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곳이 있다는 것

누군가 먼저 닿아 있는 자리

by슬로하라


반려견이 부쩍 자라면서 실외 배변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그 뒤로, 하루는 산바카라으로 시작해 산바카라으로 끝난다. 새벽 일찍 한 번, 점심 무렵 한 번, 밤늦게 한 번. 날씨가 무섭게 더워진 요즘은 짧게 네댓 번씩 나가는 날도 늘었다.


같은 길을 하루에도 몇 번씩 걷다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다녀본 유럽의 여러 도시 가운데서도 적어도 이 동네는 유난히 단정한 인상을 준다. 매연이 거의 없고, 길거리에는 쓰레기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래된 건물들도 많은데 이상하게 낡아 보이기보다 정돈되어 보인다.


처음에는 그냥 깨끗한 동네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반려견과 함께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걷다 보니 조금씩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 근처에는 새로 닦은 구불구불한 산바카라길이 하나 있다. 가장 자주 걷는 길이다. 얼마 전 그 길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그곳에 산바카라하는 반려견이 늘어서였을까. 어느 날 보니 파란 뚜껑이 달린 작은 쓰레기통이 새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쓰레기 몸통에는 강아지 발자국 두 개와 함께.


'SAMO ZA PASJE IZTREBKE'.

'반려견 배설물 전용'이라는 문구가 초록색으로 적혀 있었다.


원래도 일반 쓰레기통은 몇 개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 동네는 쓰레기통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공원에도, 산바카라로에도, 해변에도 일정한 간격으로 하나씩 놓여 있다. 그래서 배변봉투를 오래 들고 걸을 일이 거의 없다. 몇 걸음만 더 가면 늘 버릴 곳이 있다. 쓰레기통만이 아니었다.


계절이 넘어가면서 그사이 길가의 잔디에는 몇 차례 예초기가 지나갔다.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싶은 강아지 놀이터도 다음날 어느새 말끔하게 깎여 있었다. 무심코 지나치던 풍경이었지만, 자주 걷다 보니 그런 변화도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잔디를 깎고, 누군가는 쓰레기통을 비우고, 필요하면 쓰레기통 하나를 더 놓는다. 그런 눈에 잘 띄지 않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지금의 풍경도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의 의식이 높아서인가도 싶었다. 그런데 반려견과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길을 걷게 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버릴 곳은 늘 가까이에 있었고, 풀이 자라면 어느새 정리되어 있었다.


깨끗한 풍경은 누군가의 마음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풍경은 어쩌면 그렇게, 누군가 먼저 마련해 둔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날도 나는 배변봉투를 쓰레기통에 넣고 다시 걸었다. 손은 가벼워졌고, 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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