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여섯 달을 일했다.
쉰여섯에 시작한 공부는 내가 아직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렵게 자격증을 손에 쥔 뒤에는 용기를 내어 일을 시작했다. 예상은 했지만, 자격증을 따는 일과 그 자격증으로 살아가는 일 사이에는 생각보다 넓은 틈이 있었다.
공부는 재미있었다. 외워도 돌아서면 잊어버렸지만 시험에는 범위가 있었고 문제에는 답이 있었다. 어제 모르던 것을 오늘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중개 실무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경험을 쌓으면 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일을 잘할 수 있느냐가 아니었다.
사실 가장 힘든 것은 출퇴근이었다.
아침마다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에 몸을 밀어 넣고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일이 생각보다 고단했다. 남들은 슬슬 은퇴를 생각할 나이에 나는 다시 신입이 되었다. 마음은 새 출발을 외쳤지만 몸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이어도 매일의 출퇴근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은 그 시간을 견뎌낼 만큼 마음이 가지 않았다. 할 수는 있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청춘이 아니었기에 앞으로의 시간이 더욱 귀했다. 이미 많은 날을 해야 하는 일로 채웠으니, 내 두 번째 봄만큼은 내가 원하는 것들로 채워보고 싶었다. 그렇게 여섯 달 만에 일을 그만두었다.
출근할 곳이 사라지자 아무것도 없는 자리로 돌아온 듯 막막했다. 자격증은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을 증명할 뿐,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일까.
오랫동안 그런 질문 없이 살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는 해야 할 일이 늘 먼저였다.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과 가족의 식사를 챙기면 하루가 다 갔지만, 그 시간도 보람 있고 행복했다. 다만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살피는 동안 내가 원하는 것은 자꾸 뒤로 밀렸고, 나중에는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잘 모르게 되었다.
가족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 데 익숙한 사람은 막상 자기 차례가 오면 대답이 늦나 보다. 아이들이 다 자라고 나니 미뤄두었던 질문이 내 몫으로 남았다. 시험에는 정답이 있지만 삶에는 정답지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내는 일은 시험공부보다 막막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오랫동안 해온 일 가운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을까.
가장 익숙한 것은 요리와 살림이었다.
결혼한 뒤 오랫동안 가족의 밥을 만들었다. 남은 재료로 끼니를 차리고, 아이들이 먹지 않는 것은 다른 방법을 궁리해 어떻게든 먹였고, 가족의 건강과 입맛에 따라 재료와 조리법도 바꿨다. 날마다 반복한 일이라 특별한 능력으로 여기지 않았다. 주부가 하는 일은 오래될수록 능숙해지지만, 이상하게도 오래 할수록 별것 아닌 일로 취급되곤 한다. 냉장고 문을 열면 오랜 경험이 들어 있었지만, 나부터 이력서의 경력란에는 적을 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다른 사람들이 만든 유튜브 영상을 자주 보았다. 자신이 아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모습을 보니 나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작하는 방법을 몰라 아들에게 물었다. 다행히 아이들이 집에 머물던 때라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하나를 알아들으면 또 모르는 것이 생겨 다시 물었다. 세상이 멈춘 듯한 시절이었지만 내게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틈이 생겼다.
그렇게 유튜브를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세워놓고 요리를 찍었다. 화면에 잘 나오게 하려고 싱크대를 깨끗이 닦고, 예쁜 그릇도 찾아 꺼냈다. 그런데 카메라가 켜지자 익숙한 부엌이 갑자기 남의 집처럼 어색해졌다. 평소 하던 동작도 여러 번 다시 찍어야 했다. 내가 답답해 보였는지 딸이 대신 찍어주기도 했다. 지금은 나도 제법 능숙해졌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촬영보다 편집은 더 힘들었다. Ctrl+B로 자르고 지우고, Ctrl+Z로 되돌리기를 셀 수도 없이 반복했다. 서툰 영상을 편집으로 만회해 보겠다고 계속 붙들고 있으니 손목과 어깨가 아팠다. 이상한 일이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지쳤는데, 편집하느라 몸이 아파도 다음 날이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몸이 힘들었지만 마음은 달랐다. 서툴러도 더 잘해보고 싶었다.
그때 처음 만든 영상은 지금 봐도 웃음이 난다. 그래도 내 손으로 만든 결과물이 하나씩 생겼고, 내가 살아오며 알게 된 것을 내 방식으로 세상에 내놓는 일이 좋았다.
영상을 하나둘 올리자 이것으로 돈도 벌고 싶어졌다. 내 힘으로 번 돈도 필요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일이 심심풀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지하철 출근은 여섯 달 만에 끝났지만, 부엌에 세워둔 스마트폰은 다음 날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다시 카메라를 켰다. 아직 답은 몰랐지만, 전과 달리 다음을 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