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으면 딩동이도 걷는다

by올리브맘

내가 걸으면 딩동이도 걷는다. 내가 달리면 딩동이도 달린다.


우리 집 강아지 딩동이는 열 살 된 갈색 푸들이다. 산바카라길에서 어떤 냄새에 마음을 빼앗기면 저만큼 앞서가기도 하지만 얼마 못 가 꼭 뒤를 돌아본다. 내가 따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다시 내 곁으로 달려와 무릎 언저리에서 걸음을 맞춘다. 마음만 먹으면 나보다 훨씬 빨리 달릴 수 있는 아이지만 혼자 멀리 가지는 않는다.


내가 속도를 늦추면 딩동이도 늦추고, 내가 멈추면 딩동이도 멈춘다. 우리는 십년은ㆍ 그렇게 걸어왔다.


딩동이와 함께 지낸 십년은 대단한 사건보다 비슷한 하루의 반복으로 채워져 왔다. 밥을 챙기고 함께 산바카라하고, 간식을 준다. 내가 소파에 앉으면 곁에 자리를 잡는다. 하루가 너무 비슷해서 그 아이에게도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자주 잊는다. 달력은 열 번이나 바뀌었는데 아이는 늘 어제와 같은 얼굴로 내 곁에 있다. 아직도 우리 집 막둥이다.


열 살이 된 딩동이의 열한 번째 여름, 처음으로 아이가 전과 다르게 보였다.


집 안에서 나와 놀던 딩동이가 신이 나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평소에 자주 하던 일이었고 특별히 더 많이 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유난히 숨을 헐떡였다. 예전 같으면 금세 가라앉았을 숨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혀를 내민 채 한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 후 자주 그런 모습을 보니 걱정이 됐다.


올여름이 유난히 더워서 그런가? 사람도 견디기 힘든 더위였으니 우선 날씨 탓을 하는 게 쉬웠다. 그러면서도 전에는 이 정도로 뛰고 힘들어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생각해 보니 달라진 것은 숨소리만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갈색이던 딩동이의 턱 밑에 흰 털이 하나둘 섞이더니 이제는 제법 하얘졌다. 짙었던 몸의 털빛도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



강아지가 사람보다 빨리 늙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저 말로 알고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그 말이 딩동이의 턱 밑에서 흰 털로 바뀌자 전혀 다른 말이 되었다. 사람에게만 흰머리가 나는 줄 알았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속상했다.


내 나이도 예순이 넘었으니 늙어 간다는 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 딩동이의 헐떡임이 길어지고 털빛이 눈에 띄게 옅어지는 것을 보면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열 해를 함께 살았지만 그 아이가 늙어 간다는 사실만은 아직 모른 척하고 싶은가 보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한 손에 올려놓을 만큼 작았다. 집에 온 뒤로는 온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소파에 앉으면 옆으로 와 몸을 붙였고, 부엌에서 일하면 조금 떨어진 곳에 엎드려 나를 지켜봤다. 방으로 가면 방으로 따라왔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문 앞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내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움직일 때마다 그 눈과 고개도 나를 따라 돌아갔다.


처음에는 왜 저러나 싶었다. 불안한가, 혹시 분리불안인가 생각했다. 어디를 가든 시야에서 나를 놓지 않으려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했다. 지금은 그 고개가 나를 따라 도는 모습이 마냥 좋다.



딩동이는 내 말보다 목소리를 먼저 알아듣는다. 다정하게 “딩동아” 하고 부르면 눈매가 편안하게 풀린 채 내게 달려오지만, 목소리를 낮추면 그 안에 꾸중이 들어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챈다. 그럴 때면 고개를 숙이고 눈만 들어 내 얼굴을 살핀다. 같은 이름을 불러도 목소리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보다 어떻게 말하는지를 먼저 아는 아이다.


나는 그런 딩동이에게 늘 다정하지는 못했다. 해야 할 일에 쫓겨 곁에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날도 많았고, 마음이 어지러운 날에는 종일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날에도 아이는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내 기분이 좋든 나쁘든 같은 눈으로 나를 보고, 뒤늦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뽀뽀하면 혀로 내 얼굴을 핥아 주었다.


얼마 전 딸아이가 무심코 말했다. 내가 집을 비우면 딩동이는 우리가 함께 자는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는다고. 짖거나 보채지도 않고 가만히 기다리다가 잠이 들고,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고개를 들고 일어난다고 했다.

딸아이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나는 그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내가 보지 못하는 동안에도 아이는 늘 하던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현관문을 닫고 나간 뒤에도 침대 위에 엎드려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을 모습을 떠올리며 그날은 한참 동안 품에 안아 주었다.


나는 밥을 챙기고 산바카라을 시키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갔다. 눈에 보이는 일은 모두 내가 했으니 돌보는 쪽도 당연히 나라고 생각했다. 딩동이가 한 일은 나를 바라보고 기다린 것뿐이었다.


내가 딩동이에게서 받는 것은 늘 비슷하다.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든 오래 바라봐 주는 눈, 소파에 앉으면 옆구리로 전해지는 작은 몸의 체온, 뽀뽀하면 기다렸다는 듯 내 얼굴을 핥아 주는 혀. 나는 그것들을 강아지라면 으레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마음은 늘 그런 식으로만 드러났다. 곁에 머물고, 오래 바라보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식으로.

사람에게 그런 눈빛을 받았다면 귀하게 여겼을 텐데, 날마다 같은 눈으로 바라보니 나는 흔한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열 해가 지나도 그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요즘에는 딩동이가 움직일 때마다 내 고개가 따라 돌아간다. 밥을 남기지는 않았는지, 걸음이 어제보다 느려지지는 않았는지, 잠든 뒤 숨소리가 고른지 자꾸 살핀다. 예전에는 내가 움직일 때마다 그 눈이 나를 좇았는데 이제는 내가 아이의 하루를 눈으로 좇는다.


산바카라할 때도 되도록 딩동이의 걸음에 맞추려고 한다. 먼저 달리면 나도 몇 걸음 함께 뛰고, 천천히 걸으면 나도 속도를 늦춘다. 냄새를 맡느라 멈추면 서두르지 않고 기다린다.

이제 산바카라길에서 뒤를 돌아보는 쪽이 내가 되고 싶다.


길을 가다 보면 유모차를 탄 강아지들을 가끔 만난다. 예전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유모차가 요즘은 자꾸 눈에 밟힌다. 아직 제 발로 걷고 가끔 나보다 먼저 달려가는 딩동이에게도 언젠가는 저런 것이 필요한 날이 오겠지.


그날이 조금이라도 늦게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딩동이의 허리와 다리를 주무른다. 허리 위를 천천히 쓸어내리고, 뒷다리를 손바닥으로 감싸 가볍게 누른다. 아이는 눈을 감고 가만히 내 손에 몸을 맡긴다.


나는 발바닥까지 한 번 더 주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