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이렇게 된 것, 좀 놀아야겠다

칩거

by서윤재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언젠가는 내 글이 내가 있을 자리를 만들어주고 생계에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글을 오래 쓴다고 해서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글쓰기로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사실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글쓰기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고민하며, 글쓰기로 돈을 벌기를 기대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정리해 왔다.




그런데 실업자가 되고 나니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이 놈의 돈 안 되는 글쓰기를 관두었다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하면서, 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글쓰기에 생계를 강요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정리해 왔다. 온라인 게임이 있을 때는 나에게 아무것도 보답해주지 않아도 괜찮았던 글쓰기가, 이제는 내가 실업자가 되자 왠지 못마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아무리 시간과 노력을 쏟아도 좀처럼 보상이 돌아오지 않아 몇 번이고 내려놓았지만, 끝내 다시 붙잡을 수밖에 없었던 유일한 것이었다. 나는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글쓰기에 쏟 수도 있는데, 글쓰기는 나의 간절함에 좀처럼 화답해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온라인카지노에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내용의 바카라을 접하게 되었다.




바카라에서는 온라인카지노에서 다른 작가들과 팔로잉을 하고 서로 댓글을 달아주며 친분을 쌓는 것이 중요하므로 신뢰관계를 쌓아 팔로워를 늘리라고 했다. 그러면 바카라 출간 후 팔로워 중 10%는 바카라을 사준다는 것인데, 팔로워가 3000명일 경우 바카라이 300권이 팔린다는 것이다. 출간 후 바카라이 300권이 팔린다면, 작가가 받게 될 인세는 얼마인지 계산해 봤다. 신인 작가의 인세율을 8%로 계산하고, 바카라 가격을 18,000원으로 잡으면 인세는 432,000원을 받을 수 있다. 이 금액은 부업으로 보기에도 의미 있는 금액이 아니다. 그토록 사랑해서 언젠가는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글쓰기의 세계는 보상이 너무 적어 생계는커녕 취미로 이어가기에도 쉽지 않은 곳이었다.




출간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간절하게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구독자를 늘리고 관계를 쌓아가는 방식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바카라의 초반에는 구독자를 늘리는 방법에 집중하는 방식에 반감이 들었다. 글이 아니라 구독자 품앗이에 동참하여 눈길을 끌어보려는 요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카라에서는 단순히 구독자 수를 늘리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구독자 수를 근거로 바카라을 300권가량 팔 수 있다는 계산을 제시하며, 결국 출간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온라인카지노에서 이루어지는 구독자 품앗이는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일이 아니었다. 현실을 몰랐던 것은 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바카라을 쓴 작가의 글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글이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라, 자신의 돈과 시간을 들여 이어가는 취미로 남을 때 가장 자연스러운 분야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구독자 3,000명이라는 놀랄만한 성과를 통해 출간이라는 목표에 도달한다고 해서 그 이후에 부귀영화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출간 후에도 그 이후의 삶을 이어가야 하는데, 그 삶이 작가로서의 삶일지는 보장할 수 없다.




글쓰기 세계의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글을 꾸준히 쓰다 보면 언젠가는 발견되겠지라는 생각이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 온라인카지노에서는 작가의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온라인카지노에서 작가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오히려 경쟁이 더 치열한 공간처럼 보였다.




이렇게는 내 글이 있을 자리가 없겠다 싶어 다른 글쓰기에 기웃거려 보았다. 바로 웹소설이다. 웹소설을 쓰면 온라인카지노에 글을 쓰는 것보다는 수익화가 수월하지 않을까 싶어 웹소설 작법서를 보았다. 그 바카라에서는 웹소설 시장의 성장세를 이야기했다. 웹소설 시장은 2018년 이미 약 4,000억 원 규모로 성장했고, 국내 주요 단행본 출판사 25개사의 매출 합계를 넘어섰다고 한다.




지금은 어떤지 찾아보니 국내 웹소설 시장은 2022년 기준 1조 3,500억 원 규모로 급성장하여, 4,000억 원대에 정체된 전통 종이바카라 단행본 시장을 약 3배 차이로 압도하고 있다고 한다. 회사를 다니며 다양한 산업의 규모를 접해왔던 내게, 한 산업의 전체 규모가 4,000억 원이라는 사실은 작게 느껴졌다.




게다가 전체 4,000억 원대 단행본 시장에서 '에세이(수필)'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약 4%~5% 수준으로, 금액상으로는 약 160억~200억 원 규모에 불과하다. 그런데, 현재 등록된 온라인카지노 작가는 9만 5,000명을 넘어 10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이는 약 160억~200억 원 수준인 좁은 에세이 시장 규모에 비해 창작자 수가 매우 많은 것이다. 시장 규모를 160억 원으로 잡고 작가가 10만 명이라면, 단순 계산상 한 사람당 돌아가는 기댓값은 16만 원이다. 이렇게 단순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시장 규모에 비해 창작자 수가 매우 많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현실적으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극소수의 작가가 대부분의 판매를 만들어내는 시장에서, 바카라을 한 권 출간했다고 해서 의미 있는 인세를 받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온라인카지노 밖에도 수많은 에세이 작가들과 에세이 작가 지망생들이 존재한다. 여기에 또 놀라운 것은 2024년 기준 온라인카지노를 이용해 실제 바카라을 출간한 작가 수는 총 4,300여 명, 서적 수는 7,600여 권에 이른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만, 글만으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생계를 이어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워 보였다.




어쩌면 글쓰기를 사랑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해 가장 먹고살기 어려운 길을 택한 것 같은데, 사실 길을 택했다고 할 수도 없다. 나는 아직 이 세계의 초대장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대장을 받은 적도 없고, 파티 관계자들은 나의 존재를 아예 모른다. 그런데 파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참석해 있고, 파티 내에서도 주목을 받는 사람은 소수이다. 그러니까 눈에 띄어 파티의 초대장을 받더라도 그 안에서 또다시 눈에 띌 수 있게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파티가 열릴 때마다 파티의 주인공은 바뀐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는 파티에 초대되어 주인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꿈을 계속 꾸게 된다.




나는 왜 하필 글에 매료되어, 이렇게 돈과 시간을 갈아 넣고 있을까. 왜 글쓰기에 지독한 짝사랑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글을 한 자 한 자 쓸 때마다 집필비를 내야 했다면, 이렇게까지 글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감을 살 돈이 부담되어 그림 그리기는 취미로 하지도 않는 내게, 악기 살 돈이 부담되어 악기 연주는 꿈도 꾸지 않는 내게, 돈을 내지 않고도 내 생각을 펼쳐놓을 수 있는 글이라는 장르는 매혹적이었다. 집필비를 내지 않고도 글을 쓸 수 있고, 글을 잘 쓴다면 돈도 벌 수 있다는 가능성은 쉽게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글쓰기의 반짝임을 한 번 마주하고 나니, 어쩌면 나도 글쓰기로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쉽게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원래 글쓰기는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던 짝사랑이었다. 늘 적정한 거리를 두면서 이 지독한 짝사랑에 상처받지는 말자고 다짐했는데, 실업자가 되어버리니 오랫동안 짝사랑해 왔던 글쓰기한테 왜 내 사랑을 돌려주지 않느냐고 호소하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빅 매직』에서 창조성을 지키려면 창조성에게 생계를 바카라임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오히려 자신이 창조성의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생계활동을 통해 내 창조성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는 것도, 내 글이 나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는 것도 양쪽 모두 자신이 없다.




내 짝사랑의 대상이 늙지도, 추해지지도, 나를 실망시킬 일도 없는 글쓰기라는 사실이 괴롭다. 포기하려다가도 또다시 바라만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버틴다. 그러다 글쓰기가 끝내 내 사랑에는 응답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글을 쓰는 시간에 최저 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했어도 생계에 보탬이 되었을 텐데, 글쓰기는 내 시간을 무한정 가져가버리고 나에게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이제는 회사에 쓰던 시간마저 온전히 글쓰기에 쏟을 수 있게 되었는데도, 글쓰기는 내게 아무런 답을 해주지 않는다는 현실만 더욱 선명해졌다. 내가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 글을 써서 돈을 벌게 되는 기적 같은 일은 아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나는 수년 동안 글을 써왔지만, 내 글이 발견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글쓰기로 돈을 벌겠다는 기대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기로 했다.




글쓰기는 새로운 직업이 되기 어렵고, 그렇다고 새로운 직업에 진입하는 일도 쉽지 않다. 지금은 회사에 다시 다니는 것조차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두렵지만, 시간이 지나 경제적인 이유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면 결국 다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내 주변에도 번아웃으로 IT업계를 떠난 사람이나, 더는 이 일을 할 수 없다며 업계를 떠났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국 다시 IT업계로 돌아와 일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나 역시 결국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갑작스럽게 주어진 이 휴식을 최대한 즐기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휴식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면, 온라인 게임이 아니라 휴식을 선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 선택지에 휴식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휴식을 감히 선택해도 되는지 생각해 본 적조차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다음 단계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늘 정해져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에 진학했고, 대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곧바로 회사에 취업했다. 그다음에는 더 높은 연봉과 더 나은 온라인 게임을 위해 계단을 밟듯 이직을 해왔다. 그리고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실업으로 인해 휴식을 갖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음을 정해두지 않은 채 보내는 이 휴식이 결국 재취업으로 끝난다면, 그때까지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살아보고 싶다. 다음 목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마음속에만 숨겨왔던 해보고 싶었던 일의 목록을 하나씩 실행해보고 싶다. 이 휴식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여건이 허락하는 한 내가 충분하다고 느낄 때까지 마음껏 누려보고 싶다.




회사에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쓰는 일주일 휴가나 이직과 이직 사이에 급하게 떠나는 짧은 여행과는 다른 시간을 보내고 싶다. 언젠가 지금 이 시기를 돌아봤을 때, 그때 정말 원 없이 쉬고 놀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모두 해보고 싶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하지 못했던, 아주 오랫동안 마음에만 품어왔던 일들을 모두 해보고 나면, 나중에 회사에 다시 다니더라도 해보지 못한 일들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을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회사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템플스테이를 1박 2일이 아니라 좀 더 길게 해보고 싶었다. 서울을 벗어나 지방도시에 가서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었다. 리플 포레스트처럼 시골에 한두 달 정도 살아보고 싶었다. 문학 창작 레지던시에 머물며 창작에 온전히 집중해보고 싶었다.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바다를 마음껏 보고 싶었다. 에세이를 완결 지어보고 싶었고, 소설을 한편 완결하고 싶었다. 어쩌면 해외에 나가 좀 더 오래 체류를 해 볼 수도 있다. 살면서 언젠가 해봐야지 했던 것들을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지금 시점에 한번 정산하고 싶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좀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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