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실낙원], 이게 초능력은 아니에요.
"실낙원? 실들이 죽으면 가는 천국인가?"
한자를 배우기 전.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다닐 때 처음 실낙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생각이었다.
엄마의 수예점 벽에는 바닥에서부터 천장에 닿도록 각종 화려한 털실이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털실과 쿠션 사이에서 자란 기억은 실들의 천국인 <실낙원>을 폭닥폭닥하게 잘 어울리는 말로 느끼게 했다.
게다가 엄마가 자주 물건 떼러 오가던 상가의 이름이 '낙원 상가'였다.
아홉 살 꼬마에게 실낙원은 빨간 털실뭉치를 만질 때 같은 나른한 기억이 되기 충분했다.
모르는 게 약일 때가 있기는 한가 보다. 실낙원의 진짜 뜻을 알고는 저 폭신한 천국의 기억이 와장창 깨졌다. 그리고 그 자리엔 시큼털털한 쓴 입맛이 남았었다. 예쁜 색의 털실을 솜사탕처럼 입에 넣었을 때의 영 좋지 않았던 기억처럼 <실낙원>은 절절한 체험학습의 한 덩어리로 남았다.
그래서 그동안은 <실낙원>의 이름을 건 여러 바카라도, 영화도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왔다.
그리고 운명의 장난처럼 이번 붕어빵 재료로 <실낙원>이 툭 떨어졌다.
결국 <실낙원>은 또 별사탕 먹을 욕심에 참고 먹어야 할 건빵이 되었다.
예고편을 검색해서 보았다.
"이번 건빵은 또 왜 이렇게 매운 건데?"
어려서 죽은 아들을 대신할 AI 아들을 바라보고 살던 엄마 앞에, 죽은 줄 알고 가슴에 묻었던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 무려 9년의 시간을 지나, 어른이 된 아들이.
AI로 만들어놓은 아들은 여전히 9년 전의 소년인데, 느닷없이 어른의 얼굴이 된 아들이 나타났단다.
영화에서는 괴물 같은 아들로 그려지지만, 진짜 아들과 가짜 아들 중 어느 쪽이 '낙원'인지를 강제로 결정하게 할 요량이라면, 사람 백정으로 돌아온 진짜 아들이라는 설정까지 갈 것도 없다.
엄마에게는, 어린 시절의 아들을 이길 수 있는 아들은 없다.
훌륭히 장성해 돌아온 아들과 어린 아들을 나란히 놓고 고르라고 한들, 어린 아들의 손을 쉽게 놓을 수 없다.
"연상호 감독님 아들 없으신가?"
태어날 때부터 나이 들어 어른이 되어 같이 늙어가는 나이가 되는 긴 시간 내내, 딸들은 매번 아기자기한 귀여움과, 알록달록한 감정을 나누다가 같이 나이 드는 동지로 곁을 지킨다. 딸로 살아보고, 딸을 키워본 내 관점에서는 말이다.
반면, 아들로 살아볼 기회는 없었지만, 아들을 키워본 엄마의 눈으로 본 아들의 전성기는 열 살 즈음부터 유턴을 해서, 중학생 시기에 큰 시험에 들게 한다.
"부모에게 동의서 받고 군대를 좀 일찍 끌고 가는 건 어떨까?"
아들이 주는 쓴 맛을 건너뛰고 달콤한 품 안의 아들밖에 모르던 엄마에게 9년의 공백을 부숴버리면서 아들을 돌려주면, 진도가 너무 빠른 게 아닐까?
멀미할 텐데.
다시 한번 말하자면, 엄마에게, 어린 시절의 아들을 이길 수 있는 아들은 없다.
훌륭히 장성해 돌아온 아들과 어린 아들을 나란히 놓고 고르라고 한들, 어린 아들의 손을 쉽게 놓을 수 없다. 그런데 인간 백정이 돼서 나타난 눈이 번들번들한 아들이라니?
당장 내보내고 현관 키 바꿔야지.
이것을 모성애로 목줄을 걸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열 살 즈음 아들이 유턴을 할 때가, 아들이 엄마 손에 들린 작대기를 무서워하는 시늉을 해 주는 마지막 구간이다.
사랑을 받은 기억도 없이 들짐승처럼 생존해 온 아들을 사랑으로 품으라고 저 엄마 등을 떠밀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일까?
열 살의 아들도 못 키워본 엄마가 따라갈 진도가 아니다.
아들이 주는 쓴 맛도 모를 때 헤어져, 잘 먹이고 입히며 사랑 주지 못한 채, 험하게 자라 온 아들에게 느껴질 애틋함은 암행어사 마패가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영화 속 아들은 '암행어사 마패'가 통할 애가 아니잖아요.
모성애라는 것이 강력한 것은 맞지만, 초능력이 아니에요.
보통은 포기하기 어려운 두 가지를 놓고 강제로 고르게 하지 않나?
온갖 위협적인 덩어리를 다 붙여놓고도 단지, 진짜 아들이라는 이유로 목숨을 걸 것인지를 '모성애'를 볼모로 잡고 묻는 것이라면, 너무 당황스럽다.
영화 속 AI아들의 모습이, 현재 아들처럼 나이가 들어 있는 상태라면, 선택의 딜레마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AI아들은 나이 먹지 않고 소년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아들을 상실한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AI아들에게, 하루빨리 군대나 다녀오면 좋겠다고 느낄 사춘기는 설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효자 세팅된 AI 아들과 인간 백정이 된 진짜 아들.
나만 이 밸런스 게임 설정이 실패했다는 생각이 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