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적어 보았다

by올리브맘

나는 계속 카메라를 켰다.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요리하고, 평소에는 눈대중으로 넣던 양념을 계량했다. 요리가 끝나면 영상을 컴퓨터로 옮겨 필요 없는 장면을 잘라내고 자막을 넣었다. 그렇게 영상 하나를 완성해 올리는 생활이 이어졌다.

재미있었다.


어제까지 없던 무언가를 내 손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일이 좋았다. 누군가 내가 만든 음식을 따라 했다는 댓글을 남기면 더 좋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졌다.

다음에는 무슨 요리를 찍을까. 사람들이 많이 보는 음식은 무엇일까. 어떤 제목을 붙여야 영상을 클릭할까. 조회수가 잘 나오면 기뻤고, 기대했던 영상이 조용히 묻히면 풀이 죽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줄지를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요리가 싫어진 것은 아니었다. 영상을 만드는 것도 여전히 재미있었다. 다만 이것이 정말 내가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일인지 자신이 없었다. 공인중개사 일을 그만두었을 때와 비슷했다. 공부할 때는 재미있었다. 시험에 합격했을 때는 내가 아직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달랐다. 이번에는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뭘 하고 싶은 걸까.

스무서너 살 무렵 대학을 졸업할 때도 막막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정해야 했다. 그 뒤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을 돌보며 사는 동안에는 그런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을 틈이 없었다. 해야 할 일이 먼저였다. 그렇게 삼십여 년이 넘게 흘렀다.

그런데 예순이 되어 다시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답을 정해주지 않았다. 취직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무엇이든 할 수 있어서 더 막막했다.

어느 날 노트를 한 권 펼쳤다.

이번에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적어보기로 했다. 잘할 수 있는지, 돈이 되는지, 현실적인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남들이 보기 좋은 것도 빼기로 했다. 그냥 하고 싶은 것. 먼저 나를 위해 해보고 싶은 일을 적었다.



빈에서 클래식 공연을 보고 싶다. 제주도에서 동생들과 한동안 지내보고 싶다. 발레 개인 레슨을 받아보고 싶다. 학창 시절 읽었던 바카라들을 다시 읽고 싶다.

쓰다 보니 오래 잊고 있었던 것들이 하나둘 생각났다.

내가 좋아하는 것도 적어보았다.

아침 햇빛. 봄에 막 올라오는 연두색 새싹. 꽃을 보고 만지는 일. 음악을 틀어놓고 바카라을 읽는 시간. 무언가를 배우는 일. 내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

거창한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적어놓고 보니 이상했다. 별것 아닌 것들인데도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조금 들떴다.

이번에는 내가 해온 것을 적었다.

옷 만들기와 퀼트. 음식과 베이킹. 부동산 공부. 아이들을 키운 일.

처음에는 경력이라고 내놓을 만한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씩 써보니 생각보다 많았다.

젊었을 때는 쉬운 옷을 만들었고, 아이들이 어릴 때는 집에서 이것저것 만들어주었다. 음식을 했고 빵을 구웠다. 쉰이 넘어서는 공인중개사 공부를 시작했고 시험에 합격했다. 낯선 유튜브를 배우고 촬영과 편집도 익혔다.

그동안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세상을 위해’라고 적었다.

그 말 앞에서는 한참 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를 자주 생각했다.

아이들을 키우고 가족을 돌보며 살아온 시간이 충분히 의미 있었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앞으로 남은 시간에는 내가 가진 것을 누군가와 나누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큰일이 아니어도 좋았다. 내가 해본 일을 들려주는 것. 내가 먼저 실패해 보고 알게 된 것을 알려주는 것. 나와 비슷한 나이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나도 했으니 한번 해보라고 말해주는 것. 그 정도면 좋겠다고 적었다.

한참을 쓰다 노트를 다시 처음부터 넘겨보았다.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 많은 것들 가운데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또 정답을 찾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 앞으로 유망한 지 찾아보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검색했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지 살펴봤다. 유튜브도 보고 바카라도 읽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보려고 노트를 펼쳐놓고는 또다시 남들이 가는 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했던 것과 오래 해온 것들을 가지고 내 일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동안 나는 자꾸 밖에서 답을 찾았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일이 잘되는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알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노트에 적힌 것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던 것들이었다. 음식을 만들던 나도, 옷을 만들던 나도, 바카라을 좋아하던 나도, 다시 공부를 시작했던 나도 모두 나였다. 그중 어떤 것은 한동안 잊고 있었고, 어떤 것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답은 아직 없었다.

그래도 예전과는 조금 달랐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몰라도, 무엇을 찾고 싶은지는 알 것 같았다.

나는 새로운 꿈을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나를 하나씩 주워 모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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