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남자

사랑받습니다

by청순일기

개인택시 사장님은 아침 8시경 집에서 나간다.

그리고 1시 전후로 집에 들어와 점심을 먹고는 TV를 보며 꼬박꼬박 졸다가 보통은 낮잠을 잔다. 4~5시경에 다시 나가서 밤 12시까지 운행을 한다. 저녁은 밖에서 먹지 않고 떡과 바나나, 커피를 싸가지고 가서 차 안에서 먹는다. 보통 하루에 13시간정도 일한다. 휴일은 일주일에 2번, 월요일과 목요일이다.

환갑이 넘은 사람의 일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 걱정스러운데, 처음이니 그렇다며 알아서 점차 조절하겠노라고 한다.


평생을 월급쟁이로 노동의 양과 관계없이 정해진 돈을 받아왔던 그는, 움직이는 만큼 비례해서 돈이 들어오는 택시일이 대견하고 재미있는 듯하다. 아무래도 차로 움직이는 일이니만큼 사고 위험에 노츨될 시간도 많아 걱정과 불안이 많던 나였지만, 요즘은 남편의 밝은 얼굴에 덩달아 즐겁다.

처음에는 밤 12시 넘어서까지 일을 하곤했다. 특히 밤 11시 이후에는 할증요금이 있어 30%를 더 받으니 욕심을 부릴만도 했다. 12시는 넘기지말자고 나와 약속을 했지만 요즘도 번번히 약속을 어긴다.


밤에 일 끝나고 들어오면 시간이 너무 늦어서 세차를 못하고 그냥 온다. 아침에 세차장에 가서 실내외를 깨끗히 청소하고 일을 시작한다.


탈취제를 늘 가지고 다닌다. 평소에는 몰랐는데 택시를 하면서 '체취'라는 걸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차 안이라는 좁은 공간에 있으려니 냄새에 민감해진단다. 여인들의 화장품 냄새, 청년들의 땀 냄새, 식사하고 타는 승객에게서는 음식 냄새, 취객들의 술 냄새, 담배 냄새...어떤 때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냄새가 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본인도 괴롭지만 다음에 타는 승객을 생각해서, 승객이 내리면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탈취제를 뿌리곤 한다. 그래서 남편의 택시를 타는 승객들 중에 '좋은 냄새가 나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작게 클래식 음악을 튼다. '음악소리가 좋네요.'라고 말해주는 승객들도 있단다.


회사에 다닐 때처럼, 그는 여전히 성실하다.




점심은 꼭 집에 와서 먹는다.

현관에 들어오면서 "삼식이 왔어요."한다. 나이 든 남자들이 집에서 하루 세끼 밥을 먹으면 삼식이라고 핀잔을 받는단다. 그런 말을 들어서인지 자기 집에 밥 먹으러 들어오면서도 와이프 눈치를 본다.


나이 들수록 작아지는 남정네들이 안스럽다. 회사의 남자 선배였던 J는 퇴직 후에도 계속 일을 한다. J는 술을 좋아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들어가는 날이면 술먹느라 밤늦게 들어온다고 와이프가 잔소리를 한다. 그런데 쉬는 날 집에 있으면 집에만 있지말고 나가라고 잔소리를 듣는단다.

"나더러 어쩌라고!"

모임에서 J가 볼맨 소리를 하여 모두 웃었지만, 이래도 저래도 밉상이라고 잔소리 듣는 남편이 많다.

밉상인 남편은 대부분 이유가 있다. 젊은 시절 와이프 속을 많이 썩였거나, 집에서 손 하나 까닥 않는 남자들이 나이들수록 미움을 받는다. 선배도 집에서 와이프의 집안일을 전혀 도와주지 않는 듯했다.


남편이 집안일만 도와줘도 와이프에게 구박받지 않는다. 요리를 할 수 있다면 사랑받는다.


집에서 하루 세끼를 챙기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먹고 돌아서면 바로 다음 끼니를 생각해야 하는데, 무얼 해서 먹을까도 고민이고 매 끼니를 준비하려면 하루에 7~8시간은 씽크대 앞에 서있어야 한다. 준비하는 시간을 짧게 잡아서 1시간, 먹는데 1시간, 치우고 정리하느라 1시간 이면 매끼 3시간이니 말이다. 아침은 간단히 먹는다쳐도 7~8시간이나 된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몇십년을 그렇게 밥을 차리면, 우리 나이쯤 되면 지겹고 넌덜머리가 난다는 말을 이해해줘야 한다.


교대로 식사 준비를 한다던가, 같이 만들면 훨씬 힘이 덜 든다.

남편은 퇴직후 직업을 갖기위해 온갖 자격증을 땄는데 그중에는 한식 조리사와 양식 조리사 자격증도 있다. 그래서 요리를 곧잘 한다. 나는 손이 많이 가서 안하는 요리인 잡채나 갈비도 남편은 뚝딱뚝딱 잘 만든다. 집에 있을 때는 식사 준비를 항상 같이 하고, 밑반찬도 같이 만든다. 한사람이 3가지씩 만들면 금방 냉장고에 밑반찬이 꽉 찬다. 그래서 휴일에 그가 종일 집에 있어도 힘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집안일을 도와주니 힘이 덜든다.


올해 71세인 오라버니는 이제야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올케가 미국 아들 집에 가서 몇 달 있는 동안,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더니 그것도 지겨웠나보다. 레토르트를 사서 약간씩 가미해서 먹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제법 찌게도 끓이고 국도 끓인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단다. 언니가 없어도 이제 얼마든지 살겠다며 큰소리다.


남자들에게 적극 권한다. 요리를 배우라고.

나이든 삼식이들은 와이프 눈치 안봐도 되고, 내가 해먹는 재미, 가족에게 대접하는 즐거움이 생긴다.

그리고, 설겆이는 안해도 된다. 남편이 요리를 하면, 아내는 자연스럽게 설겆이를 한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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