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 쉰여섯 살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공인중개사 인터넷 강의를 권하는 전화였다. 시험에 합격하면 수강료를 전액 돌려준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영업 전화에 넘어간 셈이다. 그런데 그 전화가 아니었다면 나는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공인중개사가 꿈이었던 것은 아니다. 부동산 일을 꼭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때 나는 그저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 오랫동안 엄마와 아내로 살았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을 돌보는 일은 한 사람의 시간과 마음을 몽땅 써야 하는 일이었다. 그 시간이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기쁘고 보람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아쉬움이 남아 있었나 보다. 아이들이 다 자라 하나둘 독립하고 나니 문득 허전했다.
아이가 잘 자라도, 남편이 자기 일을 잘해 내도, 그것을 나만의 성취라고 할 수는 없었다. 집안이 별 탈 없이 돌아가면 원래 그런 줄 알았다. 그 안에 내가 쓴 시간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늘 가족에게 필요한 사람이었다. 이제는 나를 위해 내 이름으로 해낸 것이 하나쯤 필요했다.
나는 지금도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을까.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그것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쉰여섯이라는 나이가 자꾸 걸렸다. 무언가를 새로 해보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 나이에?’ 하고 물을 것 같았다. 사실 그 질문은 남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먼저 하고 있었다.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보다, 애초에 해볼 자격이 있기는 한가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러나 시험은 나이를 묻지 않았다. 합격과 불합격 앞에서는 엄마도 아내도 아닌 나 하나만 남았다. 그것이 오히려 마음을 정하게 했다.
오랜만에 다시 바카라상 앞에 앉았다.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되고 편한 시간에 들을 수 있으니 좋을 줄 알았다. 오늘 못 들으면 내일 들으면 되고, 오전에 못 들으면 저녁에 들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나중에’가 자꾸 쌓였다. 밀린 강의를 따라잡기 시작하면서 하루가 온통 공부로 채워졌다. 아침 열 시에 바카라상에 앉으면 다음 날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일어섰다. 식사 시간과 쉬는 시간을 빼고 하루 열 시간 넘게 공부했다.
식구들이 다 잠든 집은 조용했다. 그 조용함이 좋았다. 사각사각, 내 연필 소리만 났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다시 학생이 된 것 같았다. 낮에는 누군가 부르면 언제든 일어나야 했지만, 새벽 두 시에는 나를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 시간의 바카라상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강의를 듣고 노트를 정리했다. 문제를 풀고 채점을 했다. 맞은 문제 옆에 동그라미를 그릴 때가 제일 좋았다. 틀린 문제는 오답노트에 옮겨 적고, 교재로 돌아가 다시 익힌 뒤 같은 문제를 또 풀었다. 그래도 틀리면 서너 번을 되풀이했다. 유독 몇 번씩 걸려 넘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 하나를 붙들고 씨름하다 마침내 동그라미를 그리면, 누가 보지 않아도 좋았다. 어제보다 조금 나아졌다는 것을 나 자신이 알고 있었다.
학창 시절의 공부는 성적표와 칭찬을 위한 것이었다. 쉰여섯의 공부는 달랐다. 아무도 숙제를 검사하거나 틀렸다고 나무라지 않았다. 틀린 문제는 아직 모르는 곳을 알려주는 표시일 뿐이었다. 다시 풀어 알게 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밥은 해놓으면 한 끼에 사라졌다. 빨래는 개어 놓으면 다시 세탁기로 들어왔고, 청소한 자리에는 다음 날 또 먼지가 앉았다. 집안일은 아무리 해도 끝났다는 표시가 나지 않았다.
공부는 달랐다. 노트는 하루하루 두꺼워졌고, 오답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어제는 몰랐던 문제를 오늘은 풀 수 있었다. 내가 들인 시간이 눈앞에 그대로 남았다.
그것이 좋았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가 뜻밖에 재미있었다. 어느 날은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학창 시절에 이렇게 공부했으면 1등도 했겠다 싶어 웃기도 했다. 오래 공부하지 않고 살았지만 공부하는 법은 잊지 않고 있었다. 오랫동안 꺼내 쓰지 않았을 뿐, 내 안에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더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시험 시간에 맞춰 생활할 생각까지는 못 했다. 늘 아침 열 시부터 새벽까지 공부하고, 아침 아홉 시가 되어야 일어나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시험은 아침 여덟 시 반쯤 시작했다. 평소라면 아직 잠들어 있을 시간이었다.
1교시에는 정신이 덜 든 채 문제를 풀었다. 시험은 하루 종일 이어졌다.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몸도 머리도 지쳐 있었다.
그래도 쉬기 전에 가채점부터 했다.
아이들이 수능을 보고 돌아와 가채점할 때 옆에서 함께 떨었던 적이 있다. 내 시험지를 채점하려니 그때만큼이나 떨렸다.
한 문제씩 답을 맞춰 보는 손이 자꾸 멈칫했다.
마킹을 잘못한 다섯 문제를 확인했을 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걸로 떨어졌구나 싶었고, 남은 문제의 점수를 더해 가는 동안에도 합격점을 넘길 것 같지 않아 마음을 반쯤 접었다.
그런데 마지막 문제까지 다 더하고 나니, 간신히 합격점이었다. 몇 번을 다시 세어 보고서야 믿었다.
넉넉한 점수는 아니었다. 그래도 합격이었다. 너무 기뻐서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쉰여섯에 나는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런데 수강료는 돌려받지 못했다. 환급을 신청하려고 알아보니 그 업체가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합격하면 전액을 돌려준다던 그 약속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는데, 정작 그 약속을 한 곳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도 아깝지 않았다. 내가 받으려던 것이 처음부터 그 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합격했다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를 바라보는 눈이 조금 달라졌다.
그 뒤 나는 공인중개사로 일했다. 그리고 여섯 달 만에 그만두었다.
자격증은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꺼낼 일이 거의 없다. 그래도 나는 그것을 버리지 않았다.
가끔 서랍을 열면 그것이 거기 있다. 쓰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새벽 두 시의 바카라상에 앉아 있던 쉰여섯의 내가 거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