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사람의 안부
중학생 때 나는 몸살을 자주 앓았다. 열이 오르면 온몸의 근육이 쑤셨고 이불이 살갗에 닿는 것조차 아팠다. 이불을 덮으면 금세 땀이 났고 걷어내면 한기가 들었다. 방문을 열어둔 채 누워 있으면 부엌에 선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머니는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수도에서 쏟아지는 물소리와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방 안까지 들렸다. 나는 어머니가 설거지를 마치면 방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마를 짚어 열을 확인하거나 물을 가져다주고,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물을 것이라고 기다렸다. 그러나 설거지가 끝난 뒤에도 어머니는 방으로 오지 않았다. 냉장고 문이 열리고 닫혔고 식탁에 그릇을 내려놓는 소리가 이어졌다.
밥때가 되자 나는 이불을 밀어내고 일어났다. 몸을 세우자 방이 잠깐 기울었다. 벽에 기대 어지럼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문틀을 짚고 식탁까지 걸어갔다. 몇 걸음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발을 옮길 때마다 몸의 무게가 아래로 쏠렸다. 어머니는 평소처럼 밥과 반찬을 차려놓고 감기에 걸렸을 때는 많이 먹어야 낫는다고만 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밥을 입에 넣었다. 입안이 말라 밥알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몇 번이나 물을 마시고 오래 씹은 뒤에야 한 숟가락을 삼킬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먹는 동안 맞은편에 앉아 있지 않았다. 부엌을 오가며 남은 일을 했다. 나는 몇 숟가락을 더 먹고 다시 벽을 짚으며 방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아픈 아이를 굶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내가 기다린 것은 끼니보다 사람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와 물을 건네는 사람, 말하지 않아도 이마에 손을 얹어보는 사람, 잠들 때까지 잠시 곁에 앉아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어머니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어머니가 오지 않자 내가 돌봄을 받을 만큼 아픈 것은 아닌가보다 짐작했다.
그 무렵의 나는 어머니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법을 몰랐다. 어머니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잘못을 하면 맞았고, 매가 시작되면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하기보다 언제 끝날지를 기다렸다. 어머니는 교육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나는 그 매에 훈육만 실려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다른 곳에서 삼키고 돌아온 분노가 내 몸 위에서 터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어떤 잘못도 그렇게 많이 맞아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맞고 난 뒤에는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따라 들어와 달래거나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설명한 기억은 거의 없다. 나는 울음을 멈추고 어머니의 기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 다시 끼니가 되면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들처럼 식탁에 앉았다. 어머니는 음식을 차렸고 나는 말없이 먹었다. 우리 집에서는 생활이 감정보다 먼저 이어졌다. 해야 할 일을 계속하는 것으로 사과와 화해를 대신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마음보다 기색을 먼저 살피는 아이가 되었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발걸음의 빠르기, 그릇을 내려놓는 힘으로 말을 걸어도 되는 날인지 판단했다. 어머니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는 묻지 않았다. 이유를 알면 이해해야 할 것 같았고, 이해하는 순간 내가 당한 일까지 참아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를 이해하는 대신 피하는 법을 배웠다.
부모님의 관계가 나빠진 뒤에는 살펴야 할 기색이 더 많아졌다. 식탁에서 대화가 끊기면 수저 부딪치는 소리만 났고 두 사람이 말을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는 방문을 닫고도 거실에서 들려오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싸움이 멎으면 안심하기보다 다음 싸움이 언제 시작될지를 기다렸다. 집 안의 평온은 평화라기보다 잠시 찾아온 정적에 가까웠다.
아버지와 여동생이 중국으로 떠나던 겨울에도 집 안에는 말해지지 않은 일들이 쌓여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두 사람을 배웅하러 갔다. 어머니의 눈은 밤새 울었던 것처럼 부어 있었다. 아버지와 여동생이 버스에 올라간 뒤에도 출발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들거나 버스가 움직일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먼저 돌아섰다.
어머니는 차에 올라 운전석에 앉자마자 시동을 걸었다. 버스는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 나도 조수석에 앉았다.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버스를 바라보지 않았다. 두 손을 운전대에 올린 채 앞만 보았다. 나는 곁눈질로 어머니의 부은 눈을 보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말을 거는 순간 어머니가 울 것 같았고, 어머니가 울기 시작하면 내가 받아내야 할 것이 생길 것 같았다.
차가 움직이는 동안 우리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앞을 보았고 나도 앞을 보았다. 어머니가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그날의 우리는 떠나는 두 사람보다 먼저 서로에게서 물러나 있었다.
당시의 나는 어머니가 왜 버스보다 먼저 출발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끝까지 바라보기 힘들어서였는지, 먼저 떠나는 사람이 되어야 남겨졌다는 기분을 견딜 수 있어서였는지 묻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를 자기 감정만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그 판단은 이후 어머니에게서 멀어지는 데 편리한 근거가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집을 떠나 있으면 부모님의 싸움도 어머니의 분노도 내게 직접 닿지 않았다. 방학이 다가오면 언제 내려갈지를 생각하기보다 서울에 얼마나 더 머물 수 있는지를 헤아렸다. 집에 내려간 뒤에는 다시 올라올 날짜를 기다렸다.
부모님은 내가 대학 4학년일 때 결국 이혼했다.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온 감정은 슬픔이 아니라 안도였다. 오래 이어지던 싸움이 마침내 끝났다고 생각했다. 집에 내려갈 때마다 두 사람의 표정을 번갈아 살피지 않아도 되고,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지 판단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미 오래전에 무너진 관계를 두 사람이 뒤늦게 인정한 것뿐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부부가 헤어진다고 가족 안에서 벌어진 일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한집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 다른 곳으로 흩어졌고, 사람과 장소도 어느 한쪽에 속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만나면 어머니를 배신하는 것 같았고,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 아버지를 판단해야 할 것 같았다. 두 사람의 싸움은 끝났지만 어느 편에도 편히 들어갈 수 없는 자식의 자리는 그대로 남았다.
나는 부모님의 결혼과 이혼이 내 삶에 오랫동안 나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가까워질수록 먼저 표정을 살폈고, 관계가 흔들리는 기색이 보이면 버려지기 전에 물러났다.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을 들키면 상대에게 약점을 내주는 것 같았다. 관계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부모님을 떠올렸다. 내 삶이 이렇게 된 것은 그 집에서 보고 배운 것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설명은 쉬웠다.
어머니는 그 설명 안에서도 주로 나를 다치게 한 사람으로 남았다. 어머니와의 연락은 차츰 뜸해졌다. 처음부터 오랫동안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한 번 전화를 받지 않았고, 다음에는 짧게 통화를 끝냈다. 만나자는 말을 한 차례 미루고 나면 다음에는 더 만나기 어려워졌다. 먼저 연락하는 순간 어린 시절의 일들을 모두 없던 일로 만드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씩 미룬 연락이 긴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어머니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나는 거의 알지 못했다. 어디가 아픈지,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는지, 밤이 되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어머니의 외로움을 상상하면 내가 그를 버린 사람이 되는 것 같았고, 나는 어머니를 만나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어머니의 사정을 생각하는 일은 내가 받은 상처를 의심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만나지 않는다고 그 사람이 기억에서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혼자 있다가 문득 어머니를 떠올렸고, 몸이 아프면 많이 먹어야 낫는다던 말이 생각났다. 연락하지 않으면서도 어머니가 무사하기를 바랐다. 나는 집을 떠났지만 집에서 배운 방식으로 관계를 견디고 있었다. 슬프면 먼저 돌아서고, 그리우면 연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에는 식탁을 닦다가 밥풀과 멸치, 콩나물 대가리를 행주로 밀었다. 밥을 먹고 난 자리의 젖은 자국이 식탁 위에서 이쪽저쪽으로 굽으며 길게 이어졌다. 행주를 든 채 그 자국을 바라보다가 어머니가 사는 곳으로 가는 산길을 떠올렸다. 몇 번이나 굽어 들어가야 나타나는 집, 한동안 찾아가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던 길이었다.
어머니에게 가는 길은 늘 그렇게 사소한 순간에 나타났다. 그리움을 오래 들여다본 끝에 출발한 적은 드물었다. 식탁을 닦거나 혼자 앉아 있다가 문득 어머니를 생각했다. 사람에게서 멀어진다고 그 사람에게 이르는 길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도 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가 뜻밖의 순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만난 어머니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생활이 생겨 있었다. 어머니는 충주에서 자신의 생활을 꾸렸다. 그곳에 마련한 집은 어머니가 오래 살았던 집들과 달랐다. 누군가의 아내로 들어간 집도 아니었고, 이미 정해진 가족의 질서에 자신을 맞춰야 하는 공간도 아니었다. 어머니가 자신의 남은 시간을 위해 선택한 집이었다. 내가 찾아가면 어머니는 집 안팎을 보여주었다. 늦게 얻은 생활을 아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 집을 돌아보며 나는 내가 만나지 않은 동안에도 어머니의 시간이 흘렀다는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 실감했다. 어머니는 내가 기억하는 장면 속에 그대로 서 있지 않았다. 가족이 흩어진 뒤에도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며 자신의 생활을 만들었다. 나는 그 시간의 대부분을 알지 못했다. 어머니에게 긴 세월이 있었고, 그 가운데 상당한 시간 동안 아들인 나는 없었다.
어머니 곁에는 새로운 사람이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묻기도 전에 그 사람과 함께 지내는 까닭부터 설명했다. 사랑이라고 부를 만큼 거창한 감정 때문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 혼자 지내면 적적하고 서로 의지할 사람이 필요해서라고 했다. 어머니의 말은 빨랐다. 자신의 생활을 아들에게 이해시켜야 하는 사람처럼 설명을 서둘렀다.
나는 어머니의 말을 중간에 끊고 그를 끌어안았다. 용서하겠다고 결심한 것도 아니었고, 지난 일을 잊었다는 뜻도 아니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을 눈앞에 두고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몸이 먼저 움직였다. 품에 들어온 어머니는 기억보다 작았다.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가 방 안으로 들어오기만 해도 몸이 굳었다. 발걸음만 들어도 기분을 살피게 했던 사람이 이제는 내 두 팔 안에 들어왔다. 어깨는 좁았고 등은 얇았다. 나는 잠시 팔을 풀지 못했다. 어머니의 몸이 작아졌다는 사실이 슬펐고, 그를 슬퍼하는 내 마음이 낯설었다.
그 마음을 다른 자리에서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내가 이혼하고 아이들과 떨어져 살게 된 뒤였다. 함께 살지 않게 되자 아이들의 하루는 빠르게 보이지 않는 곳으로 넘어갔다. 아침에 어떤 얼굴로 일어나는지, 학교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무엇을 하는지, 아프면 누구에게 아프다고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한때는 같은 집에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보았던 아이들이 내가 가장 사랑하면서도 가장 적게 아는 사람들이 되어갔다.
궁금한 것이 생겨도 마음대로 물을 수 없었다. 자주 연락하면 부담을 줄 것 같았고, 보고 싶다는 말은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아버지의 감정이 될 것 같았다. 기다리는 일이 아이들을 배려하는 것인지, 다시 거절당할까 두려운 나를 보호하는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묻고 싶은 것은 점점 많아졌지만 실제로 건넬 수 있는 말은 줄어들었다.
나는 며칠 전부터 몸살을 앓고 있다. 잠이 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하고, 이불 속에서 추웠다가 더워진다. 목이 말라 눈을 떠도 몸을 일으키기까지 한참이 걸린다. 어둠 속에 누워 있으면 아이들이 떠오른다.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걱정하다가 나를 찾지 않는 아이들을 원망했다.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아버지 없이 지낼 수 있는지 생각했다.
아이들이 나 없이도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바로 그 일상이 나 없이도 계속된다는 사실에는 상처를 받았다. 무사하기를 바라면서도 나를 그리워하기를 원했고,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지는 않기를 바랐다. 아이들의 평안을 걱정하는 마음과 그 평안 안에 내가 없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 함께 있었다.
그런 밤이면 오랫동안 어머니를 찾지 않았던 내 시간이 잠시 떠오른다. 그때도 어머니가 마음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것은 아니다. 연락하지 않으면서도 생각했고,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돌아가는 길을 잊지는 않았다. 이 기억은 아이들도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증거가 아니다. 다만 사람의 침묵을 곧바로 무관심이라고 단정할 수 없게 하는 작은 유예가 된다.
아이들이 왜 나를 찾지 않는지는 내가 대신 설명할 수 없다. 나를 미워할 수도 있고, 만나기 두려울 수도 있으며, 지금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거리를 두고 있을 수도 있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로서의 나와 아이들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다를 것이다. 나는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사랑이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도착했는지는 아이들만이 말할 수 있다.
언젠가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내가 얼마나 아팠고 오래 기다렸는지를 먼저 말하지 않으려 한다. 왜 연락하지 않았는지 추궁하지도 않을 것이다. 대신 아이들이 지나온 시간을 듣고 싶다. 내가 없는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이 즐거웠고 무엇이 힘들었는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며 지냈는지 듣고 싶다. 그 기억 속의 내가 내가 믿어온 모습과 다르더라도 먼저 고치려 들지 않고 싶다. 아이들이 말하는 동안 나의 억울함을 설명할 문장을 찾지 않고, 그들이 멈추면 다음 말을 기다리고 싶다.
아이들이 돌아온다고 해도 예전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함께 보내지 못한 시간은 뒤늦은 만남으로 복구되지 않는다. 서로 모르는 습관이 생겼을 것이고, 설명해야만 알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을 것이다. 관계는 끊어진 자리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달라진 사람들이 처음 만나는 것에 가깝게 시작될 것이다. 그래도 처음부터 거창한 말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용서와 바카라임을 먼저 논하거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지나간 시간을 덮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에 다시 말을 걸 수 있는지는 가장 작은 질문에서 드러날 것이다.
잘 지냈니. 아픈 데는 없었니.
그 질문 뒤에 바로 다음 말을 붙이지 않고 아이들의 대답을 기다리고 싶다. 돌아오라고 요구하는 대신 돌아왔을 때 말할 자리를 비워두는 것,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기다림은 그 정도일 것이다. 안녕이라는 말 대신 내가 아이들에게 남겨두고 싶은 것은 약속도 해명도 아니다. 내가 알 수 없었던 시간 동안에도 무사하기를 바랐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 때 내가 먼저 돌아서지 않고 그 자리에 있겠다는 안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