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말은 꼭 안개 같았다

사랑은 어떻게 상대를 오해하는가

byMinseung Kang

서래(탕웨이)의 말은 꼭 안개 같았다. 숨김과 거짓말, 말하지 않음과 외국인이라서 사용할 법한 생경한 표현들이 그 안에 뒤섞여 있었다. 한국어로 말할 때 그는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점검했다. 감정이 격해지면 중국어로 말한 뒤 휴대전화의 번역기를 거쳤다. 서래의 얼굴에는 절박함이 번지는데 기계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평한 목소리로 그의 말을 옮겼다. 표정은 먼저 도착하고 뜻은 한 박자 늦게 왔다.


말은 발화자의 입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단어가 부족하거나 문장이 모호하면 듣는 사람은 그 빈자리를 맥락과 표정, 이미 알고 있는 사실로 채운다. 문제는 그때부터다. 알아듣지 못한 부분을 비워두는 대신 자신이 가장 그럴듯하다고 여기는 뜻을 집어넣는다. 말한 사람이 남겨둔 공백은 듣는 사람의 기억과 욕망으로 채워지고, 그렇게 완성된 해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가 실제로 한 말처럼 굳어진다.


해준(박해일)은 서래를 오래 관찰한다. 그러나 오래 바라본다고 사람을 정확히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관찰은 대상에 관한 정보를 늘리는 동시에 관찰하는 사람의 욕망도 키운다. 증거를 모으던 해준의 시선은 어느 순간 서래를 의심할 근거보다 그를 이해하고 변호할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서래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객관적인 판단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서래를 더 정교하게 만들어간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뿐 아니라 견딜 수 있는 것만 본다. 해준에게 서래가 자신을 이용한 살인자라는 사실은 사랑한 사람의 정체만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서래를 믿고 원칙을 저버린 형사 해준의 정체도 함께 무너뜨렸다. 진실을 인정하려면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믿고 싶은 대로 판단하여 스스로를 속였다는 사실까지 받아들여야 했다. 해준이 경험한 것은 실연이라기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관한 믿음의 붕괴였다.


그래서 해준은 묻는다.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이 말에는 물음표가 붙어 있지만 서래가 대답할 자리는 없다. 자신이 만만하게 취급됐다는 판결을 이미 내린 사람이 그 결론을 상대에게 통보하는 문장이다. 서래도 묻는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그 역시 자신의 행동이 옳았는지를 묻지 않는다. 자신이 한 일이 사랑에서 비롯됐는데 당신은 어떻게 그것을 악의로만 읽을 수 있느냐고 항변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질문하지만 아무도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각자가 완성한 상대의 모습을 의문문의 형식으로 확인하려 할 뿐이다.


살면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자주 주고받는다. 왜 그랬어? 나를 정말 사랑하기는 했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질문하는 사람은 이유를 듣고 싶다고 말하지만 많은 경우 이미 이유를 정해놓았다. 상대의 대답이 자신의 결론과 다르면 변명이라고 부르고, 일치하면 자백이라고 부른다. 대답하는 사람 역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기보다 자신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받으려 한다. 그렇게 대화는 함께 사실을 찾는 일이 아니라 각자가 미리 써온 판결문을 낭독하는 일이 된다.


일상적인 경우, 그래서 질문하는 사람이 권력의 위쪽에 있다면 상대는 질문의 문장보다 그 뒤에 있는 의도를 먼저 읽는 편이 여러모로 이롭기도 하다. 상사가 부하에게 지시를 이해하느냐고 묻고, 교사가 학생에게 알아들었느냐고 확인하며, 수사관이 용의자에게 사실을 말하라고 요구할 때 질문에는 답을 평가하고 불이익을 결정할 권한이 따라붙는다. 아래에 있는 사람은 사실대로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디까지 말해야 안전한지, 어떤 답이 순응으로 받아들여질지를 헤아려 자신의 경험을 허용된 문장으로 편집해야 한다.


더 근본적인 권력은 답을 요구하는 능력보다 질문을 정하는 능력에 있다. 잘못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묻는 동시에 이미 잘못이 있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나를 사랑했느냐는 질문은 복잡하게 변해온 관계를 사랑과 사랑하지 않음 가운데 하나로 판결하게 한다. 질문이 현실을 설명하기도 전에 가능한 답의 범위를 잘라내는 것이다. 답이 정해진 질문 앞에서 상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자가 마련한 결론 가운데 어느 것을 받아들일지 선택하는 것뿐이다.


권력이 답할 수 있는 말을 제한한다면 사랑은 들을 수 있는 말을 제한한다. 사랑이 시작될 때 우리는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하는 사람을 기대와 상상으로 완성한다. 답장이 늦은 것은 신중해서이고, 말수가 적은 것은 생각이 깊어서이며, 무심한 태도는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는 서투름이라고 해석한다. 상대가 특별해서 사랑하기도 하지만, 사랑하기로 한 뒤 그 사람이 특별하다는 증거를 부지런히 찾아내기도 한다.


이런 해석은 단순한 착각만은 아니다. 사랑은 본래 상대에게 조금 더 좋은 뜻을 허락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의 무심함이라면 지나쳤을 행동을 서투른 애정으로 받아들이고, 설명되지 않는 침묵에 그럴 만한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관대함이 없다면 사랑은 시작되기 어렵다. 문제는 상대를 향한 호의가 상대에 관한 확신으로 바뀔 때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남겨두지 못하고 자신이 바라는 인물로 완성한 뒤, 그 사람을 실제의 상대라고 믿는다.


관계가 깊어지면 상상으로 채웠던 자리에 실제의 상대가 들어온다. 그가 변한 것이 아니라 비어 있던 부분이 드러났을 뿐인데 우리는 속았다고 느낀다. 처음부터 약속한 적 없는 성격과 태도를 요구하고, 자신이 대신 작성한 약속을 왜 지키지 않느냐고 추궁한다. 콩깍지가 벗겨진다는 말은 상대의 결함이 갑자기 보이기 시작한다는 뜻만은 아니다. 내가 사랑한 사람의 얼마쯤은 실제의 상대가 아니라 내 기대가 만든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때부터 과거의 말도 의미가 달라진다. 사랑받고 있다고 믿을 때 다정함으로 들렸던 말은 관계가 어긋난 뒤 기만의 흔적이 된다. 싸움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침묵은 상대의 기억 속에서 무관심이나 동의로 남는다. 한 사람에게 참아준 시간은 다른 사람에게 방치된 시간이고, 한 사람의 배려는 다른 사람에게 통제다. 같은 시간과 장소를 함께 통과한 두 사람이 전혀 다른 관계를 기억한다.


누구 하나가 의식적으로 거짓말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기억은 지나간 일을 그대로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의 자신이 무너지지 않도록 과거를 다시 배열한다. 떠난 사람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장면을 중심으로 관계를 기억하고, 남겨진 사람은 버림받았다고 느낀 순간들을 이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관계가 끝났기 때문에 기억이 달라진 것인지, 기억이 달라졌기 때문에 관계가 끝난 것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헤어진 두 사람이 들려주는 사랑의 이야기는 좀처럼 일치하지 않는다. 상대의 기억 속에서 나는 내가 아는 나와 다른 사람이 된다. 그곳에서 나는 무심하거나 잔인한 사람, 끝까지 최선을 다한 사람, 혹은 끝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사람으로 남는다. 그 기억을 찾아가 바로잡고 싶지만 타인의 기억에는 정정 보도를 청구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뿐이며, 그것마저 상대에게는 또 하나의 자기변호로 들릴 수 있다.


이를테면, 해준은 자신이 언제 사랑한다고 말했느냐고 되묻는다. 서래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깊은 바다에 버리라고 했던 해준의 음성을 사랑의 고백으로 기억한다. 해준에게 그것은 형사로서의 원칙을 저버린 자신의 붕괴를 선언하는 말이었고, 서래에게는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무너뜨린 사랑의 증거였다. 해준은 사랑한다는 낱말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사랑이 아니고서는 하기 어려운 일을 했다. 서래는 그 뜻을 알아들은 것 같지만 동시에 자신의 사랑이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해준의 붕괴를 번역했다. 해준이 말한 것은 자신의 무너짐이었고 서래가 들은 것은 자신을 향한 사랑이었다. 어느 하나만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 어렵다. 한 문장이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삶에 들어가 전혀 다른 진실이 된 것이다.


서래의 마지막 선택에서도 같은 문제가 남는다. 그가 해준의 삶에서 사라지는 대신 기억 속에서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면, 그것은 희생인 동시에 점유다. 상대를 놓아주면서도 자신의 부재를 평생 풀리지 않는 사건으로 남기는 일이다. 사랑에는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과 상대의 기억을 끝까지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함께 들어 있다. 어느 하나만 진심이고 다른 하나는 거짓이라고 나눌 수 없다.


처음에 질문하는 사람은 해준이었고 대답해야 하는 사람은 서래였다. 마지막에는 그 자리가 뒤집힌다. 질문할 권한을 가졌던 형사는 답을 얻지 못한 채 남고, 심문받던 용의자는 자신의 부재를 해준이 끝내 풀지 못할 질문으로 만든다. 대답하지 않는 사람이 언제나 무력한 것은 아니다. 때로 침묵은 질문자가 더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게 하는 마지막 권력이 된다.


이제야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갈 수 있다. 질문은 언제 질문이 되는가. 진심으로 질문한다는 것은 상대의 대답 때문에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할 가능성까지 받아들이는 일이다. 어떤 대답을 들어도 결론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나 심문에 가깝다. 상대에게 말할 기회를 준다는 것은 그의 말을 들은 뒤 내가 써온 이야기의 일부를 고칠 준비까지 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언제든 틀릴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상대를 오해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내가 본 것이 전부가 아니며, 내가 들은 뜻이 상대가 말하려던 뜻과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두는 일이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그 일이 좀처럼 되지 않는다. 의심은 사랑을 방해하는 불순물처럼 느껴지고, 믿고 싶은 마음은 이해했다는 확신으로 바뀐다. 그러기에는 서래가 너무 미인이었다. 아름다움은 사실이 아니지만 사실을 해석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서래의 침묵과 모호한 말은 냉담함이나 거짓말로 끝나지 않고, 해준이 풀어야 할 깊이와 비밀로 남았다.


이것은 해준만의 실패가 아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동안 상대에게 불리한 증거를 외면하고, 관계가 끝난 뒤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같은 증거를 유죄의 근거로 바꾼다. 서래의 말은 꼭 안개 같았지만 안개가 모든 것을 감춘 것은 아니었다. 해준은 그 안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윤곽을 보았고, 서래도 해준의 말에서 자신이 기다리던 고백을 들었다. 두 사람이 끝내 마주한 것은 상대의 진실만이 아니라 그 진실 위에 각자가 덧그린 마음이었다.


헤어질 결심은 한 사람을 떠나기로 마음먹는 일만을 뜻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했다고 믿어온 사람, 내 기대와 상상으로 완성한 사람, 나의 기억 속에서 나를 사랑하거나 배신한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실제의 상대보다 내가 해석한 상대를 더 오래 붙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관계는 비로소 끝난다. 사람과 헤어지는 것보다 그 사람에 관해 자신이 써온 이야기와 헤어지는 일이 더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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