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류블랴나

도시를 다시 보는 방법

by슬로하라


토요일 오후, 프레셰렌 광장은 날이 따뜻해져 가면서 부쩍 관광객이 붐비고 있었다. 그 인파 속에서 나는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슬로베니아 친구. 작년 연말, 한국어교원 양성과정에서 만난 인연이었다. 한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어 한국어를 잘했고, 우리는 올해 초부터 매주 한 번씩 서로의 언어를 교환해 왔다. 지난번에는 그녀가 내 도시에 왔었고, 이번에는 내가 그녀의 도시를 찾아온 차례였다.


붐비는 인파 속에서 그녀를 만난다는 것. 관광객이 아니라 이곳에 사는 사람으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고도 특별했다. 그녀와 함께 걷는 류블랴나는 조금 달랐다. 골목마다 그녀의 이야기가 붙었고, 평범한 길목에도 그녀의 일상이 스며 있었다.


그녀가 먼저 데려간 식당은 1700년대부터 운영되어 온 오래된 레스토랑이었다. 대로변에 위치한 곳이어서 차로도 걸음으로도 지나간 적 있던 곳이지만, 내 눈엔 걸치지 못하고 지나쳤던 곳이었다.


메뉴판을 펼치니 익숙한 단어보다 낯선 이름들이 더 많았다. 슬로베니아 전통 음식들을 파는 곳이어서였다. 몇 년을 살면서도 근처 식당에서 슬로베니아 음식을 특별히 접해볼 기회가 없기도 한 터였다.


그때 그녀가 먼저 종업원에게 짧게 설명했다. 내가 슬로베니아어로 주문해 볼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하는 말이었다. 그전에 친구는 한 가지를 더 알려주었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주문 표현은 "A lahko dobim ___, prosim?"이었다. 그녀 자신은 조금 더 부드러운 표현을 쓴다고 했다.

"A bi lahko dobila ___?"

같은 뜻이지만, 더 공손하고 자연스러운 말. 친구의 말투가 그대로 담긴 문장이었다.


종업원은 유쾌한 웃음으로 나를 바라봐 주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미 기다리고 있는 시선 앞에서 천천히 말을 꺼냈다. 익숙하지 않은 메뉴 발음, 중간에 멈추는 문장. 그래도 그들은 끝까지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주었다.


잠시 후 고베야 유하(Goveja juha)와 즐리크로피(Žlikrofi)가 나왔다. 이름은 낯설었지만 친구가 권한 음식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유하는 맑은 소고기 육수에 면을 넣은 수프였다. 처음 한 숟갈을 뜨자 설렁탕이 떠올랐다. 야채 건더기와 아주 가는 파스타 면이 함께 들어 있었는데, 우리로 치면 소면 같은 면발이었다. 낯선 건 따로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포크를 집으려 했는데, 친구는 수저로 먹는다고 알려주었다. 면이 들어 있었지만 수저로 먹는다는 것이 조금 신기했다. 즐리크로피는 뇨끼와 만두의 중간쯤 되는 음식 같았다. 크림소스와 버섯이 곁들여져 나왔고, 잘게 썬 소시지도 함께 들어 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 그녀는 자신이 자주 가는 카페로 나를 데려갔다. 관광객들에게도 알려진 곳이라고 했지만, 그날의 카페는 친구와의 담소를 위한 단골집에 가까웠다. 우리는 음료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가 말했다.

"티볼리를 보여줄게."

사실 나는 카페 근처를 티볼리 공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진짜 티볼리는 여기야."


카페를 나서자 걷기에 더없이 가벼운 날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 공원을 친구와 함께 매주 달린다고 했다. 넓게 이어진 산바카라길과 숲, 그 사이를 걷고 달리는 사람들. 처음 들어선 티볼리는 내가 예상한 모습과 전혀 달랐다. 공원이라기보다 하나의 숲에 가까웠다. 말을 탄 경찰이 그 사이를 천천히 지나가기도 했다. 관광객으로 몇 번 다녀간 것과 누군가의 일상 속을 함께 걷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공원을 돌아 나오는 길, 그녀는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다시 멈춰 섰다. 이번에도 먼저 나를 바라봤다. 말해 보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슬로베니아어로 주문했다. 처음보다 조금 덜 망설이고, 조금 더 또렷하게.


우리는 다음을 약속했다. 다음에는 그녀가 매주 달린다는 그 공원을, 나도 함께 달려보기로. 그 약속까지도 어쩌면 그녀의 류블랴나가 내게 건너오는 방식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류블랴나를 구경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류블랴나를 잠시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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