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시켜서 했고, 지금은 내가 택했다

by올리브맘

젊었을 적 나는 늘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결혼했지만 내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맏아들과 결혼해 시부모님, 시동생들과 한집에 살았다. 내가 가구를 놓고 꾸밀 수 있는 공간은 이층 맨 끝, 방 한 칸뿐이었다.


남편은 나를 사랑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집에서 혼자였다. 방에 있을 때도 늘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인기척이 나면 내려가 누구인지 확인했고, 어머니가 부르면 내려갔다. 아버님이 들어오시면 쫓아 내려가 인사를 했다.


방문은 닫혀 있어도 내 귀는 늘 문밖에 있었다. 아래층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슨 일인지 알기도 전에 몸부터 긴장했다. 방 안에 혼자 있어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언제든 불려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처럼 살았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났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시아버지의 밥상을 차렸다. 그 상을 물리기도 전에 남편의 상을 다시 차렸다. 식구들이 들어올 때마다 저녁밥을 새로 차렸다. 시아버지와 시동생 둘, 남편이 저마다 다른 시간에 들어왔다. 하루에 네 번을 차리는 날도 있었다.


나는 우리 집의 맏이였고, 엄마는 이미 돌아가셔서 물어볼 곳도 없었다. 나는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 줄 알았다.


그 생활이 싫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밥상을 잘 차리고 집안일을 빈틈없이 해내면 좋은 며느리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들으면 내가 그 집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억울하면서도 칭찬받고 싶었다. 힘들면서도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다. 좋은 며느리라는 말에 기대어 그 집에서 내 자리를 만들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남편에게 서운했다. 나보다 부모와 형제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을 때마다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남편을 사랑했지만 서운했다. 그 집을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좋은 며느리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 마음들이 서로 어긋난다는 것조차 그때는 몰랐다. 착한 며느리가 되고 싶었던 것인지, 사랑받고 싶었던 것인지, 그 집에서 내 자리를 인정받고 싶었던 것인지 지금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다. 나는 불행했지만, 그 삶을 잘 살아내고 싶었다.


오랫동안 나는 그 시절이 고단해서 불행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와 돌아보니 고단함만이 불행의 이유는 아니었다. 그 시절에도 기쁜 순간은 있었다. 좋은 며느리라는 칭찬을 받을 때였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 남이 원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잠시 주어지는 상과 같았다.


나는 행복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내 행복의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살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몰랐다. 하루가 온통 남을 위한 일로 채워지는 동안, 나를 위한 시간은 한 뼘도 없었다.


그 고생을 모두 걷어낸다고 해도 나는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실을 아주 뒤늦게 알았다.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을 읽고서였다. 행복은 큰 기쁨 하나보다 작은 기쁨을 자주 느끼는 데 있다는 대목에서 오래 멈춰 있었다. 내가 지나온 날들에는 그 작은 기쁨이 너무 드물었다. 그리고 알았다. 행복하려면 먼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을.


지금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안다.

나는 꽃을 좋아한다. 길을 걷다 예쁜 꽃을 만나면 사 들고 온다. 화병에 꽂고 화분에 심는다. 우리 집 화분은 어느새 거의 다 꽃 화분이 되었다.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드는 일도 좋아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


20240827_163507.jpg


불행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삶에는 여전히 무거운 날이 있다. 다만 이제는 그 안에서도 행복한 순간을 고를 줄 안다. 내가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지도 이제는 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몹시 더운 날이었다. 땀에 젖은 택배 기사님이 무거운 상자를 안고 계단을 올라왔다. 나는 시원한 물 한 잔을 내밀었다. 기사님은 감사하다며 활짝 웃었다. 그 웃음을 보는데 마음 한구석이 환해졌다.


새벽마다 밥상을 차리던 일과 그 물 한 잔은 다르지 않다. 둘 다 남을 위해 무언가를 건네는 일이다. 그런데 하나는 불행이었고, 하나는 행복이었다. 그때는 시켜서 했고, 지금은 내가 택했다. 나는 남을 위해 살아서 불행한 줄 알았다. 하지만 누군가를 돕는 일은 여전히 나를 기쁘게 한다.


나를 불행하게 했던 것은 남을 위한 삶이 아니었다. 내 뜻대로 선택할 수 없는 삶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내 뜻으로 선택하는 순간마다 있었다.

이전 02화엄마에게는 제로웨이스트라는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