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여자가 서른을 넘으면 올드미스란 꼬리표가 붙었고 뭣도 없이 눈만 높다는 둥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가 하면 서른 넘도록 여자 혼자 있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야단법석이었다. 그 와중에 내 나이 서른셋이 되도록 불철주야 일만 하고 있으니 주변에선 결혼을 안 한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라고 누누이 얘기해도 씨알도 안 먹히는 얘긴 꺼내지도 말라며 집에 오는 친척마다 나만 보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결혼을 묻곤 했다.
아니, 결혼이란 게 혼자 하는 것도 아닌데 나도 어지간하면 이런 소리 안 듣고 보란 듯 청첩장을 내밀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어쩌랴, 일은 그럭저럭 할 만 한데 연애엔 재능이 없는 것을.
하지만 친척들의 성화가 약이 됐는지 그런 나에게도 볕 뜰 날이 찾아왔다.
그것도 사내 연애에 성공하며 서른셋의 가을이 영글 무렵,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된 것이다.
또 어른들의 걱정과는 달리 다행히도 결혼 다음 해 첫애를 낳았고 둘째까지 무탈하게 순산했다.
워킹맘으로 연년생의 두 아들을 키운다는 것, 힘든 일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참 꿈같은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남편과 나는 학원과 집, 그리고 아이들을 맡긴 어린이집을 오가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남편과 나는 이 두 가지만큼은 꼭 지키자고 약속했다. 하나는 아침은 절대 거르지 말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학원 수업이 없을 땐 어디든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자는 것이었다.
아침을 먹는 일은 두 사람이 함께하면 해볼 만한 일이었고 여행은 시간과 비용이 서로 잘 맞아야만 가능한 일이었으나 우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인근이든 먼 곳이든 일단 야외에 나가 콧바람 쐬는 걸 좋아했고 풀이며 나무며 벌레며 그들과 더불어 지내는 것도 좋아했다.
그래서일까. 우리 애들은 밥도 참 잘 먹었다. 어린이집에는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아 고민이라는 엄마들 얘기도 많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좀 남달랐던 것 같다. 나는 그게 여행의 힘이기도 하거니와 바로 집에서 함께한 아침 식사의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사람은 밥심이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고 풍족하진 않았지만 보리밥에 된장찌개라도 여간해선 끼니를 거르는 일은 없었다. 사실 다른 먹거리가 귀했던 그 당시엔 김치와 국만 있어도 밥 한 그릇은 뚝딱 해치울 수 있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나는 아이들에게 아침을 굶기지 않기 위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고, 돌이켜 보건대 아이들이 고3을 마칠 때까지 한 번도 아침을 거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온라인 게임을 다니고 있는 워킹맘으로서 그것 하나만은 남다른 자부심을 느낀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 자부심 이전에 내가 해주는 음식을 정말 맛있게 먹어준 남편과 아이들이 있었기에 그 또한 가능했더라는 것이다. 내가 해준 음식에 대한 가족의 배려는 내가 매일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짓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었다.
큰애나 작은애는 어릴 때부터 김치나 깍두기 같은 매운 것, 또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같은 음식을 거부감 없이 잘 먹었는데 서너 살부터 김치나 깍두기를 맵지 않게 담가 먹였고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역시 애들 입맛에 맞춰 끓였기 때문이다. 남편이나 나도 그것에 익숙했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햄버거나 피자 같은 것보다는 한식을 더 잘 먹었다. 물론 1년에 두어 번 생일이나 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엔 피자나 파스타 같은 것을 먹기도 했지만, 신통하게도 아이들이 그것을 먹자고 사달라며 보채거나 하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어느 날인가 친정엄마한테 받아온 집된장으로 된장찌개를 끓여 밥상을 차렸던 때가 있었다.
다른 반찬이 좀 있었음에도 큰애는 그 된장찌개 하나로만 밥 한 그릇을 후딱 해치우는 것이다.
맛있게 먹는 그 모습이 너무 흐뭇해 나는 큰애 등을 토닥이며 한껏 칭찬해 주었다. 아마 밥상을 차리는 주부들은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뭐 이 정도면 다음 날 아침에 된장찌개를 끓이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했고 나는 그대로 행동에 옮겼다. 물론 다른 반찬들은 좀 바뀌었지만, 된장찌개는 새로 끓이기만 했을 뿐 어제처럼 뚝배기째 식탁에 올려졌다. 예상대로 남편과 아이들은 별 얘기 없이 맛있게 아침 식사를 끝냈다.
그러던 다음 날, 변명하자면 학원 보충수업이 너무 늦게 끝나는 바람에 마트에 들르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집에 있는 재료로 다시 된장찌개를 끓일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본의 아니게 셋째 날까지 아침부터 된장찌개를 끓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때, 큰애가 제 방에서 총알같이 튀어나오며 코로 냄새를 맡는가 싶더니 한 마디 던졌다.
“엄마, 도대체 우리 집에 된장이 얼마나 많은 거예요?”
큰애의 그 한마디에 나는 그만 빵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큰애는 정말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혹은 얼마나 더 된장찌개를 먹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으로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멈추며 큰애를 그러안았다.
“왜, 오늘은 된장찌개 먹을 기분이 아닌 거야?”
이렇게 묻자 큰애는 내 표정을 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런 아들이라니! 나는 사실 큰애가 ‘또 된장찌개?’냐고 반문한다든지 ‘엄마, 이제 된장찌개는 더 못 먹겠어.’ 하고 말했다 한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 말 대신 우리 집 된장이 얼마나 더 있는지 물으며 내 마음을 헤아렸다는 것에 마음이 짠했다.
어린 마음에도 된장찌개를 만들어준 엄마를 생각하며 적어도 된장이 다 끝날 때까지 먹어줄 용의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 마음이 얼마나 대견하던지 한참이나 큰애를 그렇게 안고 있었던 것 같다. 된장찌개에 담긴 그 여섯 살 감성은 지금의 20대 청년이 되기까지 고스란히 함께 성장해 여전히 엄마표 된장찌개라면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게 먹는 걸 보면 행복이란 게 뭐 별 건가 싶다.
이때야말로 나의 행복지수가 가득 차오르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