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과 3년 사이
이곳에 온 지 3개월쯤 되었을 때, 한 번은 울었던 적이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곳이 싫었던 것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처음 보는 것들 사이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은 대체로 흥미로웠다.
그럼에도 막연히 두려워졌다.
앞으로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나는 무엇으로 쓰일 수 있을까. 여기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한국에 있을 때는 그런 질문을 매일 하지 않았다. 오래 해온 것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었고, 슬롯 안에서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를 알려주는 표지가 있었다. 이곳에 오자 그것들이 한꺼번에 멀어졌다.
문밖을 나서면 말부터 달랐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갑자기 좁아졌다. 내가 알고 있던 것과 할 수 있던 것들이 사라진 것은 아닌데, 그것들이 이곳의 생활에 닿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발밑이 사라진 것 같았다.
수면 아래에서 발끝을 아무리 내려도 바닥에 닿지 않는 기분. 발이 닿지 않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무엇이라도 붙잡으려 자꾸만 손을 뻗고, 가라앉지 않으려고 발을 움직였다.
그때의 나는 아마 문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말 그대로 현관문을 나서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장을 보고, 산바카라을 하고, 카페에 가고, 낯선 도시를 걸으면 됐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들고 이곳의 세상으로 나가는 문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문 너머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무엇을 배우면 되는지, 지금까지 해온 일은 이곳에서도 쓸모가 있는지, 여기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오래 생각했다.
그러다 남편 앞에서 훌쩍이고 말았다.
그로부터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요즘 나는 오히려 이곳 생활에 조금 둔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에는 가까이 내다보이는 바다와 눈이 마주치면 한참 바라보았다. 노을이 지는 하늘을 가만히 내다봤고, 밤공기에도 반짝이는 별들을 올려다봤다. 낯선 풍경을 만나면 휴대전화를 꺼냈다. 사람들의 말소리에도 귀가 갔고, 한국과 다른 것을 발견할 때마다 머릿속에 하나씩 표시해 두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다.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장바구니의 무게를 먼저 생각한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곁에서 오가도 매번 귀를 세우지 않는다. 어느 길에 그늘이 오래 남는지, 어느 날에 관광객이 몰리는지, 무엇을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같은 것을 굳이 생각하지 않고도 안다.
그렇게 특별했던 것들이 하나씩 생활이 되었다.
처음에는 이런 변화가 조금 아쉽기도 했다. 좋아하는 마음이 옅어진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내가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 바라보았던 것들을 이제는 너무 당연하게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3개월의 나를 생각하면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때의 나는 이곳에 닿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헤아리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디에 쓰일 수 있을지, 이 시간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를 알고 싶었다.
3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모두 얻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다음을 알지 못한 채로 지낸다.
다만 예전만큼 버둥거리지는 않는다. 무언가가 분명해졌기 때문인지, 그저 모르는 채로 사는 일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는 분간하기 어렵다.
3개월과 3년.
세 번의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지나는 동안 같은 길을 여러 번 걸었다. 처음에는 이름을 몰랐던 곳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낯설었던 말 몇 개가 내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른 아침의 공기를 제치고 마주한 얼굴들에게 "Dobro jutro." 낯선 이에게도 아침 인사를 주고받는 일이 어색하지 않다. 헤어질 때에는 "Čao." 마치 또 마주칠 사이일 것만 같아 짧게 돌아선다. 반려견에게 다가온 사람의 "Pozdravi."라는 말은 이제 우리 반려견도 알아듣는다.
어쩌면 익숙해진다는 것은 더 많이 알게 되는 일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낯섦이 생활 뒤편으로 물러나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
익숙함에는 또 다른 경계도 있는 것 같다. 3년쯤 되면 조금은 알 것 같고, 웬만한 일은 어떻게든 넘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도 생긴다. 처음에는 모른다는 것을 알았는데, 이제는 안다고 생각해서 지나치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힘을 빼는 것과 무심해지는 것은 다를 텐데, 그 경계가 어디쯤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곳이 익숙해진 지금, 나는 오히려 이 생활의 끝을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살아야 할 시간이 막막했다.
이제는 이곳에서 살아온 시간이 생겼다.
내가 무엇으로 쓰일 수 있는지를 찾느라 문밖을 서성였던 동안에도 시간은 흘렀다. 그 사이 새로운 말을 배웠고, 이전에는 없던 생활이 생겼다. 어느새 특별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하루가 이어졌다.
그렇다고 이제 내 발밑에 단단한 바닥이 생겼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다음을 생각하고, 내가 가진 것들을 헤아려보고, 어디로 갈 수 있을지를 궁리한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발끝에 바닥이 닿지 않는다고 해서 예전처럼 계속 발을 휘젓지는 않는다는 것. 한때는 발끝이 닿지 않아 그렇게 버둥거렸던 곳에서, 이제는 잠시 힘을 빼도 괜찮다는 것을 안다.
세 번째 여름이 지나고 있다.
3년은 무언가를 완성하기 위한 시간이라기보다, 다음으로 건너가기 전에 한 사람의 호흡이 달라지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