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친구를 만난 오후
얼마 전 아들을 낳은 콜롬비아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이제는 밖으로 산바카라을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출산한 지 한 달 남짓 지난 무렵이었다. 이곳에서는 그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바카라을 나오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더욱 그랬다.
우리는 처음에는 산바카라을 하며 만나기로 했다. 나는 강아지를 데리고 나가고, 친구는 아기와 함께 나오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 사이 날씨가 부쩍 더워졌다. 중간 지점쯤 되는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가, 결국 내가 먼저 말했다.
"그냥 우리 집으로 올래?"
친구의 남편은 다시 긴 출장을 떠난 상태였다. 친구는 아기를 돌보며 시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타국에서 아이를 낳고, 아직 두 달도 되지 않은 아기를 돌보고 있는 친구를 보니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밥 한 끼 정도는 차려 주고 싶었다. 아침부터 미역국 냄비를 불에 올렸다. 오래 끓일수록 맛이 깊어지는 음식이라 늘 가장 먼저 준비한다. 김밥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다소 생소할 미역국도 괜찮겠는지 미리 하나씩 확인한 뒤였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친구이기도 했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마음을 전하는 데는 더 쉬웠다. 거창한 선물 대신, 내가 가진 방식으로 축하를 전하고 싶었다.
그 사이 김밥 재료를 준비했다. 한국에서 가족이 올 때 사다 준 김을 꺼냈다. 단무지는 구하기 어려워 오이를 소금에 절여 두고, 계란을 부치고, 당근을 볶고, 스노크랩을 찢어 속재료를 만들었다. 미역만큼은 한국에서 가져온 것이었지만, 나머지는 모두 이곳에서 구한 재료들이었다. 함께 초대한 스리랑카 친구는 소고기를 먹지 못했다. 그래서 담백하게 간을 한 돼지고기볶음도 따로 준비했다.
약속한 시간이 되어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가장 먼저 친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친구를 알고 지낸 지도 어느덧 2년이 되었다. 수업에 오던 친구는 커다란 백팩을 늘 메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함께 커피를 마시기도 했고, 가끔은 우리 집에 초대해 고기를 구워 먹기도 했다. 한국 음식과 문화에 관심이 많던 그녀는 소맥도 곧잘 즐겼다.
그런데 그날의 친구는 달라져 있었다. 어깨에는 아기를 위한 물건들로 가득한 가방을 메고 있었고, 앞에는 유모차와 잠들어 있는 그녀의 아들이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친구들이 아이를 낳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어느 날 출산 소식을 듣고, 한참 뒤에야 아이와 함께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함께 수업을 듣고 커피를 마시던 친구가, 한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엄마로 보이는 그 순간이 낯설었다.
나보다 여덟 살 어린 친구였지만, 왠지 대견했다. 함께 수업을 듣고 커피를 마시던 친구가 어느새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날만큼은 어쩐지 내가 아직 건너 보지 못한 문턱을 먼저 지나간 사람처럼 느껴졌다.
친구는 곧바로 식탁에 앉지 못했다. 수유를 해야 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먼저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렸다. 친구는 양해를 구하며 아기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고,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나왔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내게는 낯선 장면이었다. 함께 수업을 듣고 커피를 마시던 친구의 하루는 이제 아기의 시간에 맞춰 흘러가고 있었다. 식사를 하기 전에도, 대화를 나누기 전에도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제야 친구의 하루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했다.
이제야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친구는 아기를 유모차에 눕히는 대신 내게 안아 보겠냐고 물었다. 사실 나는 그 편이 더 좋았다. 잠시라도 친구가 두 손을 비우고 밥을 먹을 수 있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태어난 지 한 달 남짓 된 아기를 처음 품에 안게 되었다.
목과 머리를 받쳐야 한다는 설명을 들으며 조심스럽게 안았다. 요령이라는 게 없었다. 혹시라도 잘못 안을까 팔과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런데 품에 안긴 아기는 생각보다 훨씬 가벼웠다. 아직 몸은 채 여물지 않은 과일처럼 작고 부드러웠다.
그런데 얼굴을 들여다보면 또 전혀 달랐다. 눈동자가 유난히 또렷했다. 초록인지 파란색인지 단정할 수 없는 색이었다. 에메랄드와 사파이어를 한데 풀어놓은 것 같은 눈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작은 몸 안에 이미 저런 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코는 또 얼마나 작은지. 저 작은 구멍으로 정말 숨을 쉬고 있는 걸까 싶을 정도였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어이쿠."
"까꿍."
"아이 예뻐."
가장 먼저 나온 언어는 늘 그렇듯 모국어였다. 아기는 알아듣지 못했겠지만, 그녀도 흥미로운 듯이 따라 읊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식탁에 둘러앉은 우리는 김밥을 집어 들었고, 미역국을 맛보기도, 돼지고기볶음도 먹었다. 그녀들 입맛에 꼭 맞다 했다. 스리랑카 친구의 어린 딸아이는 식탁과 거실을 오가며 놀았고, 우리 강아지는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여느 때보다 일찍 퇴근한 남편도 친구와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었다. 친구는 남편에게도 아기를 안아 보겠냐고 물었다. 막 퇴근해 들어온 사람에게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를 선뜻 안겨 준다는 것이 놀라긴 했지만, 남편은 급히 손을 씻은 후 조심스럽게 아이를 받아 안았다. 긴장한 그와 달리 아기는 울지도 않은 채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고, 곧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든 아기의 작은 얼굴이 남편의 어깨에 가만히 기대어 있었다. 우리에게 없던 장면이 하나 추가된 경험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날 나는 밥 한 끼를 준비했고 친구는 아기를 내 품에 안겨 주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던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