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몸싸움’이라는 실검에 올라온 기사를 보며 뭔지 모를 서글픔에 새삼 내 나이를 돌아봤다.
‘또 오륙남!’이라는 제목에도 눈길이 갔다. 아마 50~60대의 독불장군식 남성을 그렇게 지칭하는 모양이다.
참 안타깝다. 나이가 들어도 나잇값을 못 한다는 건 어쩌면 전적으로 그 본인에게 바카라임이 있다.
그만큼 스스로에 관대했기 때문이다. 제 눈의 티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티를 찾는 것에 더 열 올리며 지내왔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자기를 탓하기보다는 남을 탓하는 게 더 쉽고 익숙한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제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항상 내가 옳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하고 또 얼마나 스스로 성장을 멈추게 하는지!
독선과 아집은 자기 자신의 성장을 멈추는 데 그치지 않고 적잖은 곳에서 민폐를 끼치기도 한다.
사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늘 곱씹어야 하는 대목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해야 할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그때마다 내 생각이나 행동만을 앞세우면 나에게도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하기 어렵다. 행동하기 전에 그 행동이 공공의 이익에 해를 미치지 않는지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 그것이 민폐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열쇠는 늘 나에게 있다.
나 자신을 다스리는 게 가장 빠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러니 자기 나이에 바카라임을 진다는 것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누구든 시간이 흐르면 나이가 들게 마련이지만 어떤 모습으로 나이가 들 것인지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가끔 우스갯소리로 말하지만, 정말이지 도(道) 닦으며 살아야 한다는 게 딱 맞는 말이다. 아무리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옆에 진을 치고 있어도 나 역시 그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조금 더 쉬워진다. 여전히, 조금 더 자기 수련에 분발해야 하며, 나이도 공짜로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며 살아야 한다.
결국,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나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이 같은 깨달음은 나이를 먹는다는 표현과 음식을 섭취하는 것으로 비교하면 훨씬 더 쉬워진다.
한 살 더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 유명한 셰프의 맛난 스테이크를 먹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스테이크가 훨씬 그럴듯할 것 같지만 스테이크는 스테이크일 뿐이다. 한 살 나이의 맛은 365일이 너무 오묘해서 종잡을 수 없는 오지의 날씨처럼 가늠하기 어려운 터라, 몇 가지 익히는 정도만 다를 뿐 뻔한 맛의 스테이크가 이를 어찌 이길 수 있을까 싶다.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닳고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라면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는 것과 나이를 한 살 먹는 것은 또 어떨까. 양은 냄비의 라면이 금방 배를 채워주고 때로는 지나간 날들의 이런저런 추억을 소환하기도 한다면, 365일이나 되는 나이 한 살은 배를 채우지도 못하면서 때로는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치는 순간을, 때로는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와 같은 지루함을 다 포용하지도 못한 채 변화무쌍한 척 티를 낸다.
그래서일까. 나이 한 살을 먹는다는 것은 한없이 무기력해지다가도 어제와 오늘과 심지어는 내일까지 아우르는 힘을 갖고 있기도 한다.
그런데 끼니마다 음식을 챙겨 먹는 습관과 해마다 나이를 먹는 습관은 같은 듯 좀 다르다. 끼니는 때로 거르기도 하고 자의든 타의든 통째로 비울 수도 있으나 나이는 결코 피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는 기필코 달려들어 스스로 사람들의 먹잇감이 된다. 누구도 나이로부터 도망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고 누구나 철이 드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나이를 먹으며 몸과 마음을 키우고 누군가는 나이를 먹어도 마음을 키우진 못한다. 누군가는 나이를 먹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나이를 먹음으로써 그만큼 성숙해진다. 다만 누구나 알고 있지 않았을까. 먹어도 먹어도 나이는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는 더 나이를 먹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온다는 것을.
그러니 나이를 먹는 동안은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나이를 먹으면서 그 물리적 시간도 함께 누렸을 테고 거기에 담긴 많은 것들을 소유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비록 우리는 늘 가진 게 없다고 불평하기 일쑤지만 말이다. 참 부질없는 짓이지만 나이 먹은 만큼 또 그 많은 시간을 누리고 가졌었노라 여기고 나니 조금은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