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이미 여름을 살고 있었다
5월 중순 무렵이었다. 며칠 사이 기온이 훌쩍 올라갔다. 한낮에는 30도를 넘기는 날도 있었고, 강한 햇볕 아래에 서 있으면 체감 온도는 그보다 더 높게 느껴졌다. 초록은 하루가 다르게 짙어졌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한결 가벼워졌다. 그런데 내가 계절이 바뀌었다고 느낀 건 기온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 해변의 풍경이 달라졌다. 수건을 들고 나온 사람들,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는 사람들,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그리고 아직은 차가워 보이는 바다로 망설임 없이 들어가는 사람들까지.
어제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원피스 차림의 이웃 아주머니가 가방 하나만 가벼이 메고 해변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옆 골목에서는 웃통을 벗은 아저씨가 비슷한 차림으로 같은 방향으로 향했다. 자기 몸만 한 튜브를 지고 엄마 손을 잡고 가는 아이들도 보였다. 다들 이미 수영복을 입은 채로다. 언제든 옷을 벗고 바로 물에 들어갈 준비가 된 차림이다. 해가 길어진 탓인지, 오후 네다섯 시에도, 어떤 날은 여섯일곱 시에도 해변으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보였다.
어릴 적 여름이 떠올랐다. 해수욕장이 개장하는 날이 따로 있었고, 물에 들어가도 되는 계절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여름휴가가 시작되고 본격적인 더위가 찾아오면, 사람들은 비슷한 시기에 바다로 향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조금 다른 풍경을 본다. 사실 처음 놀랐던 건 5월도 아니었다. 겨울이 막 지나간 2월과 3월 무렵에도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두꺼운 외투를 입은 사람들 사이로 수영복 차림의 누군가가 바다에서 나오고 있었다. 나는 아직 외투 지퍼를 여미고 있는데, 누군가는 이미 바다에서 나오던 그 모습이 처음에는 성급하다 여겼다. 유난히 추위를 타지 않는 사람들인가 싶었다.
하지만 몇 해를 지내며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이곳 사람들은 달력보다 몸이 느끼는 계절에 더 솔직한 것 같았다. 날짜가 몇 월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햇볕이 따뜻해졌는지, 오늘 바람은 어떤지, 물이 들어갈 만한 온도인지. 계절은 숫자로 넘어오기보다 몸으로 먼저 찾아오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늦은 것이 아니라, 계절을 읽는 방식이 달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곳에서는 각자가 느끼는 계절의 속도가 조금씩 달랐다. 어떤 이에게 여름은 아직 멀었고, 또 다른 이에게는 이미 시작된 셈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날씨를 확인할 때면 기온만 보지 않게 되었다. 해변에 사람들이 얼마나 나와 있는지, 누군가 바다에 들어가 있는지, 벤치에는 몇 명이나 앉아 있는지를 함께 보게 되었다.
나는 아직 봄을 지나고 있었는데, 누군가는 이미 여름을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