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올리브나무를 다시 본 날
슬로베니아에서 맞은 첫 아침의 풍경을 기억한다.
안방 창문 밖으로 올리브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낮은 산을 뒤에 두고 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지는 올리브나무밭이었다. 왼쪽으로는 포도밭도 보였다.
처음에는 분명 낯설었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창문 밖에는 올리브나무가 있었다. 이 집에 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본 풍경 가운데 하나가 그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는지 잘 보지 않게 되었다. 안쪽 창문은 환기를 위해 매일 열어두고 살았다. 그 너머에는 촘촘한 구멍이 난 철창문이 한 겹 더 있었다. 그것까지 활짝 여는 날도 있었지만 대개는 환기를 시키거나 햇빛을 들이기 위해서였다. 창을 열고도 정작 그 너머의 풍경을 오래 바라보는 시간은 언젠가부터 생략되어 있었다.
늘 그 자리에 있었으니 없어진 적은 없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무의 색도 조금씩 달라졌을 것이고, 밭 사이로 풀이 자랐다가 사라지는 일도 반복되었을 게다.
풍경이 어느새 배경이 되어서였을까. 올리브 자체가 익숙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올리브는 이국적인 식재료였다. 여기서는 식탁에 올리브를 올리는 일도, 요리에 올리브유를 꺼내는 일도 다반사다. 우리네 식탁의 깍두기나 참기름만큼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연말 무렵 남편의 온라인 게임 동료에게 올리브유를 받은 적도 있다. 그의 부모님이 올리브밭을 가지고 계신데, 직접 수확한 올리브로 짠 기름이라고 했다. 병에 담긴 모양새는 친정이나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얻어오던 갓 짠 참기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한동안은 아껴 먹었던 것 같다.
그런 일을 겪고도 정작 매일 창밖으로 보이는 올리브나무들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눈으로는 가까웠지만 생활에서는 조금 멀리 있는 곳이기도 했다. 집에서 내려다보면 바로 앞인데,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 옆 길로 몇 번 산바카라 삼아 오간 뒤로는 좀처럼 갈 일이 없었다. 어디까지 들어가도 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사유지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굳이 안쪽까지 들어가 볼 마음도 들지 않았다.
눈앞에 훤히 보이면서도 나와는 상관없는 땅 같았다. 어쩐지 경계 너머의 북녘땅을 바라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곳을 다시 자주 드나들게 된 것은 반려견과 산바카라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내려다보기만 했던 올리브나무 사이에도 들어갔다. 한 덩어리의 풍경처럼 보이던 곳에 길이 있었고,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제법 넓은 공간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밭은 생각보다 자주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여름이 오는 동안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비라도 흠뻑 내린 어느 날 보면 무릎 가까이 올라온 풀 때문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다가도, 며칠 뒤에는 예초기가 지나간 자리가 말끔하게 드러났다. 여름이 물러가는 동안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풀이 정리된 올리브나무 사이사이는 반려견들에게 꽤 좋은 놀이터가 되었다. 특히 몸집이 큰 개들이 목줄을 풀고 달리는 모습을 종종 봤다. 부르면 돌아올 만큼 훈련된 개들은 나무 사이를 마음껏 뛰고, 풀과 흙냄새를 맡으며 한참을 돌아다녔다.
우리도 그 사이를 걸었다.
그러던 며칠 전이었다. 산바카라을 하다 발밑에 무언가가 밟혔다. 내려다보니 제법 단단한 올리브였다. 나무 아래를 자세히 보았다. 군데군데 올리브 열매가 떨어져 있었다. 그리 높지 않은 나무의 잎 사이로 올리브 알들이 청포도와 적포도처럼 저마다 다른 익은 정도로 달려 있었다.
이맘때면 이곳에서는 올리브를 수확한다고 한다. 10월과 11월, 나무에 달린 열매를 거두고 기름을 짜는 계절이 온다. 예전에 받았던 올리브유도 아마 이런 시간을 지나 한 병에 담겼을 것이다.
창밖의 풍경과 누군가 건네준 올리브유 한 병이 같은 계절 안에 놓였다.
그날 집에 돌아와 모처럼 안방 창문을 활짝 열었다. 안쪽 창문을 열고, 그 너머의 철창문까지 활짝 열었다. 환기를 시키거나 햇빛을 들이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한동안 창가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았다. 올리브나무 위로 구름이 지나가고, 그 아래로는 차가 달리고 사람이 오갔다.
슬로베니아에서 맞은 첫 아침에는 창문 너머에 있던 올리브나무가, 몇 해가 지난 어느 가을에는 발밑에 있었다.
그렇게 그 풍경을 다시 한번 눈에 담아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