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영화 [레미제라블]

by오래된 도서관

"신데렐라야. 왕자와 결혼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걸레질하는 이야기를 왜 빼놓은 거야?"


거실에 뭘 흘린 줄 알고 닦다가 손이 멈춘다.

묻은 것이 아니라 착색된 얼룩이다. 걸레를 고쳐 잡고 야무지게 문지르다 문득 저 말이 떠올랐다.


'신데렐라야. 걸레질 이야기도 해주지 그랬어. 아. 너도 걸레질하느라 쓸 시간이 없었다고?'


웅크리고 오래 한 군데를 문지르다 보니 뒤늦은 무릎과 손가락의 통증이 올라온다.

유부녀가 된 신데렐라는 왕비의 삶이 펼쳐졌지만 난 미혼의 신데렐라구나.

그래도 공주가 맞기는 하네, 재투성이 공주. 실소가 나온다.


'웃어야지 뭐. 재투성이도 웃으면서 새들과 노래도 곧잘 했더니 마법사 할머니가 나타났잖아.'


그리고 몰랐던 것도 아니지 않나.

호박마차 타고 허니문 떠나던 신데렐라는 왕자비지만, 엔진 달린 자동차 타고 다니는 나는...


"값비싼 1일 공주 체험 패키지였지."


장발장이 훔친 빵이 그의 남은 인생을 되돌릴 수 없는 지경까지 몰아갈 줄 알았다면, 과연 그 빵을 훔쳤을까?


나에게 장발장의 빵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후의 이야기에는 귀 기울일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위풍당당 걸어 나온 그 버진로드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건 장발장에 대한 모독이 되려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후의 삶을 조명하지 못하고 빵을 냉큼 집어먹은 내가 장발장의 빵에 견주어보는 것이 말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픈 법이니, 좀 우겨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무슈 장발장. 모티브 좀 얻어 씁시다."


나와 장발장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그저 눈이 멀었다는 것 밖에는 없다.


절박함에 눈이 먼 대가로 남은 인생과 바꾸게 될 빵 한 덩어리인 줄도 모르고 끝내 손을 댄 장발장.

그리고 과년한 나이에 나만큼 과년한 청년과 만나 관혼상제 중 유일하게 '나'라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혼'의 선택권을 행사했다는 착각에 눈이 멀었던 나.

실상 선택권의 행사자는 나뿐만 아니라, 나만큼 과년한 청년의 것이기도 했다.


무엇에 눈이 멀었는지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눈이 멀었다'는 티끌만 한 공통점을 빌미로 '무슈 장'의 모티브를 훔쳐본다.


공주들의 이야기처럼 장발장의 고된 인생도 '빵 하나 훔쳐서 감옥에 가고 말았습니다.'라고 마쳤으면 좋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장발장의 진짜 이야기는 무려 19년의 옥살이와 그 옥살이 끝에 돌아온 감옥 밖의 차가운 현실에서부터 시작된다.


몰랐으면 더 좋았을 에필로그처럼.


그래서 이미 착색된 얼룩에 걸레질하는 야매 신데렐라는 주문을 외워 모티브 사용료를 지불한다.


"그렇게 무슈 장발장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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