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은 이해가 아니라 착각일지도 모른다
가끔 아주 가까운 사람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할 때가 있다. 별것 아닌 행동일 수도 있다.
먼저 연락하던 사람이 연락하지 않는다거나, 내가 보낸 이야기에 예전과 달리 짧게 대답한다거나,
늘 나를 이해해 주던 사람이 어느 날은 조금 차갑게 말한다거나.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해진다.
“왜 저러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하다 보면 질문이 달라진다.
“내가 뭘 잘못했나?”
이상한 일이다. 상대방이 평소와 다르게 행동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그 이유를 나에게서 찾고 있다.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은 단순히 자주 보는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함께 보낸 시간이 많고, 서로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만들어 놓는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고, 이럴 때 이렇게 말할 거라고.
내가 힘들다고 하면 이렇게 반응해 주고, 서운한 일이 있으면 적어도 이 정도는 알아줄 거라고.
그것이 꼭 큰 기대는 아닐 수도 있다.
그저,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하나의 믿음에 가까울 때가 많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이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행동한다. 그럼 그 행동 하나가 서운한 것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의 모습과 눈앞에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이 달라진다.
그 사실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낯선 사람이 나에게 무심하게 대했다고 생각해 보자.
조금 기분이 나쁠 수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오래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 저런 사람이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지나간다.
그 사람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반대로,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하면 다르다.
‘저 사람이 원래 저런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곧이어
‘내가 이 사람을 잘못 알고 있었나?’라는 생각까지 이어진다.
때로는 내가 뭔가 잘못했나? 까지 간다.
왜 우리는 가까운 사람의 행동 앞에서 이렇게까지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걸까.
어쩌면 그 사람의 행동이 단순한 행동 하나로 보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행동 하나가 그동안 쌓아온 관계 전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람에게는 수많은 기억이 쌓여 있다.
같이 웃었던 날도 있고, 서로 힘들었던 날도 있다.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었던 순간도 있고,
정말 중요한 순간에 서로 곁에 있었던 기억도 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서 우리는 관계를 하나의 이야기처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이런 사이야.’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이 그 이야기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한다.
그러면 조금 당황스럽다. 그 사람이 변한 것인지, 내가 그 사람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놓친 무언가가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먼저 내가 놓친 부분부터 찾아본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이유를 묻기 전에 내 안에서 이유를 찾는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관계를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가까운 사람에게 서운하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말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굳이 서운할 필요도 없고, 낯선 사람이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이유를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상하게 계속 생각난다.
서운함이라는 감정에는 어쩌면 이런 질문들이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서운함은 단순히 화가 나는 감정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화가 나면 상대방을 탓할 수 있다.
그런데 서운함은 이상하게 그보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온다.
‘나는 우리 사이가 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상처의 크기보다도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때문에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무심하게 던진 말은 금방 잊어버릴 수 있다.
그런데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이 무심코 한 말은 며칠이 지나도 생각날 때가 있다.
그 말 자체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특별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모습이 있었고, 믿고 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행동 하나를 그동안의 관계와 비교하게 된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우리가 이렇게까지 가까웠는데.’
그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갈 때부터 서운함은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의문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서운함이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상대방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일 수도 있다.
그날 유난히 피곤했을 수도 있고, 다른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을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 행동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작은 행동에 의미를 붙인다.
그래서 우리가 느끼는 서운함에는 상대방의 행동 자체보다 예상했던 모습과의 차이에서 생기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이 이해한 모습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어쩌면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의 모습을 조금씩 다시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계속 변한다.
나도 변하고, 내가 좋아했던 사람도 변하고, 오랫동안 함께했던 사람도 변한다.
예전에는 중요했던 것이 지금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당연했던 행동이 지금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그 변화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앞으로도 내가 아는 모습 그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금 달라진 모습을 발견하면 상대방의 변화를 받아들이기보다 먼저 관계를 의심한다.
그리고 때로는 나를 의심한다.
하지만, 모든 변화가 내 잘못 때문도 아니고, 모든 거리감을 내가 만든 것도 아니다.
때로는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 사이의 거리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마음이 변할 수도 있고, 삶이 달라질 수도 있고, 그저 서로가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다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는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일수록 그 관계가 계속될 것이라는 작은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이 깨질 때 서운함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요즘 가까운 사람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 때 조금 천천히 생각해보려고 한다.
정말 그 사람이 나에게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 사람에게 기대하고 있던 모습과 지금이 달라진 것인지.
혹은 정말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혼자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고 한다.
혼자 만들어낸 수많은 생각은 관계를 더욱더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상대방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묻지 않고 짐작한다.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묻기보다 내가 그 사람이라면 왜 그랬을지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마음까지 알 수는 없다.
함께한 시간이 많다는 것과 그 사람을 전부 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니까.
어쩌면 가까운 사람에게 서운한 이유는 그 사람이 나에게 특별히 잘못해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그 사람에게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많은 기억을 함께했고, 많은 모습을 보았고, 그에 대한
하나의 믿음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믿음에서 조금 벗어난 행동을 마주하면 우리는 상대방보다 먼저 나를 돌아본다.
‘내가 뭘 잘못했나?’
하지만 꼭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도 그럴게, 세상이 변화하는 것처럼 우리의 관계 역시 계속
변화하고 있으니까.
어쩌면 오래된 관계를 지키는 것은 상대방이 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 서로 달라진 모습을 조금씩 다시 알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끔 서운할 수도 있다.
그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일 테니까.
다만 서운함이 찾아왔을 때 곧바로 나를 탓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상대방이 달라진 것일 수도 있고, 내가 달라진 것일 수도 있고,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그저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진 것일 수도 있으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함께한 시간만큼 많은 이야기가 쌓인다. 그리고 그 시간은 때때로 상대방을 이해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내가 그 사람을 너무 잘 안다고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일수록 조금 더 물어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질문 하나가 혼자가 만들어낸 서운함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려줄 수도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