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가장 큰 절을 찾아가곤 했다. 여행을 가면 사찰은 꼭 한 번쯤 들러봐야 할 관광명소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지역의 유명한 절에 가보면 자연경관도 수려하고, 사찰의 건축도 멋져서 절에 가면 기분 전환이 되곤 했다. 내가 이해한 불교는 누군가 나를 구원해 주길 바라는 믿음이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의 삶과 마음을 고요히 되짚으며, 삶의 괴로움에서 걸어 나오는 길을 찾는 가르침이었다. 그래서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불교문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고,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알고 싶었다.
과거에 서울 안에서 템플스테이를 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종로구의 금선사라는 곳이었는데, 종로구에 있지만 마을버스에서 내린 뒤 산길을 한참 올라가야 닿을 수 있는 사찰이었다. 서울 안에 있는데도 속세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을 선명하게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회사 휴가를 내고 평일에 갔더니 그날 템플스테이에 온 사람은 나 혼자여서 호젓하게 있다 온 기억이 있다. 또 한 번은 마포에 있는 석불사였는데, 공양이 잘 나오기로 알려진 곳이었다. 과연 유명세답게 공양 때마다 수십 가지의 음식이 나와서 이렇게 먹어도 되나 송구스러울 정도였다.
두 곳에서의 템플스테이 경험은 모두 좋았다. 다만 1박 2일이라는 짧은 일정이다 보니 온전히 쉬기보다는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사찰 문화를 체험하는 데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지만, 절에서 오래 머물렀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긴 시간 동안 절에 머물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 일주일 정도는 머물러봐야 짧은 일정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낯선 곳에 가자마자 새로운 감정을 느끼거나 무언가를 깨닫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새로운 환경에 충분히 머물러 그곳의 생활이 익숙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긴장이 풀리고,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나 생각들이 조금씩 올라온다. 그래서 여행도 짧게 다녀오기보다는 한 곳에 오래 머물며,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내게 어떤 감정과 생각이 생기는지 천천히 살펴보는 것을 좋아한다. 오래 머무는 여행처럼 그렇게 템플스테이를 해보고 싶었다.
실업 후 집에 칩거하면서 방 안에서의 시간은 고요히 흘러갔고, 집 안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냈다고 느껴지자 이제 밖으로 나갈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커리어의 정점에서 제대로 미끄러진 후 이왕 이렇게 된 것 제대로 놀아보자고 마음먹고 나니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에서 나와 지내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정해진 일정도 없고 달성해야 할 목표도 없는 시간이 생기자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템플스테이가 생각났다. 지금이 바로 장기 템플스테이를 할 기회였다.
처음에는 템플스테이 휴식형으로 한 달 정도 체류해보려고 했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한 달 정도 절에서 지내며 자연 속에 파묻혀보면 머릿속이 맑아지고, 그러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도 조금은 떠오르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번에는 짧은 일정으로 사찰 문화를 체험하는 대신, 그곳의 생활에 충분히 머물러보고 싶었다.
절에서 한 달 정도 머물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는데, 1박 기준으로는 몇 만 원 선으로 저렴해 보여도 한 달을 계산하면 1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앞으로 이 휴식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도 알 수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100만 원이 넘는 숙박비는 부담스러웠다. 그때 지인이 과거 20대 때 절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며 숙박비를 내지 않고 일주일 정도 머무른 적이 있다고 했다. 아마 지금도 있을 테니 알아보라고 했다. 바로 AI에게 자원봉사를 하며 머물 수 있는 사찰을 찾아달라고 하니, 세 곳을 알려주었다.
한 곳은 강원도 평창에, 한 곳은 전남 보성에, 또 한 곳은 경북 봉화에 있었다. 서울에서만 지내왔기 때문에 모두 생소한 지명이었다. 세 곳 모두 자원봉사를 지원해 보니 이미 자원봉사자들이 있어 최소 한 달 후에나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집에서 칩거하는 시간도 충분히 가졌고, 이제 제대로 놀아보기로 마음먹은 만큼 템플스테이를 최대한 빨리 가고 싶었다. 하지만 세 곳 모두 바로 갈 수는 없었다. 당장 할 일도 없는데 몇 달씩 기다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갈 수 있는 곳을 고른 것이 바로 경북 봉화에 있는 축서사였다.
전국 각지의 유명한 절은 제법 안다고 생각했는데, 축서사는 처음 들어보는 절이었다. 대중교통으로 축서사에 가는 길을 찾아보니 쉽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영주나 풍기까지 간 뒤 다시 봉화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아니면 동서울터미널에서 봉화공용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었다. 봉화에 도착한 뒤에는 하루 세 번뿐인 시내버스를 타야 했다. 시내버스에서 내려서도 축서사까지 20~30분 정도 오르막길을 걸어야 했다.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실제로 운전을 하지는 않았다. 서울에서는 운전할 일이 없었고, 서울 밖으로 나갈 일도 많지 않았다. 자동차 없이 생활하는 데 큰 지장은 없었지만, 대중교통만으로 가기 어려운 곳에 가야 하거나, 직접 운전했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생길 때면 운전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부터 운전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이 어쩐지 인생의 손해처럼 느껴졌다. 운전을 하는 것은 언젠가는 해야 할 오래된 숙제 같았다.
그러다 2년 전 중고차를 사면서 운전을 시작했다. 차를 탈 일이 많지 않아 여전히 운전에는 자신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직접 차를 끌고 가보고 싶었다.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면 피로도를 생각해 대중교통을 선택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서툴더라도 직접 운전해보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는 길은 많이 막혀서 오히려 서행으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서울에서 경북 봉화까지 5시간이 걸렸는데, 이는 지금까지 내가 운전을 해본 거리 중에 가장 긴 거리였다. 경북 봉화까지 직접 운전해서 왔다는 사실이 뿌듯했고, 앞으로 나는 어디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화에 들어와서 축서사까지 가는 길에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고, 차도 거의 없었다. 축서사 방향으로 가는 차가 나 혼자 뿐이었던 것 같다. 오가는 사람도 없고, 차도 없어서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도 차도 거의 보이지 않는 낯선 길이었지만, 길 양옆의 과수원에는 빨갛게 익은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누군가 시간과 정성을 쏟아 가꾼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던 기분이 조금씩 사라졌다.
그렇게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 도착한 축서사는 생각보다 컸고, 예상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 한눈에 봐도 위엄이 느껴졌고, 속세와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이전에 가봤던 절들과는 달리 유난히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여러 절을 가봤지만, 축서사에서는 처음 느껴보는 분위기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 느낌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템플스테이 팀장님으로부터 자원봉사자가 묵는 숙소를 안내받고 다른 자원봉사자와 인사를 나누었다. 운전이 길어져 해가 저물 때쯤 도착했기 때문에 오늘은 쉬라고 해주셨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처음 마주했지만, 평소 다른 장소에 처음 갔을 때처럼 불안하지는 않았다. 처음이라 낯설고 조심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이곳에서는 괜찮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