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 앉았다

특별히 다를 것 없던 시작

byKarel Jo


팀장님이 "형근님이라면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씀하신 뒤, 한번 해보겠다고 답한 그날 이후, 시간은 굉장히 빠르게 흘러갔다. 퇴사는 예기치 않은 일이었지만 이미 그전에 나도, 팀장님도 서로 계획한 휴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디 시간이란 어느 순간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흐르는 때가 있다곤 하지만, 그때만큼 시곗바늘이 짐작할 새 없이 지나갔던 순간도 몇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와 팀장님의 일정이 끝나고 난 뒤, 마지막 날이 되었다.


나 또한 네 번의 이직을 거쳐 다섯 번째 온라인 게임으로 시작한 이곳이었기 때문에, 온라인 게임인에게 마지막 날, 퇴사날이라는 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보통 내가 먼저 나가는 쪽이었지, 상사를 보내본 경험은 별로 없다 보니 내 옆자리에서 팀장님이 자리를 이것저것 정리하시는 모습은 도통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당연하게 비치는, 오래된 바카라상 서랍 안의 서류뭉치를 보고 놀라시는 모습이나, 쓸 만한 물건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는 모습이라든지.


얼마 동안 바카라상 정리를 마치신 팀장님은 내색하지 않고 업무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이제 내일부터, 여기 앉아요."


사실 딱히 자리배치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지정좌석제라고는 하나, 보통의 한국회사처럼 부서 내에서 팀장 자리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필요에 의해 업무가 달라질 때마다 자리를 옮겨 다녔고, 팀장님 옆자리에 앉은 것도 팀장님과 할 일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만 옮겨 다녔지 팀장님은 내가 처음 회사를 들어온 그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 자리에 계셨다. 그 자리는, 내가 내색하지 않았지만 모두에게 팀장의 자리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문득 실감이 드는 상황에 어쩐지 정신을 차리기 어려워졌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모니터를 쳐다보았지만, 새삼스럽게 중압감이 다가왔다. 이제는, 진짜로 현실이 되는 순간이 머지않았구나.


팀장님의 마지막 인사는, 처음 내가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처럼 담백하고 간결했다.


"잘 지내고, 어딘가에서 또 볼 그날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요."


퇴근 시간이 아직 되지 않았지만, 회사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사람에게 퇴근 시간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팀장님의 마지막을 보냈다. 그분이 남긴 보이지 않는 바통을 옮겨 받아 단단히 말아 쥔 두 손으로.


다음날, 아침에 지하철을 뚫고 들어와 사무실에 들어오니, 팀장님의 자리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가방을 놓고, 노트북을 펴고 그 의자에 앉으니 새삼스럽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것은 나의 마음뿐, 사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게 아닐까 하고.


그렇게 나는 팀장의 자리에 앉았다.


물론 나는 당시에 정식 팀장을 이어받은 것은 아니고, 한동안 임시 팀장 역할을 했기 때문에라고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좀 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 팀의 장이 바뀌었을 뿐, 내가 느끼고 있는 무게감의 차이만 달라졌을 뿐 사무실의 공기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오히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사무실의 불이 여느 때처럼 밝게 빛나고 있고, 팀원들은 평소처럼 출근해 각자의 자리에 앉아 밝게 나에게 인사했고, 메신저에는 여러 부서에서 날아오는 질문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세상은, 회사는, 팀장님이 없어졌다는 사실 같은 건 별 문제가 아니라는 것처럼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달라진 것은, 그저 나뿐이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내 어깨에 올라 감당해야 할 것들이 달라진 것뿐이었다.


그날의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고, 그저 위화감으로만 느끼고 있었다. 팀장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더 많은 권한을 갖는 일이 아니라, 이전에는 내 몫이 아니었던 고민들마저 끌어안은 채로 나의 고민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일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자리가 아닌, 그 판단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자리로 내가 옮겨왔다는 것을.


그날의 나는 그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을 뿐이다. 평소와 같은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다만, 그날부터 평소와 같은 하루는 다시 오지 못했다.

월, 목 연재
이전 01화듣고 싶지 않았던 팀장님의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