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과 보낸 첫 번째 사계절
반려견이 한 살이 되었다.
지난해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던 무렵, 우리의 하루에 강아지 한 마리의 몫이 생겼다. 이곳에 와 병원 문턱도 밟아보지 않았던 내가 그녀를 데리고 다닐 동물병원을 찾아 등록하고 예방접종을 하러 다녔다. 묻고 싶은 것은 휴대전화 메모장에 미리 적어 번역해 두었다. 무엇을 얼마나 먹여야 하는지 살피고, 평소와 조금 다른 변을 보기라도 하면 사진을 찍어두고 전날 먹은 것부터 되짚었다.
장을 보는 목록에는 전에는 없던 것들이 하나둘 늘었다. 몇 달이면 작아질 물건을 알면서도 사고, 잠깐 쓰고 말 것들에 기꺼이 시간과 돈을 썼다. 한동안은 유튜브를 열 때마다 강아지를 먹이고 돌보는 영상들이 줄줄이 떴다.
집에서의 생활도 달라졌다. 한국에서도 슬리퍼 생활에 익숙했던 내가 어느새 바닥살이를 자처하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것 하나, 묻은 것 하나가 전보다 잘 보였고 청소도 더 자주 하게 되었다.
둘이서만 살 때는 굳이 구분할 필요 없던 몫들도 생겼다. 누가 밥을 챙기고, 누가 목욕을 시키고, 누가 산바카라을 나갈지. 어디를 가려고 해도 함께 갈 수 있는 곳인지부터 살폈다.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 사이에 들어온 뒤, 둘이 쓰던 시간의 모양과 각자의 역할을 가르던 선도 조금씩 달라졌다.
한 생명의 하루가 더해지자, 우리 둘의 하루도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달라져 있었다.
신경 쓸 것은 많아졌지만 그걸 그대로 반려견에게 건네고 싶지는 않았다. 살필 때는 살피되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하고, 걱정되는 일이 있어도 내 불안까지 반려견에게 옮겨놓지는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따지고 살피다 보면 나도 내가 조금 유난스럽다 싶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바라던 것은 대단한 게 아니었다. 별일 없는 하루를 별일 없이 보내는 것. 그걸 위해서라면 조금 더 살피는 수고쯤은 괜찮았다.
그 수고를 알아주기라도 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건강하게 타고난 것인지 반려견은 크게 아픈 곳 없이 한 살을 맞았다.
사람도 개도 좋아하는 기질 덕분인지, 산바카라을 시작한 뒤로 마주치는 것마다 반가워하더니 한 살이 되는 동안 동네에서 제법 사교적인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겨울과 봄, 여름을 지나 다시 가을이 왔다.
다이소 같은 생활용품점 TEDi에 들러 초와 풍선을 샀다. 예전에 마트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기념 삼아 사두었던 고깔도 꺼냈다. 고깔에는 슬로베니아어가 큼지막히 적혀 있었다.
Vse najboljše.
[우세 나이볼쉐]
이곳에서 생일이나 특별한 날 축하 인사로 건네는 말이다. '모든 최고의 것들을!'
풍선을 달고 초를 꽂고, 반려견에게는 그다지 반갑지 않았을 고깔까지 씌웠다. 사진 몇 장을 건지는 동안 고깔은 몇 번이나 벗겨졌다. 그렇게 그녀의 한 살이 사진 몇 장에 저장되었다.
반려견에게 생일이 얼마나 특별한 날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괜히 그녀의 표정을 평소보다 자주 살폈다. 짧게든 길게든 틈이 날 때마다 밖으로 데리고 나갔고, 세어보니 하루 동안 예닐곱 번은 산바카라을 나간 것 같다. 공놀이도 했다.
하루가 다 지나고 나서야 내가 평소보다 유난을 떨었다는 걸 알았다.
정작 반려견은 전날 저녁부터 처음 맛본 케이크가 밥때마다 사료에 섞여 나오는 일이 가장 신났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뿐이었을지도 모르고.
그날도 산바카라길에서 평소 자주 마주치는 이웃들을 만났다. 생일 이야기를 할지 몇 번을 망설였다. 이것도 유난인가 싶어서였다. 그래도 평소 반려견의 이름을 불러주고, 만나면 쓰다듬어 주고, 멀리서도 반가워해 주는 사람들이었다.
"Danes ima rojstni dan. Stara je eno leto."
[다네스 이마 로이스트니 단. 스타라 예 에노 레토]
오늘 그녀의 생일이에요. 한 살이에요.
"Čestitke!"
[체스팉케]
축하해!
사람들은 반려견을 연신 쓰다듬으며 축하를 건넸고, 나도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그렇게 몇 번의 축하를 주고받았다.
며칠 뒤 집 앞에서 이웃 아주머니를 다시 만났다. 아주머니의 반려견은 우리 반려견이 갓 산바카라을 시작하던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다 보니, 사람으로 치면 동네 소꿉친구쯤 되려나.
아주머니는 평소처럼 반려견을 반기더니 장난감 공 하나를 슥 꺼내 던져 주었다. 며칠 전 지나가듯 알린 생일을 기억하고 준비한 선물이었다. 반려견은 이미 공을 따라 저만큼 뛰어가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은 조금 더 많았는데, 막상 입에서 나온 것은 한마디뿐이었다. 최선이었다.
"Hvala lepa!"
[흐발라 레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또 했다. 아주머니는 첫 생일맞이를 다시 한번 축하한다고 했다.
우리가 그녀의 하루를 살피는 동안, 그녀 역시 제 몫으로 바깥에 아는 얼굴들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