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은 말은 어디로 가는가, 기억은 때때로 열린 결말을 좋아한다.
지금까지 네 편의 이야기를 적어왔다.
이미 눈치챘을 수도 있지만, 이야기의 주제에는 나름의 연결점이 있었다.
가까운 사람에서 시작해 지나간 관계, 지나간 관계에서 지나간 말로.
그리고 이번에는 그중에서도 하지 못한 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리는 이상하게도 이미 끝난 대화보다 하지 않은 말을 더 오래 기억할 때가 있다.
“그때 그 말을 왜 했을까?”라는 후회도 오래 남지만, 이상하게 더 자주 떠오르는 건 이런 말이다.
“그때 그냥 말할걸.”
누군가를 떠나보낸 뒤에도 그렇다.
“이 말 꼭 해주고 싶었는데, 못해서 아쉽네.”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고맙다는 말일 수도 있고, 미안하다는 말일 수도 있고, 사랑한다는 말일 수도 있다.
혹은 별것 아닌 말일 수도 있다.
그때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에 남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말하지 않았고, 듣지 못했고, 그래서 어떤 결과도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말을 기억한다.
왜 그럴까.
어쩌면 말하지 않은 것은 실패한 선택이 아니라, 끝나지 않은 선택으로 남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말을 했다면 이야기는 어떻게든 끝이 난다.
상대가 웃었을 수도 있고, 화를 냈을 수도 있고, 생각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원했던 대답을 들었을 수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었을 수도 있다.
어떤 결과였든 결말이 생기고, 시간이 지나면 그 결말을 받아들이게 된다.
끝난 일이 모두 잊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일은 평생 기억에 남는다.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일처럼 쉽게 잊을 수 없는 일도 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없는 하루를 상상하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달라진다.
슬픔이 사라진 다기보다 그 사람이 없는 현실에 적응하게 된다.
처음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오르던 사람이 어느 순간 하루에 한 번, 며칠에 한 번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어떤 노래를 듣거나, 익숙한 음식을 보거나, 예전에 함께 갔던 장소를 지나면서 다시 생각난다.
기억은 남아 있지만 처음과 같은 방식으로 나를 흔들지는 않는다.
끝이 있다는 것은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 기억이 내 삶의 한 부분이 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끝난 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과거가 된다.
하지만 끝나지 않은 일은 이상하게 현재형으로 남는다. 하지 않은 말이 그렇다.
“그때 내가 말했다면 어땠을까.”
이 질문에는 답이 없다.
말했더라면 관계가 달라졌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상대가 웃었을 수도 있고, 당황했을 수도 있고,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수도 있다. 우리는 알 수 없다.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말은 기억 속에서 계속 다른 결말을 가질 수 있다.
어느 쪽도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하지 않은 말은 묘하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성이 남아 있다.
그래서 흔히 ‘열린 결말’이라고 부른다. 열린 결말이라고 하면 왠지 좋은 것처럼 들린다.
아직 가능성이 있으니까. 하지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우리가 그 이야기를 놓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끝난 이야기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가끔은 이미 오래전 끝난 관계를 떠올리면서도 그때 하지 못한 말을 생각한다.
“그때 미안하다고 할걸.”
“사실 서운했다고 말할걸.”
“잘 지내냐고 물어볼걸.”
“고맙다고 한 번 더 말할걸.”
그 말을 지금 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어쩌면 조금 다른 이유도 있을지 모른다.
그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끝나지 않은 상태를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억이라는 것은 이상하게도 모든 것을 똑같이 붙잡고 있지 않는다.
끝난 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모양이 바뀐다.
처음에는 생생했던 장면이 희미해지고, 강했던 감정은 조금씩 옅어진다. 그때의 나를 이해할 수도 있게 되고,
상대의 행동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게 된다. 그렇게 하나의 사건은 점점 과거가 된다.
하지 않은 말은 다르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기에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자체는 그대로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말을 계속 꺼내볼 수 있다.
그때 말했다면 어땠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은 너무 늦었을까.
그 사람에게 그 말을 전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어쩌면 우리는 모든 이야기에 결말을 내리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이야기는 끝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대로 두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소중했던 사람과의 이야기는 더욱 그렇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인정할 때, 가능성도 함께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 한편에 작은 빈자리를 남겨둔다.
빈자리를 남겨두면 이야기는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기억을 붙잡는 한 가지 방법인지도 모른다.
잊고 싶지 않은 사람이나 관계를 매일 생각해야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과 관련된 어떤 말을 마음속에 남겨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전하지 못한 말 하나가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을 계속 현재형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지 않은 말을 모두 아름답게 볼 필요는 없다.
어떤 말은 정말 했어야 했을 수도 있다.
사과했어야 했고, 고마웠다고 말했어야 했고, 붙잡아야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나간 일을 다시 선택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때의 나를 계속 탓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때의 나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때의 상황 안에서 선택한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바라보며
“그냥 말하면 됐잖아.”
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그때는 그것이 어려웠을 테니까.
말하지 않은 것도 결국 하나의 선택이었다. 다만 그 선택은 그 순간에 끝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은 마음속에 남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우리는 가끔 그 말을 다시 꺼내본다.
어쩌면 우리가 하지 않은 말을 오래 기억하는 이유는 그 말을 후회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 말에는 아직 결말이 없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를 알 수 없고,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다른 결말을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열린 결말은 꼭 희망일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열린 결말은 가능성, 미련이기도 하고, 희망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기억을 붙잡아두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람은 모든 이야기를 완벽하게 끝내고 살아갈 수는 없다.
어떤 관계는 설명 없이 끝나고, 어떤 질문은 대답을 듣지 못한 채 남고, 어떤 말은 끝내 전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삶에는 결말을 내릴 수 없는 이야기들도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기억하는 방식도 결국 선택이니까.
끝난 일은 끝난 대로 기억하고, 끝내지 못한 일은 끝내지 못한 대로 기억하는 것.
그리고 언젠가 그 기억을 떠올렸을 때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 대신 “그때의 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겠지.”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 역시 하나의 결말일 수 있다.
결국 하지 않은 말은 우리에게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남는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 이야기에 결말을 내리지 않은 채 살아가는 법도 배우는 것 같다.
그때 하지 못했던 말이 언젠가 완전히 잊히는 날이 올 수도 있고, 평생 마음 한구석에 남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괜찮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이 아직 기억 속에 있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그 말이 있다는 것은 그때의 내가 누군가를 생각했고, 무언가를 느꼈고, 말하고 싶었다는 뜻이니까.
어쩌면 우리는 모든 이야기를 끝내기 위해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끝내지 못한 이야기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문득 오래 전의 누군가가 떠오르면 하지 못했던 말을 한 번쯤 마음속으로 건네본다.
그리고 이번에는 굳이 결말을 만들지 않는다. 그 말은 말하지 않은 채로도 이미 기억 속에 남아 있으니까.
말하지 않은 것은 실패한 선택이 아니라, 끝나지 않은 선택으로 남는다.
우리는 그 열린 결말을 품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 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