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회사를 관둘 것이긴 했지만

칩거

by서윤재

장래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는 것이 좋다니까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대학수학시험 점수에 맞 대학교에 진학하였다. 전문직이 될 수 있는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학과에 갈 정도로 성적도 좋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꿈은 스스로 돈을 버는 어른이 되는 것이었고,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서는 회사에 다니는 방법밖에는 알지 못했다.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 내가 뭘 잘하는지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남들이 하는 만큼 따라가는 시늉이라도 하다 보면 뭐라도 되어 있겠지 싶었다. 대학생 때에도 뭐라도 해봤었어야 했는데, 대학생 때는 그저 높은 토익 점수를 취득하는 것이 슬롯에 출입할 수 있는 자격의 전부라고 믿었다. 간신히 900점대의 토익점수를 만들고 나서 취업한 온라인 게임이었는데, 입사를 하고보니 토익점수가 없는 사람도 입사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취업을 했는데, 첫 온라인 게임에서 맡은 첫번째 직무를 14년째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도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때도 문과생의 취업은 쉽지 않았다. 공과대학을 제외하면 취업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모두가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나 또한 여러 온라인 게임의 인턴과 계약직을 전전하였고, 처음으로 얻은 정규직 일자리가 한 금융회사의 IT개발 직군이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영지원쪽으로 빠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업무 배치를 받고 보니 IT개발부서였다. 그래서 회사생활이 쉽지 않았다. 요즘은 경력을 쌓은 뒤 바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채용하는 시대이지만, 그 당시에는 신입사원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기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뽑아서 잘 가르쳐 쓰자는 문화가 있었다.




덕분에 나는 실무를 익히면서 주변의 선배들에게 코딩을 배웠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배웠다. 업무의 난이도도 높았고, 프로그래밍을 몸으로 부딪쳐가며 배워야 했기에 스트레스도 컸다. 나는 내가 맞게 하는지 늘 불안했고, 자신이 없었다. 다들 전공을 하거나 실무 경험을 쌓아서 취업을 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로 취업했으니, 그에 따른 대가는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업무 담당자로서 내 업무를 가장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데, 코딩에 대한 자신이 없는 상태에서 업무를 수행하다보니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다 내 잘못같아서 불안하고, 두려웠다. 업무와 나를 동일시하던 시기였다. 첫 온라인 게임에 취업하고 나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불안하고 두려워하는지 알아가기도 전에 일에 내 삶의 대부분을 내어주었다. 나 자신을 알아갈 틈도 없이 일에 나를 맞추다 보니 어느 순간 업무와 나를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퇴근 후와 주말에도 업무생각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야근도 많았다. 24시간 업무가 돌아가는데, 새벽에 문제가 생기면 연락이 왔다. 그래서 중요한 작업이 돌아가는 밤에는 문제가 생겨 연락이 올까봐 불안했다. 조직문화도 보수적인 곳이었지만, 어차피 나는 내 생각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일을 시키면 거절하지 않고 무조건 받아서 했다. 내가 능력이 부족하니 일을 거절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과연 1인분을 하고 있는지 늘 의심했다.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다. 그렇게 버티던 나날이었고, 회사가 전부인 나날이었다.




취업이 되고 나면 그때부터 내 인생이 시작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취업을 하고 나니, 그 삶이 내 인생이라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았다. 회사 일을 잘하고 좋은 인사평가를 받는 것, 회사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다. 내가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다.




진급이 누락되었던 당시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일은 내 전부였는데, 여기에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이 억울했다. 당시에는 내가 일로 인정받고 싶어서 이렇게나 많은 업무를 해냈는데,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많이 슬펐고 화가 많이 났다. 많이 무너져내렸던 시기였다. 그때의 나는 모든 감정을 죽여놓은 상태였고, 회사 일이 전부였던 시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진급 누락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내가 근무했던 부서가 당시 회사에서 가장 큰 매출을 발생시키던 부서였고, 그래서 부서에 인원이 많았다. 내가 입사했을 당시에 부서에 진급대상자가 많았는데, 그 중에는 진급누락자들도 많았다. 내가 배치되었던 부서는 8년차 과장이라던지, 8년차 대리가 있었을 정도로 진급지옥이었던 곳이었다. 그런 곳이었으니 내 진급 역시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선배들도 진급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신입사원인 나만 좋은 평가를 받아 진급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팀장님을 많이 원망했었는데, 나도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원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분노와 미움의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위험했다.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그곳을 떠나는 것이 나에게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네 차례 이직을 하면서 비슷한 업무를 해왔다. 이직할 때마다 더 높은 연봉과 슬롯적으로 인정받는 회사를 선택했다. 계단을 한 칸씩 올라가듯 옮겨 다녔고, 마지막에는 결국 내가 오랫동안 원하던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흐른 뒤, 한 자리를 지킨 입사 동기들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들은 이제 한 조직 안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직을 통해 얻은 것만큼이나, 이직을 위해 포기하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이직을 하면서 잃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잃기도 했다. 신입사원 시절 함께했던 동기들과의 관계도 그랬고, 신입사원이기에 받을 수 있었던 무한한 신뢰도 그랬다. 이직을 하고 나니 그런 것들은 더 이상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때로는 슬프기도 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한 온라인 게임을 오래 다닌다면 굳이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그 조직의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를 버리고 이직을 선택했고, 새로운 온라인 게임에서는 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증명해야 했다. 업무를 선택할 여지도 많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하기 어렵거나 기피하는 일을 맡아야 할 때도 많았다. 경력직으로 이직한 사람이라면 감수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는 나의 오랜 꿈이었다. 슬롯초년생 시절부터 입사를 꿈꿔왔던 회사였다. 누구에게 말하더라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회사였고, 내가 그 회사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이 몹시 기뻤다. 오랜 경력 끝에 마침내 그곳에 들어갔고, 40대의 나이에는 더 이상 이직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곳이 내 인생의 마지막 회사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경력을 쌓은 지 13년 만에 이룬 이직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곳에서 일하기 시작하니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기술을 익히면서 내가 가진 능력을 증명하는 일은 어려웠다. 회사에서 기대하는 역할을 내가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고,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일에서조차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내가 잘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내가 잘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고는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갑작스러워서 충격이 오래 가지도 않았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후련하고 시원했다. 언젠가 회사를 그만두면 어떨까 하는 가정을 수만 번쯤 하면서 살아왔는데, 자의로는 이루지 못할 것이었다. 그런데 퇴출되고 나니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다니지 않게 되었다. 회사에 다니지 않는 삶을 수십 번도 더 생각해봤지만, 그 마지막 모습이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곳에서만 갑자기 일이 어긋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같은 직무로 네 번 이직했고, 네번째 회사에 들어갔을 때부터 내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예전처럼 내가 일을 잘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고, 조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일을 잘하지 못하더라도 회사에 다니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일을 잘하고 있다는 감각이 중요했다. 나는 내가 회사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인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통솔하고 이끄는 역할에는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혼자 문제를 파고들고 해결바카라을 찾아가는 개발 업무는 나에게 잘 맞았다. 사람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조율하기보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력이 쌓이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회사에서 요구하는 역할은 달라졌다. 혼자 일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사람을 이끌고 관계를 조율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내가 가진 성향과 회사에서 요구하는 역할 사이의 간극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해고를 당했을 때 예상보다 빨리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원해서 회사를 떠난 것은 아니었고, 오랫동안 꿈꿔온 회사에서 밀려났다는 사실은 아팠다. 하지만 내가 왜 그곳에서 어려움을 겪었는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괴로웠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원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실업자가 되었다. 회사와 집만 오가며 살아왔던 나에게 회사가 사라지자, 갈 곳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집에 머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