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답장을 미룰까

누군가에게 확신을 얻고 싶어 하면서, 정작 우리는 왜 확신을 미룰까

by달꼼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선택한다.


무엇을 먹을지처럼 아주 사소한 것부터, 어떤 일을 할지, 누구와 함께 할지처럼 삶의 방향을 바꾸는 선택까지.

그리고 선택의 순간마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누군가에게 묻는다.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이미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답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답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라는 확신을 얻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지난 글에서 나는 아는 길에도 내비게이션을 켜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이미 여러 번 지나간 길이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목적지를 검색하고 내비게이션을 켠다.

더 빠른 길을 찾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한 변화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화면 속 작은 화살표가 내가 알고 있는 방향과 같은 곳을 가리킬 때, 이상하게 마음이 놓인다.


‘그래, 이 길이 맞아.’

누군가에게 그렇게 확인받는 것처럼.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순간에 확신을 필요로 한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확신.

내 선택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라는 확신.

그리고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적어도 내가 생각한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확신.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묻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다.

누군가의 동의는 때때로 우리의 선택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선택하려는 길에 조금 더 명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구나.’

‘이 선택이 그렇게 이상한 것만은 아니겠구나.’


누군가의 짧은 동의 하나가, 혼자서는 쉽게 흔들리던 생각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우리는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확신을 얻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누군가에게는 쉽게 확신을 주지 않는다.


휴대폰에 알림이 뜬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메시지가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알림 창에 이름이 보이고, 미리 보기로 메시지의 내용까지 어느 정도 읽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메시지를 못 본 것도 아니다.

답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생각한다.


‘조금 있다가 답해야지.’

대부분은 귀찮아서일 수도 있고, 지금 당장 바빠서 일 수도 있다.

회의를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있는 순간이라고 해도, 당장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조금 뒤에 답장하면 된다.


문제는 그 ‘조금 뒤’가 생각보다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분이 지나고, 몇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에는 하루가 지나버린다.

처음에는 몇 초면 답할 수 있었던 메시지였다.


짧은 답장 하나를 보내는 데는 몇 초면 충분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게 그 몇 초를 미룬다.

그리고 조금 뒤에 하겠다는 생각은, 어느새 내일이 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가 조금 늦게 오면 버튼을 다시 누르고, 신호등 앞에서 몇 초만 길어져도 휴대폰을 꺼내 든다.

음식이 예상보다 늦게 나오면 언제 나오는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내가 보낸 메시지에 답장이 늦어지면 휴대폰을 한 번 더 확인한다.



분명 읽었는데, 왜 답장이 없을까?


우리는 몇 초를 기다리는 것도 어려워하면서,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몇 초의 답장은 쉽게 미룬다.

내가 기다리는 시간은 길게 느껴지고,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는 시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마 답장을 미루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단순히 알림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작은 숫자, 나중에 답하면 되는 메시지 하나.

하지만, 메시지를 보낸 사람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일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연락은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다. 대부분의 연락은 아주 사소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 너무 힘들었다.”

“진짜 저 사람 너무 싫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오늘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


누군가에게 연락한다고 해서 언제나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해결바카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늘 힘들었다고 말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내 하루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싫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 앞에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말하고 싶은 날이 있다.

누군가에게 오늘의 나를 조금 나누고 싶은 날.

그래서 우리는 연락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그런 사소한 이야기조차 아무에게나 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하면서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말만 남긴다.


같은 연락처에 저장되어 있어도, 모든 사람에게 같은 이야기를 건네지는 않는다.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도 우리는 잠시 생각한다.


이 사람에게 이야기해도 괜찮은지, 힘들다고 하면 귀찮아하지 않을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들어줄지.

내가 오늘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말했을 때, 굳이 이유를 묻지 않고 ‘그랬구나’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그런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 연락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라는 확신.

내가 조금 힘들다고 말했을 때, 그것을 가볍게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그리고, 내가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해도 귀찮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그 확신 속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위로를 얻는다.

대단한 위로가 아니어도 괜찮다.


“진짜?”

“그래서 어떻게 됐어?”

“아, 힘들었겠다.”


짧은 말 몇 마디면 충분할 때가 있다.

누군가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아도,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에게 연락하는 이유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내가 힘들다고 말했을 때 잠시 내 이야기에 머물러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잠깐이라도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우리는 왜 이렇게 누군가에게 확신을 얻고 싶어 하면서,

정작 누군가가 나에게 건넨 그 작은 확신에는 답장을 미루는 걸까.


어쩌면 답장을 미루는 것이 상대방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역시 답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알림을 다시 확인한다.

메시지를 읽었다는 것도 기억한다.

그리고 답장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그런데도 답장을 하지 않는다.

아마 답장을 보내는 일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몇 초면 되니까. 조금 뒤에 해도 되니까. 그래서 지금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조금이 길어질수록 답장은 이상하게 더 어려워진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답할 수 있었던 메시지였는데, 시간이 지나면 답장이 늦었다는 말을 먼저 해야 할 것 같고,

며칠이 지나면 왜 이제야 답장을 하는지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답장을 미룬 시간만큼, 메시지는 조금씩 무거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또 미룬다.


어쩌면 우리는 답장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답장할 마음이 생기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응’이라는 한 글자는 몇 초면 충분하지만,

누군가의 이야기에 다시 마음을 돌리는 데는 조금 더 긴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답장을 미루는 모든 사람을 무바카라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연락에 바로 답하지 못하는 날도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만큼 여유롭지 않은 날도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는, 답장조차 하나의 일이 될 수 있다.

다만, 가끔은 알림 창에 떠 있는 메시지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 메시지는 어쩌면 누군가가 나에게 건넨 아주 작은 확신일 수도 있으니까.

‘이 사람이라면 내 이야기를 들어줄 거야.’ ‘이 사람에게는 말해도 괜찮을 거야.’


그 사람이 나를 선택해서 사소한 이야기를 건넸다는 것.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에 답장을 건넬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연락이라는 것은 거창한 약속도, 큰 바카라임도 아닐지 모른다.


대부분 오늘 힘들었다는 이야기이고, 누군가가 싫다는 이야기이고,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런 사소한 이야기 속에서 서로에게 아주 작은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그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는다. 그래서 오늘도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기 위해서. 혹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생각나서.

그리고 메시지의 끝에는 아마도 아주 작은 기대가 있을 것이다.


내 이야기를 읽어줄 사람.

그리고 나에게, 몇 초의 시간을 내어줄 사람.

우리는 누군가에게서 확신을 얻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정작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 확신을 주는 일을 쉽게 미루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거창한 확신을 줄 필요는 없는지도 모른다.


그저, “오늘 힘들었겠다.”

그 한 마디면 충분할 때가 있으니까.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알림을 본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다.

조금 있다가 답해야지.


하지만 가끔은 그 '조금 있다' 그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