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도 이렇게 더울 수 있을까? 땅이 갈라지고 꽃과 풀이 타들어간다. 햇빛이 쨍쨍하다 못해 이글거리는 듯하다. 이 시골에서도 에어컨이 아니면 견디기 어려운 더위라니…. 보은에 내려온 17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보은의 다른 동네보다 지대가 높아 그리 덥지 않았는데 이제는 에어컨 없이 한여름을 못 날 지경이다. 중요한 것은 올해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고 한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더울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행히 입추가 지나니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시원해졌다. 태풍의 영향 때문인지 어젯밤에는 자다가 추워서 창문을 닫을 정도였다.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 편리함을 추구하는 욕망으로 망쳐놓은 자연 때문에 기후 위기에 놓여 있으나 다행히 여름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오는 자연의 순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올 여름 무더위를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지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젠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 세계적인 차원에서 마음을 모아 함께 대응해 나가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뜨거운 햇빛 덕분인지 채소들은 잘 자랐다. 물론 물을 주지 않아 가지는 말라버리기도 했다. 올해는 옥수수를 제때 거두지 못해 1시간을 삶아도 말랑하지 않고 딱딱하다. 옥수수알을 뜯어 밥에 넣어먹어야 할 듯하다.
여름이면 마을 어르신들에게서 가장 많이 얻어먹는 게 호박과 오이다. 여름 호박은 폭신하여 새우젓을 넣은 호박볶음이나 호박고추장찌개를 끓여먹는 게 별미다. 오이는 오이김치를 담거나 오이무침, 샐러드, 김밥, 샌드위치 등 어디에 넣어도 무더운 여름을 식혀주는 아삭함이 있다. 올해는 특히 마을분들에게서 복숭아를 많이 얻어먹었다. 판매용이 아니라 크지는 않지만 알차게 익어 맛있게 먹었다. 또 순치기를 한 깻잎을 많이 얻어 깻잎김치를 담고 장아찌를 담고, 어린 순은 깻잎나물을 해서 먹었다. 깻잎을 다듬고 씻고 양념을 하는 과정은 쉽지 않지만 왠지 든든하다. 입맛 없는 여름에 입맛 살려주는 오이김치, 깻잎김치 등 밑반찬이 있으니 든든하다. 어딜 가면 이런 이웃들을 만날 수 있을까.
나도 나누는 걸 좋아한다. 시골에 사는 기쁨 중에 하나는 나눌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5월에 한창 상추류가 많이 날 때는 도시에 사는 지인들에게 부추, 미나리, 샐러리 등과 함께 택배를 보냈다. 6월에는 같이 운동하던 지인의 블루베리밭에 가서 블루베리 따는 걸 도와줬는데 그때 얻은 블루베리를 저당잼으로 만들어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빵에 발라먹기도 좋고 요플레에 넣어 먹기도 좋다고 피드백을 해주면 수고한 보람이 생긴다. 또 일부러 우리집을 찾아준 친구나 지인들에겐 시골에서 키운 농산물을 나눠주면 좋아한다. 친정집에 왔다간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시골에 살기 때문에 가능한 인심이다.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인심이다. 도시에 살 때는 이웃에게 뭘 하나 건네기도 편하지 않았다. 괜히 좋아하지도 않는데 주는 건 아닌가 걱정하면서 결국은 주지 못할 때도 많았던 것 같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시골 인심이 좋다. 얻어먹는 것도 감사, 나눠줄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서로 오가면서 정이 더 깊어지는 듯하다. 날은 덥지만 마음은 따뜻한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