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끝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까

결말은 그대로인데, 나는 달라졌다

by달꼼

지금까지 몇 편의 이야기를 적었다.

가까운 사람에 대해, 그리고 지나간 관계에 대해, 그때 나누었던 말과 하지 못했던 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이 생겼다.

우리는 왜 끝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까.

이미 한 번 끝난 관계를 다시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오래전에 봤던 영화나 드라마를 다시 보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 읽었던 바카라을 다시 읽기도 하고, 이미 들었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또 들어주기도 한다.

결말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다시 본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헤어진 사람이 다시 만난다는 건, 이미 정해진 결말의 드라마나 영화를 다시 보는 것과 같아.”

처음에는 그 말이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한 번 헤어진 두 사람이 다시 만난다고 해서 과거의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왜 헤어졌는지 알고 있고, 어떤 이유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는지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미 결말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조금 다른 것 같다.

헤어진 사람이 다시 만나는 것은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드라마를 다시 보는 것과 꼭 같지는 않은 것 같다.

어쩌면 끝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끝났다고 생각했던 이야기에 다른 결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는 것과 조금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다시 보는 것도 비슷하다.

결말을 알고 있다.

누가 떠나는지도 알고, 누가 결국 사랑하게 되는지도 알고, 마지막 장면에서 어떤 음악이 나오는지도 알면서도 다시 보게 된다.


'정말 결말을 몰라서일까?'


오히려 우리는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시 보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기를 바라면서.

물론 영화는 달라지지 않는다.

주인공이 같은 선택을 하고,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같은 결말에 도착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두 번째로 볼 때는 처음과 다른 것들이 보인다.


처음에는 듣지 못했던 대사가 들리고, 별것 아니었던 장면이 마음에 남고, 답답했던 행동이 이해되기도 한다.

이야기는 그대로인데 내가 달라진 것이다.


처음 그 영화를 봤을 때의 나는 없고, 몇 년 뒤 다시 보는 나는 그때와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같은 장면을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야기를 다시 보는 것이 아니라 달라진 내가 그 이야기를 다시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관계도 비슷하지 않을까.

헤어진 사람이 다시 만나는 순간 과거의 관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때의 말도 있었고, 상처도 있었고, 서로에게 하지 못했던 말도 남아 있다.

그리고, 다시 만났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처음부터 시작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 사이에 시간이 있었고, 그동안 사람은 변한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은 이해할 수도 있고, 그때는 너무 중요했던 일이 지금은 별것 아닌 일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그때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말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마음에 남기도 한다.


그렇게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니다. 같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각자의 시간을 지나온 사람이다.

그래서 재회는 단순히 같은 이야기를 다시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람들이 다른 시간을 지나 다시 만나는 새로운 장면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번에는 반드시 다른 결말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만나도 결국 같은 이유로 헤어질 수 있다.

예전의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서로가 더 달라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은 때때로 이 한 문장 때문에 이미 끝난 이야기를 다시 꺼내본다. 어쩌면 이것은 미련일 수도 있지만, 꼭 그렇게만 바라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앞선 이야기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선택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조금만 다르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그때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런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이미 지나간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끔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아마 과거를 바꾸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때의 보지 못했던 것을 지금의 내가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그마한 기대감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나간 이야기를 다시 보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일과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바라보는 위치는 바꿀 수 있으니까. 같은 이야기도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처음에는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했던 일이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일이었을 수 있다.

상대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나 역시 상대를 이해하지 못했던 순간이었을 수도 있다.


그때는 그 사람을 미워했는데 지금은 그 사람의 선택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과거의 결말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헤어졌다면 헤어진 것이고, 상처를 받았다면 받은 것이다.

이미 한 말은 없던 일이 되지 않고, 하지 못한 말이 갑자기 전달되는 것도 아니다.


결말은 그대로다. 다만, 그 결말을 바라보는 내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끝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고 싶은 이유는 결말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때는 보지 못했던 장면을 다시 보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을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일 수도 있다.


혹은 정말 다른 결말이 가능한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일 수도 있다. 사람은 결과를 알고 있는 이야기에도 다시 돌아간다.


좋아하는 영화를 다시 보고,
익숙한 노래를 다시 듣고,
오래된 사진을 다시 보고,

한때 가까웠던 사람을 다시 만나기도 한다.


아마 그 이야기들이 달라졌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 이야기를 바라보는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를 다시 보는 일은 꼭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그 사람을 그렇게 바라봤는지를 조금 늦게 이해했을 뿐이다.


그러다 보면 어떤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다시 이어질 수도 있고, 한때 좋아했던 영화가 다시 좋아질 수도 있고, 오래전 미워했던 사람을 이제는 조금 다르게 기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다시 시작될 필요는 없다.

어떤 관계는 다시 만나지 않는 것이 맞을 수도 있고, 어떤 영화는 다시 봐도 결국 같은 결말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다시 시작하는 것이 반드시 옳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사람에게는 끝난 이야기를 다시 바라보고 싶은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아주 잠깐 다른 결말을 상상해 본다.


“이번에는 달랐으면 좋겠다.”


그 마음이 꼭 현실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이미 끝난 영화의 결말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영화를 다시 본 내가 달라질 수는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과거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수는 없어도 그 이야기를 바라보는 방식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때는 슬펐던 장면이 이제는 담담해질 수도 있고,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이 이해될 수도 있다.


그리고 가끔은 그때의 내가 할 수 없었던 선택을 지금의 나는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 끝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같은 곳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 같은 이야기를 다른 위치에서 다시 바라보는 일.


그때와 같은 결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번에는 다른 장면이 보이는 일.

혹은 정말 다른 결말이 가능할지 한 번쯤 다시 확인해 보는 일.

그것뿐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끝난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보는 이유는 그 이야기가 끝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끝났기 때문에 다시 볼 수 있고, 끝났기 때문에 이제는 조금 떨어져 바라볼 수 있고, 끝났기 때문에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는 끝난 뒤에야 비로소 이해되고, 가끔은 다시 시작해보고 싶어진다.

이번에는 다른 결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꼭 다른 결말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 이야기를 다시 바라보는 내가 달라졌다면 이미 이전과는 다른 이야기가 되었으니까.

결말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그 이야기를 바라보는 위치는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끝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 이유는 이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번에는 그 이야기를 조금 다른 곳에서 바라보고 싶어서.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서.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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