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땅

by봄비

땅콩을 캤다. 땅콩을 좋아해 봄에 모종 한 판을 사서 심었다. 워낙 밭에 돌이 많아서 땅콩이 들었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땅콩이 열렸다. 꼬투리째 삶아 먹었는데 어찌나 고소한지 자꾸 손이 간다. 볶은 땅콩과는 다른 고소한 맛이다. 삶은 땅콩은 속껍질째 먹어도 괜찮아 먹기에도 편리하다.

성경에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는 말씀이 있다. 성경에서의 “좋은 땅”은 비유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땅콩을 캐면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이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땅콩 한 알을 심었을 뿐인데 수많은 꼬투리들이 달렸으니 말이다.

어디 땅콩뿐이겠는가. 요즘 보은대추축제에 대비해 한창 따고 있는 대추도 그렇다. 한 가지에 얼마나 많은 대추가 열리는지 가지가 무거워 쳐지기도 한다. 열매솎기를 하지 않으면 한 가지에 몇십 개가 열린다. 그나마 대추알을 키우기 위해 열매솎기를 하니까 대추 양이 줄어드는 것이다. 올해는 가을에 비가 많이 오지 않아 대추가 맛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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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나 감자도 그렇다. 30배는 안 되어도 고구마순 하나에 딸려나오는 고구마들, 눈이 있는 감자 한 조각에 여러 개의 감자들이 맺고 옥수수 한 알을 심으면 옥수수 한 개에 수많은 알갱이가 촘촘히 박혀 있다. 땅이 주는 선물이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 중 으뜸인 것은 벼이삭일 것이다. ‘황금 들판’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가을 들판이다. 머리를 숙인 벼이삭에는 100여 개의 낟알이 달려 있다. 올해도 피로 고생은 좀 했지만 추수할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심고 물 준 것 뿐인데 얼마나 성실하게 열매들을 맺는지…. 가을은 ‘감사’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계절이다. 굳이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는 식상한 표현을 하지 않아도 풍성한 계절이다. 늙은 호박과 고구마, 밤과 감과 사과, 배까지 겨울이 오기 전 부지런히 부풀어 올라 우리의 몸과 마음을 풍성하게 해준다. 참 고마운 땅이다.

나는 인생의 3분의 2를 살면서 누군가에게 좋은 땅이 되어주었는지 돌아본다. 성숙하지 못해서 자녀들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성급하게 내 생각이나 의견을 강요한 건 아닌지, 내 것만 챙기느라 이웃들에게 인색하지는 않았는지, 보이는 것으로 단정하고 판단하지는 않았는지, 내 일이 아니라고 지역의 일엔 소극적으로 임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는 계절이다.

한 개인도 좋은 땅이 될 수 있지만 마을도, 보은이라는 지역도, 이 나라도 마을 주민들에게, 보은 지역민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에게 좋은 땅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장을 비롯해 마을 주민들이 한 마음으로 마을을 가꾸고 서로 돕는 것이고, 보은 군수를 비롯해 공무원들과 지역민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지역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고 살기 좋은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어떤가. 세계의 수많은 나라 중에 아주 작은 나라이고, 남북대립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는 나라이지만 대통령을 비롯해 국무위원, 정치인, 기업인, 행정인들이 각자 맡은 일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임하기 때문에 국가가 존재하고 국민들이 살아가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자신의 이익이나 권력을 위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면 좋은 땅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치나 행정, 기업이 하는 일에 모두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좋은 땅이 되기 위해 애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개개인은 이 지역이, 나라가 좋은 땅이 아니라고 불만하기 전에 내가 먼저 좋은 땅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거저 주는 것들이 많은데 우리는 나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자연을 닮아가는 것, 땅을 닮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이 가을에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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