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에서
고급 택시를 운행하면서 심각하게 생각한 것이 개인택시 영업이었다.
무엇보다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퇴직자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은퇴자가 재취업을 할 경우, 노인 대접하여 일자리를 준다는 명분으로 대우를 제대로 못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하는 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서 개인적인 일을 무리없이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면허를 양도한 어르신처럼 86세까지도 본인의 건강이 허락하면 가능한 일이다.
개인 택시를 하기 전에 법인 택시로 경험을 쌓아보기로 했다.
우리가 사는 일산과 근접한 파주 중, 택시 운행에 대한 방송을 하는 유튜버는 파주를 권했다. 일단 3개월을 파주에서 해보기로 하였다.
택시 회사에 취업은 어렵지 않았다. 우선 파주의 법인 택시 회사에 들어가 영업용 택시를 3개월 경험하였다.
새벽 4시부터 오후 4시까지 혹은 오후 4시부터 새벽 4시까지 1일 2교대, 4일 근무후 하루 휴일의 근무 패턴이었다. 어느 쪽이든 잠을 충분히 잘 수가 없었다. 특히 오후 4시부터 새벽 4시까지의 근무가 힘들었다.택시 기사님들이 이렇게 힘든 일정으로 일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이도 많은데 남편은 끙 소리 한번 없이 두 달 반을 일하였다. 첫날만 택시 미터기의 작동이 처음이라 긴장하였고 다음날부터 큰 어려움 없이 운행하였다. 힘든 일정이건만 일이 재미있다고 했다. 네비가 있지만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져야 빨리 움직일 수 있다며 파주의 지도를 바카라상위에 펼쳐 놓고 틈틈히 외우곤 했다.
택시를 하자고 생각했을 때, 취객을 만나거나 진상 승객을 만나서 남편이 마음 고생할 것을 염려했었다.
그런데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승객들이 대부분 참 공손하다고 했다. 차를 타며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내릴 때도 대부분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내린단다. 남편이 나이 지긋해보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경제발전과 함께 여유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택시 운행에 큰 어려움이 없다는 걸 알고 개인택시를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개인 택시를 어느 곳에서 할지 고민했다. 지역마다 개인택시 면허의 가격이 틀렸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고양시, 근접한 파주시와 서울의 세 지역 중, 면허 가격은 파주시가 제일 비쌌고 다음이 고양시 그리고 서울이 제일 쌌다. 지역마다 개인택시 보유수가 정해져 있었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차이가 나는 듯 했다.
파주에서 법인 택시를 해보니 넓은 지역임에도 정해진 개인택시의 수가 적었고, 대중 교통이 서울이나 일산 만큼 발달되어 있지 않아 택시 이용 승객이 많다고 하였다. 무엇보다 길이 막히지 않아 좋았단다. 면허 가격이 비싸지만, 운행하기 수월하고 수입은 많은 파주에서 하기로 결정하였다. 택시 조합에 면허가 나오면 연락을 달라고 신청을 하고 대기하며 법인 택시를 운행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개인택시 면허증이 나왔다. 86세의 어르신이 운행하시던 택시였다.
긴 세월을 가장의 무게를 지고 성실히 살아오신 어르신이 쓰던 번호판을 남편이 이어받아 운행하게 되어 감사했다.
36년간 회사에서 월급쟁이로 살던 남편이 개인택시 사장님이 되었다.
'길 위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사고 위험에 부딪힐 경우도 많을 수밖에 없다.'
'개인택시 면허를 사는 데만 해도 큰 돈이 드는데, 그 돈으로 다른 걸 하는 게 낫다.'
'앉아만 있으니 건강에 안좋다.'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남편은 그런 것들에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일을 택하여 좌고우면하지 않고 성실하게 할 뿐이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생의 단어는 ’효율성‘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 시선에서 자유롭고 싶지만 쉽지 않다.
부부가 외출을 하면, 남편은 자리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복장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나는 '어찌하면 좀 더 있어보일까? 젊어 보일까?' 심사숙고하여 복장을 챙긴다.
그러다보니 늘 남편이 나를 기다린다. 늘 기다리면서 한번도 짜증 내지 않는 남편이 고맙다.
물건을 살 때도, 여행지를 고를 때도 나와 그의 스타일은 많이 다르다. 가성비를 최고로 여기는 남편과 겉치레를 중요시하는 나는 선택 사항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가정의 평화를 지키려면 아내에게 맞춰 줘야한다는 진리를 일찌감치 깨달은 그는 고집 피우지 않는다.
효율적이지 못한 와이프를, 그런 사람이려니 여기고 그대로 인정해주니 고맙다.
다름을 인정해주는 것, 평화로운 관계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