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여름과 벌써 가을 사이

요즘 딱 그런 날들이다

by슬로하라


'하늘이 쩍 갈라지는 것 같다'는 말은 제법 문학적이고 과장된 표현처럼 들린다. 이곳에서 천둥을 겪을 때마다 그보다 조금 더 유려하게 표현해보고 싶지만, 번번이 저 말로 돌아오고 만다.


으레 천둥소리를 옮길 때 쓰는 '우르릉 쾅쾅'처럼 둥글게 울리는 소리가 아니다. 된소리란 된소리는 모두 공중에서 한꺼번에 연타로 폭발하는 듯하다. 빠자작, 꽈앙, 빠악. 소리가 터질 때마다 허공에 균열이 생기는 것 같다.


대감집의 두꺼운 대문이든 굳세게 잠근 쇠문이든, 웬만해서는 꿈쩍하지 않을 것 같은 무언가가 속절없이 단번에 빠개지는 듯한 소리다. 바로 머리 위에서 하늘 한쪽이 쪼개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한바탕 요란하게 천둥이 치더니 장대비가 쏟아졌다. 밤하늘이 정말 갈라진 것이라면, 그 틈으로는 잠시도 뜸을 들이지 않고 비가 퍼부었다.


그러고도 해가 나면 풍경은 금세 달라진다.


밤새 그렇게 요란을 떨던 하늘 아래로 다시 볕이 들고, 젖었던 벽과 골목이 마른다. 선명한 파란 덧문과 볕을 받은 옅은 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바탕 뒤집어졌던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풍경이 단정해진다. 언제 그랬냐는 듯 소박하고 말간 살을 드러내는 것 같다.


그 밤이 지나고 나니 공기도 달라졌다. 부쩍 선선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낮에는 볕이 뜨거웠고, 해가 진 뒤에도 여름의 꾸덕한 열기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비가 지나간 뒤로는 아침저녁 공기에 제법 서늘한 기운이 섞였다. 문을 나설 때 한 번쯤 오늘은 무엇을 걸쳐야 하나 생각하게 되는 날도 생겼다.


주말에는 잠시 류블랴나에 다녀왔다. 가는 동안 차 안에서 계기판에 찍힌 바깥 온도가 조금씩 내려갔다. 류블랴나에 도착하니 사람들의 옷차림도 달랐다. 반소매 사이로 긴소매가 보이고, 가벼운 겉옷을 걸친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그곳에서 먼저 가을을 보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이른 아침에는 남편과 해변 쪽으로 산바카라을 나갔다. 이미 바다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남편도 대뜸 바다로 뛰어들었다. 나는 그럴 마음까지는 없어 물가에서 다리만 적셨다.


물이 따뜻했다.


바닷물이 갑자기 따뜻해진 것은 아닐 테니, 아침 공기가 그만큼 차가워진 것이었다. 물 밖으로 나온 피부에는 서늘한 공기가 닿는데, 발과 다리를 담근 물은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졌다.


한여름에는 더운 공기를 피해 바다에 들어가 시원하다고 했을 텐데, 이제는 물 밖의 공기가 물보다 차가웠다.


한낮에는 여전히 햇볕이 따뜻하다.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있고, 여름옷을 집어넣기에도 아직 이르다. 그렇다고 한여름처럼 입고 아침 일찍 나서기에는 조금 망설여진다.


요즘은 딱 그런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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