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선택권이 있는 건가?

[부활남:더 레드]

by오래된 도서관

온라인카지노북 설정을 잘못해서 <붕어 없는 붕어빵>에 넣지 않고, 그냥 업로드를 했었네요.

본의 아니게 연재 날짜를 어기게 되어 죄송합니다.




죽고 나서 3일 만에 살아난 것에 성공한 대가로 초능력을 준다면, 무슨 능력을 얻어야 억울하지 않은 걸까?


밸런스 게임처럼 듣자마자 뿅 하고 떠오르는 말을 캐주얼하게 뱉어야 하는데, 쉽게 욕심나는 초능력 대신


'죽으면 끝이지 뭘 또다시 일어나서 업데이트를 하래는 거야!.' 하는 생각부터 든다. 삶에 찌들다 보니 동심이 바짝 말라버린 건가. 이렇게나 얄짤없는 상상력이라니!



뇌를 거치지 않고 입으로 툭 나오지 못한 답은 시간을 가지고 상상할수록, 하나만 정하기 어려워진다.


누가 준다고 한 적도 없는 초능력보다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엄한 것에 괜히 생각이 퐁당 빠진다.


사람은 한 번 죽지 두 번 죽지 않는다. 그래서 그 죽음의 순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언제일지 모르는 그 순간의 고통을 견디고 죽었더니 다시 부활한다고? 설상가상 그 죽는 순간의 고통과 기억을 가진 채 3일 만에 다시 눈을 뜨는 대신 얻게 되는 능력이라니.


이것은 상인가? 벌인가?


부활하는 데 3일이나 걸리다니,



"그 사망 상태로 지나는 3일간 피부 상태는 보존해 주는 거예요?"




살면서 소원 하나만 들어주겠다고 하면



"로또번호 6자리 좀. 이월되어서 누적금 최고액일 때의 숫자로 주세요!"



할 텐데, 죽고 나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아니지, 죽은 뒤 살아나 받는 능력이니 뭐니 money해도 money. 고민할 게 뭐 있나?



영화 설정이 정확하게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주인공 남자는 괴한들에게 느닷없이 공격을 당한 후 무력하게 죽음을 당했다가 살아났다. 72시간 후 깨어났는데 없던 전투능력이 생긴 채 살아난다. 그리고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면서 더 강한 능력을 얻는다.


본인이 죽는 순간 더 강한 전투능력을 간절히 원하며 죽었다면, 죽는 순간 가장 원했던 능력을 부활의 대가로 얻은 것일까? 그렇다면 내가 죽는 순간에



"돈벼락 좀 쏟아졌으면 좋겠다!"



라고 하면서 죽어야 하는 것이군.


로또 당첨자로서의 부활 이후는 참 매력적인데, 누가 들을까 낯부끄러운 죽음의 순간이다.


내 죽음의 관객이 있다면 억지로라도 '세계평화!'라고 외치고 슈퍼히어로의 부활을 하고, 홀로 맞는 죽음이라면 말도 안 되는 부자로 부활을 하게 되겠네.



"혼자 있고 싶어요. 다들 나가주세요."



부활남에게 주어지는 능력치는 랜덤일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능력을 골라 받는 게 아니라, 첫 죽음에서 생긴 능력이 죽음을 거듭할수록 강해지는 시스템이라면 애초에 내가 이렇게까지 초능력을 고심할 필요도 없었던 셈이다.


그래도 공정하긴 하다. 남들은 한 번 겪고 끝나는 죽음을 반복해야 하니까.



죽음 이후의 세상은 알 수가 없지만, 종교에서는 사는 동안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좋은 곳을 가거나 나쁜 곳을 가기도 하고, 진짜 좋은 삶을 산 사람은 윤회의 수레를 벗어난다고도 한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종교의 영역에서도 인간에게 부활을 경험하는 옵션은 제공하지 않는다. 심지어 다시 태어나는 옵션을 열어 둔 종교에서도 죽음이나 전생의 삶을 기억하지 못하게 지워준다. 높은 확률로 죽음의 순간을 지워주는 것은 신의 배려가 아닐까?



지금 살고 있는 삶에 대해서도 모르는데, 경험도 없는 죽음에 대해 알리가 있나.


하지만 죽음의 순간 자체는 고통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은 가능하다. 숨을 60초만 참아봐도 바로 여러 곳의 통증을 경험할 수 있으니 그 호흡을 더는 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오죽하겠나.


떨어진 모든 몸의 기능만큼 통증도 둔해져 있기만을 바랄 수밖에.



이런 면에서 보면 [부활남]이라는 설정 자체는 확실한 팝콘무비다운 액션 장면에도 불구하고 곱씹어볼수록 잔인하다.


액션에 속을 뻔했네.


그리고 주인공이 더 큰 전투 능력을 갖추고 부활하기 때문에 더 큰 적을 만나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더 큰 적을 만나게 되다 보니 자꾸 더 큰 전투 능력을 얻으며 부활하게 되는 것인지는 몰라도 영화 속 [부활남]은 점점 더 세 보이는 적과 만난다.



나의 부활 베네핏에 대입해 보면, 점점 더 큰돈이 필요한 생으로 부활하는 셈이다.


지금은 만 이천 원이 필요한데 주머니에 만 원밖에 없는 상황이, 죽고 살아난 뒤에는 120만 원이 필요한데 100만 원밖에 없는 일상으로 스케일이 커지는 것이라면, 굳이 3일 동안 건너던 삼도천에서 돌아와서까지 겪을 일이냐고?



"그럼, 부활 안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