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옥(珠玉) 같은 국샘에 대하여

byMari

때는 바야흐로 학원에서 국어 강의를 시작한 지 5,6년 차로 어항 밖에 던져진 금붕어처럼 팔딱팔딱 뛰어오르며 한창 제 잘난 맛에 살아가던 어느 국어 시간이었다.


유난히 감수성이 풍부한 나는 (사실 이건 자랑이 아니다, 때론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수업에 임해야 할 강사로서의 자질문제와 직결되기에...) 조금만 내 감정을 흔들 시(詩)만 나오면 종종 이성을 잃었다. 내가 이성을 잃는다 함은 너무나 그 시에 몰입한 나머지 호흡은 거칠어지고 말은 무지한 속도로 빨라지면서 종국에는 입가에 하얀 거품을 물며 그 누구도 도저히 브레이크를 걸 수 없을 지경에 이름을 말함이다.


아, 내가 욕쟁이 국샘으로 전락했던 그날도 여지없이 나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간 시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정지상의 ‘송인(送人)’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문학 공부를 열나게 했던 사람이라면 이 짧고도 강렬한 한시(漢詩)의 매력을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을 터이나, 행여나 하는 노파심으로 그 전문을 여기 소개한다.


비 갠 긴 언덕에는 풀빛이 푸른데

그대를 남포에서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은 그 언제 다할 것인가,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


“얘들아, 혹시 니들 중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본 사람 있니, 하긴 니들이 사랑을 알겠냐, 아니쥐, 고1이면 사랑을 알고도 남을 나이쥐, 춘향이랑 몽룡이가 몇 살 때 수작을 걸었냐, 갸들이 이팔청춘의 나이였잖아, 딱 니들 나이다...봐라, 봐~ 저기 김똘추, 새우눈 뜨구서 헤어진 제 여친 생각하느라 내가 안보이쥐?

이 시가 구구절절 가슴팍을 후벼 파내쥐? 설사 그렇더라두 지금은 잠깐 잊자,

음, 사랑이란 게 원래 글케 가고 또 오구 하는 거야, 그래야 살쥐, 안 그러면 니들 상사 병나 죽는다,

암튼 각설하고 이 시를 좀 봐봐. 기가 막히지 않냐, 아흐~, 비 그치고 난 후 강둑의 긴 언덕에 서럽도록 푸른 풀빛이 짙어 오는데 나는 지금 머 하고 있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있다는 거, 이거이 문젠거라...

근데 그다음 구절 봐봐, 제 눈물이, 사람들 눈물이 얼마나 된다구 대동강 물이 마를 날 없다구 생 구라를 치냐, 근데도 진짜루 그럴 것 같다 이 말이쥐, 왜? 죽도록 슬프니까...

‘대동강 물은 그 언제 다할 것인가,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

아흐~ 이 얼마나 줙(珠玉) 같은 표현이냐~ 그렇취, 바로 이런 걸 줙(珠玉) 같다고 하는 거다,

서럽도록 푸른 풀빛!! 그걸 제 눈물에 비추어 푸른 물결에 보태니

대동강 물은 시리도록 푸르게 나를 더 울리는 거쥐~,”


나의 이 쉴 틈 없는 (아마 당시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을 거다) 언사는 불과 수십 초 만에 터져 나왔고, 아이들의 눈동자는 초롱초롱 빛이 났었다. 심지어는 그 줙(珠玉) 같은 말을 내뱉을 때마다 한바탕 웃어 주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단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당나라 왕유의 시를 들먹이며 가히 이별 시의 압권이라 칭송이 자자했다 하니 이 줙(珠玉) 같은 시를 남기신 정지상 같은 문장가를 지면으로나마 만날 수 있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라 하면서 마침내 그 시간을 끝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이미 눈치를 챈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학원에 출근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희끗한 머리를 포마드유로 넘긴 원장님이 나를 호출했다.


“이 선생, 혹시 어제 국어 시간에 욕했어요? 머,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했다던데”


‘헉, 이 무슨 해괴한 말씀?’


“그, 그럴 리가요...(난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 시간도 벌 겸... 그러나 내가 좀 흥분은 했으되 결코 욕을 내뱉은 적은 추호도 없었다) 아, 아니요.. 원장님, 전 욕한 적 없는데요.”


“아니, 그럼 학부모님이 거짓말로 항의 전화를 했단 말입니까?”


“누가요, 왜요? 진짜 저 욕한 적 없는데...”


정말 억울했다. 명색이 국어 강사고 뭐 대단한 스타 강사는 아니라도 이 학원에서 내가 차지하고 있는 지분이 얼만데 굳이 욕까지 해가면서 가르칠 일이 뭐란 말인가.


아, 원장님의 자초지종을 들은 나는 아연실색했다. 내가 너무 우리 아이들을 과대 평가했단 말인가!

그 ‘줙(珠玉) 같은’이 문제였던 것이다.


“아니, 어떻게 국어 선생이 그런 욕을 할 수가 있대요? 그것도 여선생이... 한 번도 아니고 국어시간 내내 그랬다는데, 이래가지고서야 무슨 공부를 맡기겠어요? 암튼 조치를 취해 주세요!”

하며, 딸깍 전화를 끊었다는 것이다.


나의 거침없는 설명이 몹시도 빨라 그 대목에선 최절정에 올랐거나(내 생각은 거의 이것 때문이었다고 자평한다) 아니면 그 말을 전한 학생이 고의로 날 물 먹이려 했거나 그것도 아니면 진짜 우리 아이들이 그 주옥(珠玉)의 뜻을 몰랐거나.


나는 항의해 왔다는 그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정중하고도 친절하게 일의 전말을 알려 드렸다.

얼마간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좀 뒤끝이 흐린 말투의 '알겠습니다.'라는 학부모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충성(?)의 인사와 함께 수화기를 내렸다.


그리고 국어 시간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주옥(珠玉)의 뜻부터 말해 주었다. 이건 그 말을 전한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단어의 뜻을 전제하지 않은 나의 불찰이었다.


“야들아, 이건 구슬 주(珠), 이건 구슬 옥(玉)!! 구슬처럼 영롱한 빛을 발하는 그런 문구를 <줙(珠玉) 같은> 표현이라고 하는 거다... 알아 들었냐?”


아이들이 또 웃었다. 이번엔 호탕하고 경쾌하게.


그럼, 그렇지! 너네가 무슨 날 물 먹인다고... 어이구, 이것들아! 공부 좀 해라! 공부 좀...


사실 이 발음은 좀 더 빠르고 센 표현으로 했을 때 제 맛이 나는 것이다. 줙!! 같은.

그날부터 나는 내 참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줙(珠玉) 같은 국샘으로 불리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하나, 어떠랴! 그 후로도 나는 너무나 멋진 시를 얘기할 땐


“얘들아, 이 시 좀 봐봐! 이거 너무 줙(珠玉) 같지 않니~!!” 하며 흥분하곤 했다.

물론 오해의 여지를 벗어나기 위해, 처음 온 학생들을 위한 친절한 설명과 함께.


돌이켜 보면 수업 때마다 나를 바라보던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이 있었기에,

또 그 풋풋하고 싱그러운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나의 강사 시절도 그렇게 덩달아 반짝반짝 빛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아니, 온전히 아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전 14화나이를 먹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