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전남친

영화 [하트 오브 비스트]

이래서 헤어진 남친은 나중에라도 만나지 말라고 하는 건데.


"피트. 그새 퇴역했어? 아. 퇴역했다는 소식까지는 들었어. 군견이랑 함께 지난다면서?

달링? 그런데 왜...... 알래스카에서 '나는 자연인이다' 찍고 있는 거야?"


할리우드 미남들 노후 플랜으로 마초남이 유행인가?

그래도 톰이 블랙요원 하는 것까지는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은퇴하고 싶어도 자꾸 불려 오는 통에 누구보다 오래 현장에서 뛰게 생긴 능력 있는 오빠이니 걱정할 일도 없다. 그런데 피트 달링은 벌써 퇴역군인이야? 전에 <퓨리>에서 탱크 몰 때 월급도 괜찮더구먼 왜 그만뒀어? 탱크 몰면 보병보다 오래 근무할 수 있잖아.


"아.. 톰이 누구냐고? 톰 크루즈. 전에 뱀파이어였을 때 친하지 않았나? 전에 인터뷰도 했잖아. 그래서 기사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라고 나갔었는데, 이제 서로 연락 안 하나 보네."


이번 영화에서 오랜만에 본 달링 피트는, 군인의 신분 때문인지 조난된 알래스카에서의 고생 때문인 것인지, 석양을 받으면 앉아 있는 옆얼굴이 거칠다.

피곤한 표정으로 수통의 물을 마시는 장면에서 오랜 친구의 낡은 모습이 느껴졌다.

체력의 한계와 오래 싸워 온 군인의 면모가 보이기도 했다.

문득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나는 그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달링 피트는 동의한 적이 없지만.


"그러게 사람 되지 말라고 했잖아. 늙지 말고 살지 필멸의 존재가 뭐 좋다고 뱀파이어 그만두고 사람이 돼서 알래스카까지 가서 이게 무슨 고생이야. 다쳐서 쉬어야 할 군견까지 데리고."


옛 말에 화무십일홍이라고,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데, 저 미남 배우들의 꽃은 30년이 넘도록 여전히 붉은 것을 보고 조화인가 했다.

덧없기는 권력의 짧은 유통기한이나 미모 전성기의 짧은 유통기한이나 통하는 구석이 있지 않나?

좀 빌려 씁시다.


그들에게는 멈춘 것 같은 시간이 나에게만 흘러서, 나이는 나만 꼬박꼬박 먹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느라 바빠서 가끔 보이는 그들의 영화에서 여전히 세월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간헐적으로 약 오르는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옹졸한 질투심에 응답이라도 주듯, 올해 두 편의 영화로 각각 톰 크루즈는 <디거>로, 브래드 피트는 <하트 오브 비스트>로 이번 달에 찾아왔다.

그런 게 사람 감정이 참 변덕스러운 것이, 나이 듦이 보이지 않을 때는 약이 오르더니, 정작 젊음을 내려놓은 전남친들의 모습은 반가우면서도 애잔했다.

대나무숲에서 외쳤던 소리가 30년쯤 되다 보니 소문이 났나, 톰 크루즈와 브레드 피트는 '나도 너와 함께 나이 먹고 있었다'는 대답을 주는 것 같다.


젊음을 연기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 혼자 그런 대답을 들었을 뿐, 그들의 입으로 직접 들은 것은 아니다.


전남친 번호는 지운 지 오래이니, 가끔 들려오는 소식으로 잘 지내고 있구나 하고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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