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여름

by봄비


‘여름’이라는 말의 어원은 ‘열매’에서 기원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여름은 모든 식물이 열매는 맺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여름 하다’는 농사 짓다는 뜻으로 가장 바쁘게 일할 시기가 여름인 것을 말해 준다. 여름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여름’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가볍고 꽤 괜찮은데 여름이라는 계절이 주는 무더위와 끈끈함, 장마가 주는 습기 등은 무거워서 가라앉게 만든다. 벌써부터 몸이 축 쳐진다. 이 더위에 뭘 해먹어야 하나 걱정이다. 겨울엔 육개장이나 시래기된장국 등을 끓여 먹으면 힘이 나는데 여름은 보양식으로 삼계탕이나 백숙 외엔 딱히 생각나는 음식이 별로 없다. 입맛이 별로 없으니 냉면이나 비빔국수 등으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다.

더우니까 차가운 음식만 찾게 된다. 아이스크림, 빙수, 시원한 수박과 여름 과일과 아이스아메리카노 등 차가운 음료나 음식은 먹을 때는 시원하지만 금세 체온은 높아진다. 순간뿐인 찬 음식들이다. 계속 시원하게 해주는 음식은 없다. 오히려 이열치열로 뜨거운 음식을 먹으며 땀을 뻘뻘 흘리는 게 더 나을 지도 모른다.

갈수록 지구의 온도가 높아진다. 이 시골에도 에어컨이 없으면 안 될 더위로 해가 갈수록 더 여름이 뜨거워진다. 프랑스에서는 가정에서 ‘에어컨’ 사용이 극히 드물다고 한다.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공공시설이나 도서관, 사무실 등에서만 에어컨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폭염 때문에 에어컨 사용을 두고 정당 간의 이슈가 되고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여름이 이렇게 더운 계절이었는지 몰랐는데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여름이 더 길고 무겁게 느껴진다. 다음세대들에게 이런 기후와 지구를 물려준다는 게 미안할 뿐이다. 그래서 세계 일각에서는 새로운 지구를 찾고 조성하는 데 관심을 가지는 지도 모르겠다. 미래과학영화에서 보던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싶다.

여름 하면 더우니까 ‘방학’이나 ‘수련회’, ‘휴가’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더워서 쉼이 필요한 계절인 지도 모르겠다. 심리적으로 휴가와 방학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더운 시간을 견디는 지도 모르겠다. 올 여름은 딱히 휴가 계획이 없다. 잠깐잠깐 짬을 내어 보은의 서원계곡이나 만수계곡, 괴산의 망개나무숲 등을 찾아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보면 잠깐이라도 더위를 잊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도시에서 자취생활을 해서 여름방학이면 으레 집으로 돌아갔다. 방학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가장 기뻤던 것 같다. 어느 해 여름엔 사촌오빠가 잠시 우리집에 머물렀는데 장마로 비가 내리던 어느 날에 사촌오빠와 함께 논의 관개수로에 가서 미꾸라지를 엄청 잡았던 기억이 있다. 팔딱팔딱 뛰던 미꾸라지가 미끄러워서 잡아넣는 일이 쉽진 않았지만 재미있었다. 아직도 그때의 미꾸라지가 펄떡펄떡 뛰던 모습과 미끄러운 감촉이 생생하다. 그 미꾸라지로 어머니가 추어탕을 끓여주셨다. 그때는 손수 미꾸라지 뼈를 발라 추어탕을 끓였었다. 지금이야 추어탕이 생각나면 식당을 찾는데 말이다. 손으로 뼈를 바르기 때문에 뼈를 발라내면서 뼈에 찔리기도 하셨다. 다 바르지 못한 뼈가 입안에서 걸리기도 했다.

초등학교(초등학교) 다닐 때 방학 가운데 하루는 학교에 가기도 했다. 방학 소집일이라는 명칭으로 모였다. 별다른 일은 없었는데도 그냥 모였다. 하루에 5-6대 버스가 다니던 시골에 살아서 버스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10리길을 걸어다녀야 했다. 3-4학년 여름방학이었던 것 같은데 걸어오는 동안 너무 목이 말라서 논의 물을 손으로 모아 물을 마셨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하다. 어쩌면 농약을 쳤을지도 모를 논인데 말이다. 여름이라 한창 모가 자라던 시기였을 것이다. 그래도 그때의 갈증을 풀어주었던 논물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영상처럼 선명하다.

또 하나의 추억은 포도서리를 했던 기억이다. 지금은 잊혀진 단어이지만 그때는 ‘서리’라는 게 있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의하면 ‘서리’는 “떼를 지어 남의 과일, 곡식, 가축 따위를 훔쳐 먹는 장난”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종의 도둑질과 같다. 지금은 통용될 수 없는 말이지만 당시엔 과일을 서리해서 몰래 훔쳐먹는 일이 종종 있었다. 힘써 키워서 서리당하는 주인은 속상할 일이지만 서리하는 이들은 일종의 놀이처럼 했었다. 나도 마을 언니오빠들과 함께 한 번 마을 교회 장로님의 포도농장에 밤에 몰래 들어가 서리해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딱 우리가 먹을 만큼만 서리했다. 또 거의 마지막 남은 포도였던 것 같다. 아마도 장로님은 눈치채셨던 것 같은데 우리에게 별 말은 없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서리여서 얼마나 가슴이 쿵쾅대던지 역시 도둑질은 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여름에 관한 추억을 돌아보니 더위가 좀 가시는 것 같다. 무덥고 습한 여름을 잘 나는 방법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모쪼록 뜨거운 태양에 무르익는 열매를 기억하는 계절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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