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축서사 템플스테이 자원봉사자들은 새벽 예불에 반드시 참여해야 했다. 새벽 예불은 4시 30분에 시작되었다. 사찰에서의 밤은 일찍 시작됐고, 새벽 또한 일찍 찾아왔다. 저녁 7시가 넘으니 모든 방의 불이 꺼졌고, 사찰은 고요했다. 모두 잠든 듯했다. 장시간 운전으로 피곤했지만, 낯선 곳에 왔다는 긴장감 때문인지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다음 날의 일정을 생각하면 일찍 잠이 들어야 하는데 밤이 늦도록 잠이 도무지 오지 않았다. 평소 자정쯤 되어야 잠이 들고, 아침 7시쯤 일어나는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 없었다. 이곳에서 맞이할 새로운 하루가 어떨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괜히 마음이 긴장되었다.
새벽 예불을 가기 위해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지나 대웅전으로 걸어가는 길도 낯설었다. 깜깜했지만 저 멀리 환하게 불이 켜진 대법당을 보자 어둠으로 인한 긴장감이 눈녹듯이 사라졌다. 그곳에는 이미 스님들과 불자들이 와 있었다. 불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찰에서의 예절을 전혀 몰랐는데, 먼저 온 다른 자원봉사자 한 분이 불자여서 많은 것을 알려주셨다. 그분께는 자원봉사를 하는 동안에도 여러모로 도움을 받아서 감사했다.
새벽 일찍 목탁 소리와 종소리, 그리고 스님의 독경 소리를 들으니 비로소 절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템플스테이에 머무는 동안 매일 새벽 예불에 참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새벽 예불에 들어가면 세상의 시계가 멈춰 있는 듯한 고요한 느낌이 들었다. 이 절은 속세와 너무 떨어져서 대웅전에 있는 사람들이 지구에 남겨진 전부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예불이 끝난 뒤 108배가 이어졌지만, 처음 예불에 참여한 나는 그것이 108배인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들이 절하면 나도 절하고, 일어나면 나도 일어나며 눈치를 보다가 절을 너무 많이 한다 싶을 때서야 108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나도 모르게 108배를 하고 나니 새삼 뿌듯했다.
절에 도착한 후 이튿날은 음력 한 달의 시작을 맞아 마음을 새롭게 하는 초하루법회와 함께, 백중기도가 시작되는 입재가 있던 날이었다. 백중은 음력 7월 보름을 맞아 조상과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공덕을 회향하는 불교의 중요한 행사다. 그 때문인지 그날 절을 찾은 불자들이 유난히 많았다.
나는 그날 화장실의 휴지통을 비우는 임무를 맡았는데, 찾아온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돌아서면 휴지통이 꽉 차 있었다. 화장실은 입구에서 화장실용 슬리퍼를 갈아 신고 이용해야 하는데, 찾아온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화장실용 슬리퍼를 갈아 신지 않고 바로 들어가 이용하기도 했다. 겨우 정돈해놓은 화장실이 금세 어질러지는 것을 보니 괜히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이날 템플스테이를 담당하시는 스님께서 큰스님의 법문이 있으니 한번 들어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법회가 열리는 대웅전으로 가니 대웅전 안에는 들어갈 수도 없었고, 밖에 마련된 자리에도 빈자리가 없었다. 나는 원래 사람이 많은 곳에 있으면 긴장하는 편이라 불편했다. 법회에 들어갔지만,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는 상태다보니 계속 눈치를 보며 옆사람이 일어나면 나도 일어나고, 옆사람이 앉으면 나도 따라 앉기를 반복했다.
생각했던 템플스테이는 고요하고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편안하게 쉬는 것이었는데, 전혀 내 예상과 달라져서 조금 스트레스를 받았다. 대웅전에서 법회가 끝난 뒤 모두 보탑성전이라는 곳으로 이동해 백중 기도 입재가 시작됐다. 그곳은 물론 밖에도 빈자리가 없어서 백중 기도 입재는 동참하기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예불이나 법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소지품으로 자리를 맡아놓는 사람도 있었고,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질서가 잘 지켜지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휴지통을 비워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 화장실은 계속 붐볐다.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전용 실내화로 갈아 신고 들어갔다가 나오면, 밖에 벗어둔 절 이름이 적힌 템플스테이 참가자용 슬리퍼가 사라져 있기도 했다. 내가 벗어놓은 야외용 슬리퍼를 신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예 내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가버린 사람도 있었다. 신고 온 신발이 사라진 나는 어쩔 수 없이 화장실 전용 슬리퍼를 신고 방사로 갔다가 다른 슬리퍼를 신고 되돌아와 화장실 전용 슬리퍼를 가져다 놓기도 했다.
점심 공양을 가니 공양을 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었는데, 어떤 불자님이 내 앞에서 새치기를 해서 정말 화가 났다. 절에 온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질서가 지켜지지 않을 수 있나 싶었다. 사람이 적은 곳으로 오고 싶었는데, 사람이 많아 계속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니 피곤해졌다.
전날 잠을 설친 것 때문에 졸렸고, 템플스테이 자원봉사자가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템플스테이 방사를 청소하고, 매일 나오는 이불과 템플스테이 활동복을 세탁해 다시 개어놓는 일도 해야 했다. 처음 와서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불이나 활동복을 개어 놓을 때 이왕이면 기존에 정리되어 있던 방식대로 가지런하게 개어놓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처음이라 템플스테이 방사들의 이름도 익숙하지 않고 사찰 내 건물들의 위치도 익숙하지 않았다.
청소를 할 때도 제대로 해놓고 싶었지만, 놓치는 것들이 있어 스트레스를 받았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앞섰지만 처음이라 무엇을 어디까지 챙겨야 하는지도 몰랐다. 가지런하지 않게 놓인 옷걸이처럼 템플스테이 팀장님이나 스님의 눈에는 바로 보이는 것들이 내 눈에는 잘 띄지 않았다. 템플스테이 방사를 청소하는 일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청소기를 돌리고, 물건들을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들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는 얼룩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잘 해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스스로가 답답했다.
절에 와서 가장 먼저 느낀 변화는 음식이었다. 서울에서 칩거하던 때와는 생활 방식 자체가 달랐다. 절에 오니 서울에서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인 하나로마트도 차로 20분을 가야 했고, 서울에서 앱으로 손쉽게 시켜 먹던 배달음식도 이곳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다. 절이다 보니 치킨이나 피자 같은 음식도 없었다.
서울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 음식을 배달시켜 술과 함께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고는 했다. 하지만 절에서는 당연히 술을 구할 수도 없었다. TV도 없었고, 스마트폰은 각자의 숙소에서 잠시 사용하는 정도였다. 사찰 안에서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았고, 인터넷 속도도 도시보다 느려 자연스럽게 스마트폰과 거리가 멀어졌다.
그렇게 서울에서 당연하게 누리던 자극들이 하나둘 사라지자, 내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공양 시간이 되었다. 공양간의 음식은 모두 채식이었는데, 고기 반찬 하나 없이도 너무 맛있었다. 서울에서는 손이 잘 가지 않았을 나물 반찬이나 채소들이 유난히 맛있게 느껴졌다. 낯선 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사람들과 부딪치며 받았던 스트레스도 공양 시간에 새로운 음식을 맛보며 조금씩 잊을 수 있었다.
매번 어떤 음식이 나올지 모르는 공양 시간에는 이번에는 무엇이 나올까 기대하게 됐다. 그 기대가 절에서의 유일한 도파민이었다. 공양 시간마다 공양간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고, 나물 반찬들은 정말 맛있었다. 서울에서 사찰음식을 먹으려면 적지 않은 돈을 내야 하는 곳도 많은데, 절에 머무는 동안에는 사찰음식을 매일 먹을 수 있으니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갓 만든 채소 위주의 음식을 먹으니 건강에도 좋을 것 같았다. 어느새 나는 다음 공양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