나는 여전히 내가 옳다고 생각할 때가 많고,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에는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그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한 번쯤 멈춰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혹시 내가 틀린 것은 아닐까. 내가 너무 나만의 시선만을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그 질문 하나를 할 수 있게 된 것.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나는 그렇게, 그날 이후로 나의 서랍을 한 번씩 다시 들여다보곤 한다.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게 붙여놓은 이름표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넣어둔 그 서랍 안에, 정말 그 사람이 들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보고 싶었던 모습만 넣어둔 것인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생각보다 나는 많이 틀린다.

다만 예전과 다른 것은, 이제는 내가 틀렸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을 제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그 사람을 정확하게 분류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만든 분류에서 그 사람을 언제든 꺼내어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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