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풍요로운 귀성길이었다면 오늘 귀경길은 뭔가 좀 쓸쓸하다.
오후 2시부터 가랑가랑 내리던 비는 4시에 접어들면서 다소 굵어졌고 귀경길 차량의 앞뒤가 젖어드는 게 분위기는 갑자기 좀 을씨년스럽고 스산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 꽁무니의 붉은 불빛이 끝을 모르고 이어져 있다.
차창을 지쳐대는 빗줄기를 보니 감회도 새롭다.
추석 연휴가 4일이라고는 하지만 주말에 여느 때처럼 하던 일이 있는 사람에겐 고작 이틀이 전부인 셈이다.
주말에도 연구실을 나가던 큰애가 마음이 조급한지 연휴 첫날 새벽 3시를 넘자마자 남편과 나를 재촉해 귀성길에 나섰다. 하지만 귀성객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을까.
나주까지 가는 데만 12시간이 걸렸다.
저녁에 시동생들 가족과의 왁자지껄한 식사를 마치고 추석 당일 우르르 시부모님 성묘까지 다녀온 남편과 시동생들이 미처 다하지 못한 얘기를 나누기도 전에 하릴없이 다음을 기약하고 뿔뿔이 흩어진다.
몸은 고단하지만 하루도 채 안되는 만남을 위해 먼길을 불사하고 한집에 모이는 남편과 그 형제들의 우애가 내심 부럽기도 하다.
짧은 귀성길이었지만 이런저런 지난 일들이 떠오른다.
30여 년 전 처음 인사를 갔던 시집 식구들이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던 때.
4형제 중의 장남인 남편의 때늦은 결혼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던 시아버님과 이미 세 딸을 두고 다복했던 둘째 시동생과 동서가 나를 반기던 그 함박웃음.
조카들의 영원한 삼촌인 셋째와 이제는 두 딸을 둔 넷째 시동생까지.
그 꿈결 같은 시간이 지나 이제는 크고 작은 일에 함께 웃고 우는 한가족이 되었다.
절로 미소가 머무는가 하면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문득 살아가면서 심신이 지치고 힘들 때 마음 깊숙한 곳에 재어 두었던 추억 하나를 꺼내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그런 추억 하나가 뜻하지 않은 위로와 희망을 주기도 한다.
추억은 추억일 뿐 지나간 시간의 기억 따위가 현실의 고단한 삶을 무슨 수로 위로하겠느냐고 누군가는 손사래를 칠지도 모르겠다. 오늘을 살아가기에도 턱없이 바쁘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까지 걱정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지나간 추억을 들춘다는 것 자체가 팔자 좋은 한량이나 할 수 있는 사치라고 치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만 바라보고 걷다가 조금만 시선을 돌려도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는 것처럼 조금 달리 생각하면 추억은 때로 삶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추억함으로써 감정의 불순물을 걷어내기도 하며, 미처 깨닫지 못했던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기도 한다. 때로는 분수처럼 하늘로 치솟는 감정의 역류를 경험하기도 하며, 어제와 오늘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비로소 이해되기도 한다.
만약 오늘 누군가 그대를 슬프게 했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황당한 일을 겪었다면 지나간 어느 한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 만약 그대가 가까운 사람이나 지인과 한바탕 말다툼을 벌였다면 그들과의 첫 만남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대가 오늘 만약 지나간 연인과 함께했던 무언가를 보거나 듣게 된다면 현재의 처지와 상관없이 과거로의 여행을 시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거기에 어쩌면 지금의 인연과 풀리지 않았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어쨌거나 추억은 우리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그렇게 우리 삶의 여정에서 언제나 우리를 소환해 준다.
그럼 우리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그렇게 추억과 현실을 넘나들면서 살아가면 될 일이다.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금 살아가는 매 순간은 다시 먼 훗날 고스란히 추억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문득 오늘 그대가 말할 수 없이 쓸쓸하거나 느닷없이 외로움이 엄습해 온다면 비록 그것이 카메라의 셔터처럼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가족과 더불어 즐거웠던 한때를, 지인과 어울리며 함박웃음을 터뜨렸을 때를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조금 더 시간이 허락한다면 바카라꽂이 어디쯤 꽂혀 있을 사진첩도 좋고 가족사진을 모아놓은 컴퓨터의 폴더라도 열어 봤으면 싶다. 아주 잠깐이나마 우주를 다 가진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