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상사가 먼저 떠날 줄은 몰랐던 그날
2022년 6월의 마지막 날에, 나는 다음 날 으레 맞이해야 할 결산의 첫날을 위해 몇 가지 일을 준비하고 있던 참이었다. 퇴근시간이 조금 지나긴 했지만, 지금 준비하면 다음날이 편해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하다가 갈 생각으로 자리에 앉아있는 나의 옆자리로, 팀장님께서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시며 평소답지 않게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나에게 나지막이 말하셨다.
"형근 님, 미안한데 오늘 먼저 들어가 볼게요. 너무 늦지 말고 들어가도록 해요."
평소에도 팀장님께서 그렇게 야근을 많이 하시는 편은 아니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우리 팀은 한 달에 정말 필요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야근을 하지 않는 게 더 좋은 일이라는 분위기가 있는 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조금 남아서 일을 할 때는 으레 바카라임감이셨을까, 직접 팀장님께서 무엇을 하시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마무리를 할 때까지는 기다리시던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손사래를 치며 얼른 들어가 보시라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쩐지 석연찮은 기분이 들었다. 며칠째, 팀장님께서는 머리가 아프다고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별 일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며 다음날의 결산을 위해 준비하던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뒤에, 나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가서 나를 반겨주는 딸아이와 잠시 놀아주다가, 오늘 팀장님의 어색함에 대해 아내와 얘기하던 나는 곧 잠이 들었고, 그렇게 다음날 아침이 밝아와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항상 나보다 먼저 와 계시는 팀장님의 옆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피고 가볍게 인사를 올렸을 때만 해도, 팀장님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엷은 미소를 띠고 계셨다.
그러나 곧, 아웃룩 창에 어색한 일정이 하나 잡혔다. 팀장님께서 보내신 1on1, 시간대는 오후 네 시.
결산을 진행하면서 아직 팀원들과 같이 일한 지도 채 1년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팀은 매 결산마다 새롭게 터지는 일들을 제 때에 수습하는 것만으로도 잘했다고 자축하는 그런 시기였다. 옆팀이 순간적으로 1명만 남기고 공석이 된 그 순간에는 더더욱이나 그랬다. 그저,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만을 기도하면서 눈앞에 주어진 수많은 문제들을 헤쳐나가기에 급급한,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정신없는 3일을 한 달의 첫날부터 보내는 것을 모르시지 않는 팀장님께서 굳이 1일 차에 잡은, 그것도 평소에는 잘 하시지도 않던 1on1을 보내셨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은 했다. 정말 아니기만을 바랬지만, 그런 때가 있지 않나, 꼭 나쁜 생각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사실, 미팅 장소를 굳이 사무실이 아닌 건물 내의 커피숍으로 잡았을 때부터 이미 진부하고 뻔한 클리셰였을지도 모른다. 먼저 내려가 계셨던 팀장님이 늦었지만 차가운 거라도 한 잔 마시자면서 고른 음료를 앞에 두고, 팀장님께서 먼저 말씀을 꺼내셨다.
"혹시 내가 왜 얘기하자고 했는지 알아요?"
"제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는 건 알겠지만... 아마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시, 형근 님은 눈치가 빨라서 좋아요."
배시시 웃으시면서 팀장님은, 그렇게 나에게 퇴사 통보를 하셨다. 기간은 지금으로부터 4주 뒤, 실질적으로 2주 동안 여름휴가를 가실 예정이고, 다음 주에 나 또한 휴가를 가기로 했으니 우리가 볼 날은 고작 1주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사실 그때의 나는,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 말을 들으니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도무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 결정에 대해 왜 결정하셨냐고 물어봐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동안의 힘듦을 잘 챙겨드리지 못한 나의 어설픔을 죄송스러워해야 하는 걸까, 그도 아니면, 이제야 안정의 돌파구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직접 깨뜨리려는 그 결정에 대해 이기적이라고 원망을 해야 하는 걸까, 어느 쪽도 맞는 생각이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말을 끝으로 아무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던 나를 보며 팀장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갑자기 결정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커리어를 생각해서 좋은 회사에 왔다고 생각하지만 업종이나, 여러 업무 환경이 본인이 겪으신 상황과 너무 맞지 않았고, 특히 최근에 Finance 조직의 여러 변화들이 자신에게는 꽤 버겁게 다가왔다는 점, 새로운 도전을 마침 할 수 있는 나이와 적절한 기회가 왔다는 점을 들어 팀장님은 나에게 조근조근 말씀해 주셨다. 나의 팀장님으로서가 아니라, 팀장님 본인의 회사원으로서의 가치에 대해, 본인의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한 미래에 대해.
그 결정에 대한 말씀을 충분히 들으면서, 나는 어쩐지 점점 더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팀장님 본인의 상황과, 결단을 내리신 경위에 대해서는 심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결국 남겨진 나와 다른 팀원들에 대해 '그래서 이후로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빛이 어지러운 나를 알아차리신 듯, 팀장님은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이미 위에다는 얘기해 놨어, 도전해 봐요. 나는 형근 님이라면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 말씀 뒤에, 나는 쉽사리 답을 할 수 없었다.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은, 그날따라 이상하게 무겁게 들렸다. 은연중에 어렴풋이 그래야 하지 않을까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지만, 잘할 수 있다는 말은 때로 잘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누군가의 믿음은 생각보다 쉽게 바카라임으로 바뀌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그저 팀장님이 떠난다는 사실이 아쉬웠고, 앞으로 우리 팀이 어떻게 될지가 걱정됐고, 무엇보다 내가 그 자리에 앉는다는 것이 선뜻 실감 나지 않았다. 내가 정말 팀장이 될 수 있을까. 팀원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내가 해오던 일과 팀장이 해야 하는 일은 얼마나 다른 것일까. 그날 커피숍에서 팀장님과 마주 앉아 그런 생각들을 하나씩 떠올리면서도,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네.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팀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그날 팀장님이 내게 건넨 말은, 단 한 마디였지만 그때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긴 문장이었다. 나는 그 말 이후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수없이 많은 결정을 내렸고, 그만큼 많은 순간에 흔들렸다. 잘했다고 생각했던 날도 있었고, 도대체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던 날도 있었다. 팀원들의 성장을 보며 기뻤던 날도 있었고,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사람과 일 앞에서 무력감을 느꼈던 날도 있었다.
어떤 날에는 팀장이라는 자리가 생각보다 괜찮다고 생각했고, 어떤 날에는 정말이지 누구에게라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팀장, 절대로 하지 말라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날의 나는 그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팀장이 되어 잘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팀장이 된 뒤에야 알게 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팀장이란 단순히 사람을 이끄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 있는 자리라는 것, 누군가의 상사가 된다는 간단한 사실보다, 누군가의 마음을 감당해야 하는 순간이 더 많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나 자신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는 것.
그때의 팀장님은 나에게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말에 아직도 답을 찾는 중이다.
다만 한 가지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팀장이 되는 것은 누군가를 이끄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끊임없이 들여다보게 되는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4년이 넘는 나의 팀장 생활은 그날 내가 듣고 싶지 않았던 그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