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번뇌를 내려놓으러 왔는데

템플스테이

by서윤재

새벽 네 시 십오 분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 새벽예불에 갔다가, 예불이 끝나고 방으로 돌아오면 곧바로 다시 잠이 들었다. 이 시간대에는 깨어 있어 본 적이 거의 없어서인지 방에 돌아와 눕기만 하면 금세 잠이 들었다. 다시 7시 30분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 템플스테이 청소를 시작하였다. 우선 템플스테이 건물의 마루를 쓸고, 뜰방을 빗자루질했다. 뜰방이란 한옥에서 문 앞, 처마 아래에 있는 마당보다 높은 평평한 공간이다.




그리고 10시 30분쯤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귀가하면 그들이 머물렀던 방사를 청소하고, 사용한 이불과 활동복을 세탁했다. 세탁이 끝나면 빨래를 널어두고, 마르면 접어서 넣어놓았다. 사이사이 차방도 청소하고, 쓰레기도 버리고, 방을 닦은 걸레까지 빨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갈 때가 많았다.




새벽예불이 끝나면 방으로 돌아와 곧바로 잠이 들었지만, 낮에도 계속 졸음이 쏟아졌다. 서울에서 지낼 때보다 몸을 많이 움직여서 그런지 피곤함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 생길 때마다 방으로 돌아와 알람을 맞춰놓고 틈틈이 잠을 잤다.




생각보다 체력적으로 많이 지쳤던 것인지, 아니면 서울에서부터 밀린 잠이 이제야 찾아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오랜만에 잠을 실컷 잔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리 자도 계속 졸음이 쏟아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 밀린 잠이 꽤 많이 쌓여 있었던 모양이다.




사찰에 방문객이 많으면 청소할 것이 많아 정신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스님들과 상주 근무자들 외에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시간이 찾아왔다. 어느 날은 그날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내니 점심때쯤 되었다. 그때 다른 자원봉사자가 읍내에 다이소가 있다며 차를 타고 나갔다 오자고 했다. 그래서 나가도 되는 줄 알았다.




그날은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스님께서 말씀하셨기에, 나는 그 시간을 자유시간으로 받아들였다. 템플스테이 활동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뒤 다른 자원봉사자와 외출하려던 순간, 스님께 딱 걸리고 혼이 났다. 자원봉사자가 다이소에 가자고 했든 아니든, 외출하기 전에 미리 스님이나 템플스테이 팀장님께 물어봤어야 했다. 경솔했다.




나는 템플스테이를 여행의 일부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낯선 지역에서 머무는 동안 자유시간이 생기면 주변을 둘러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스님께서는 템플스테이는 일부러 속세에서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라며 외출을 금지한다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내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날은 결국 외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참여하고 있는 이 템플스테이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템플스테이의 목적은 사찰에 머물며 일상의 번뇌를 내려놓고, 불교의 수행과 삶의 방식을 직접 경험하며 자신의 본래 마음을 돌보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중간에 외출해 쇼핑을 하거나 맛있는 것을 사 먹고 오면 안 되는 것이었다. 하마터면 떡볶이도 먹고 올 뻔했다.




이곳에 와서 자원봉사를 하기로 한 것도 나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절에서 나를 받아들이는 일 역시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이곳에 머물게 되었으면서도 다른 자원봉사자의 말을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외출하려 했다. 만약 그날 스님과 마주치지 않고 그대로 외출했다면, 시간이 지나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떳떳하지 못했을 것 같다. 당시에는 스님께 들킨 것이 창피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오히려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사건이 있었는데, 그날은 꽤 더웠고 할 일이 많은 하루였다. 할 일을 모두 끝마치자 공용 냉장고 냉동칸에 있던 팥빙수가 떠올랐다. 사실 그 팥빙수는 다른 자원봉사자가 특별히 좋아하는 스님께 받은 것이라고 했다. 얼핏 먹어도 된다고 들은 것도 같고, 그 순간에는 너무 힘들고 더워서 팥빙수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었다. 그래서 그것을 방으로 가져와 달콤하게 한입 먹었는데, 다른 자원봉사자가 방으로 찾아온 덕에 딱 걸렸다.




좋아하는 스님이 준 것인데 내가 먹어버렸다고 해서 택배로 12개를 주문해 갚았다. 택배로 물건을 주문하면 서울보다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이곳까지도 택배가 왔다. 그렇게 주문한 팥빙수를 냉동실에 넣어두고, 다른 자원봉사자에게 먹으라고 했다. 어쨌거나 팥빙수를 내가 허락 없이 먹어버린 탓에 한동안 좀 시달렸다.




공양간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다른 불자님이 양손에 팥빙수를 들고 오더니 다른 테이블에서 후식으로 먹겠다며 다른 사람들과 나눠 먹으려고 하셨다. 그 불자님은 "종무소에서 먹어도 된대~"라고 하며 같이 수행하는 도반분들과 먹으려 했는데, 어디서 많이 본 팥빙수였다. 이곳에 있는 유일한 팥빙수였다. 나와 다른 자원봉사자는 "안 돼요~ 그거 저희 거예요."라고 해버렸고, 다른 자원봉사자분이 종무소에 아이스크림을 사달라며 10만 원을 주는 것으로 그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팥빙수를 산 것은 나였고, 공용 냉장고에 넣은 것도 나였다. 하지만 그것을 가져가 자신의 도반과 나눠 먹은 도반님이 종무소에 10만 원을 아이스크림 값으로 갖다 준 것은 꽤나 과한 일이었다. 종무소 직원도 냉장고에 팥빙수가 있다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의도와 결과가 다르게 흘러갔고, 그 보살님들께 본의 아니게 아이스크림으로 눈치를 준 것 같아 괜히 일을 벌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종무소에 10만 원을 가져다 드린 것에 대해 그럴 일까지는 아니었는데 싶어 마음에 담아두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 겨우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그런 것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분들도 더운 여름에 하루 종일 참선을 하다가 달고 시원한 것이 먹고 싶어 냉장고에 있던 팥빙수를 발견했고, 종무소에 물어보기까지 해서 먹어도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원봉사를 온 사람의 사비로 다시 사놓은 팥빙수였던 것이다. 팥빙수를 사놓은 사람도, 먹은 사람도 모두 찝찝한 마음이 남았다.




여기에 한 가지 사건이 더 있었다. 날이 매우 더운 여름날에도 나는 방문이나 창문을 열어두지 않았다. 늘 조심스러워서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도록 꼭 닫아두고 다녔는데, 어느 날 내가 밖에 나갈 때 문이 열린 틈을 타 지나가시던 한 보살님께서 고개를 쭉 빼고 내 방을 들여다보셨다. 아무리 사찰 안이라고 해도 물건을 도난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늘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지냈는데, 남의 숙소를 들여다보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




매너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불쾌했다. 그래서 다른 자원봉사자분에게 어떤 보살님이 내 방을 들여다본 것이 너무 불쾌하다고 험담을 했다. 그리고 스님께 일렀다. 스님은 그 사람이 누구냐고, 그런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주겠다고 하셨다. 너무 화가 나서 나도 똑같이 그 보살님 방을 훔쳐볼까 싶기도 했다. 보살님이 내 방 안을 쳐다보던 그 순간, 왜 방 안을 쳐다보냐고, 왜 남의 방을 보냐고 넉살 좋게 말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모기였다. 여름이었고 산속의 사찰이다 보니 모기의 위세가 대단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면 엉덩이와 허벅지를 물렸고, 긴팔을 입고 잤을 때에는 손가락 마디마디에 잔뜩 물려 너무 간지러웠다. 물파스를 가져간 것이 다행이어서 모기에 물린 곳에 물파스를 잔뜩 바르고 청소를 하다 보면 스님이 어디 아프냐고, 근육통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양팔에 모기에 물린 자국이 가득했는데, 한 20번은 넘게 물린 것 같았다.




낮에는 계속 졸리고, 밤에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날씨는 덥고, 일은 아직 요령이 없어 하나하나 꼼꼼하게 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사찰을 찾은 다른 불자님들과도 자꾸 크고 작은 일이 생겼다. 여기에 모기까지 계속 물리니 짜증이 쌓여갔다.




마음의 평온을 기대하며 템플스테이에 왔지만, 마음은 좀처럼 편해지지 않았다. 일상의 번뇌를 내려놓으러 왔는데, 사찰에 와서도 사람들과 부딪히며 새로운 번뇌가 생겼다. 팥빙수 사건 이후로는 다른 불자님들과 엮이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혹시라도 또 다른 오해가 생길까 봐 행동과 말을 더욱 조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